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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후 May 01. 2021

영화 리뷰 <섀도우 클라우드>

2차세계대전, 전투기, 괴담으로 '차별'을 말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남성들에게만 탑승이 허락되었던 폭격기 B-17에 극비 수송 임무를 맡은 여성 비행 장교 개릿(클로이 모레츠 분)이 올라탄다. 조종사 리브스 대위(칼란 멀베이 분) 등 남성들은 개릿이 여자란 이유로 무시하며 B-17의 최하단인 터릿으로 쫓아낸다.


개릿은 비행 직후부터 발견한 기체 이상과 수송선에 붙은 괴생명체를 경고하지만, 남자들은 여성의 말이라며 믿지 않는다. 구름 속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일본군 전투기와 괴생명체의 공격에 맞서 개릿은 극비 임무가 담긴 가방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맞서기 시작한다.


영화 <섀도우 클라우드>는 극비 임무를 맡은 여성 비행 장교가 괴생명체, 일본군, 그리고 남성들의 편견에 맞닥뜨리는 내용을 그린다. 영화의 첫 장면에선 하늘 위에서 괴생명체 '그렘린'을 만났다는 조종사들의 말이 실제론 망상이나 부주의가 낳은 괴담에 불과하다는 걸 강조하는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공군 조종사들 사이에선 비행체를 집어삼키는 괴물을 보았다는 괴담이 널리 퍼졌었다고 한다.


'비행기의 날개에 붙은 괴생명체'란 설정에서 많은 이들이 <환상특급>을 떠올릴 것이다. 소설 <나는 전설이다>로 유명한 작가 리처드 매드슨이 쓴 단편 < 2만 피트 상공의 악몽 >은 오리지널 TV 시리즈 <환상특급>과 극장판 <환상특급>(1983)의 에피소드 '발렌타인의 악몽', 최근 만들어진 드라마 <환상특급>의 에피소드 '하늘 위의 악몽'으로 영상화된 바 있기 때문이다.
  


리처드 매드슨과 <환상특급>의 아이디어에 빚을 진 <섀도우 클라우드>의 연출은 <바나나 인 넛셀>(2005), <테이크3>(2008), <마이 웨딩 앤 아더 시크릿>(2011), <플랫3>(2012), <내 환자는 내가 지킨다>(2017)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으로 주목을 받는 로잔느 리앙 감독이 맡았다. 그녀는 각본에도 참여한 <섀도우 클라우드>를 통해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불안함 혹은 공포감을 투영하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한다.


<섀도우 클라우드>는 설정에 걸맞게 극의 대부분을 비행기 안에서 진행한다. 특히 전반부에 해당하는 40여 분가량은 터릿에 위치한 개릿을 보여주고 다른 남성들은 목소리로 처리하는 대담한 연출을 선보인다. TV 시리즈 <어메이징 스토리>의 '더 미션'(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을 맡아 유명한 에피소드다)의 B-17 폭격기의 터릿 연출의 분명히 영향을 받은 <섀도우 클라우드>의 터릿 연출은 관객이 답답한 밀실 공포증을 느끼게끔 유도한다.


전투기 하부에 위치한 터릿에 앉은 여성 개릿은 당시 남성우월주의에 깔린 여성들의 위치이기도 하다. 출구가 막혀 고립된 상태로 남성의 성희롱과 의심,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는 개릿의 모습은 많은 여성의 현실 속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렘린과 일본군 전투기는 단순히 괴생명체나 적군이 아닌, 여성, 나아가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차별을 은유적으로 묘사한 '공격'이다. 전투기 속 남자들의 말과 행동이 직접적인 행태의 '공격'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영화는 중반부터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치닫는다. 전쟁영화, 공포영화, 액션영화, 여성영화가 뒤섞인 채로 정신없이 펼쳐진다. 신디사이저 음악은 1970~1980년대 존 카펜터의 것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느낌이다. 괴생명체, 일본군 전투기, 남성 등 다양한 층위에 공격에 맞서는 개릿의 용기는 마치 <에이리언> 시리즈의 여전사 리플리(시고니 위버 분)를 연상케 한다.
  



<섀도우 클라우드>의 주인공 개릿은 배우 클로이 모레츠가 분했다. <아미타빌 호러>(2005)로 데뷔하여 <킥 애스: 영웅의 탄생>(2010)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클로이 모레츠는 매년 2~3편의 출연작을 내놓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다. 근작 <서스페리아>(2018), <마담 싸이코>(2018),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2018), <레드슈즈>(2019), <아담스 패밀리>(2019), <톰과 제리>(2021)를 보면 클로이 모레츠가 여성 배우로서 지금 시대에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를 영화 선택에 투영시킨 인상이 짙다.


<새도우 클라우드>도 마찬가지다.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는 클로이 모레츠는 작품의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개릿의 불완전함에 끌렸다"며 이 영화를 "자신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가장 도전적인 작품"이라 칭했다. 그녀는 점차 강해지는 캐릭터 개릿을 멋지게 소화했다.


<섀도우 클라우드>는 B무비의 재미와 페미니즘 서사의 흥미로운 결합이다. <오버로드>(2018)가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의 틀을 빌려 현재의 혐오, 차별, 폭력을 비판했다면, 이 작품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성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견뎌야 하는 차별을 제2차 세계대전과 전투기, 괴담을 통해 일깨워준다.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선 스스로 차별에 맞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엔딩크레디트에 나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실제로 활약했던 여성 공군처럼 말이다. 제45회 토론토국제영화제 미드나잇 매드니스 부문 관객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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