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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후 Aug 24. 2021

영화 리뷰 <올드>

M. 나이트 샤말란 감독만이 만들 수 있는 특별한 영화


가이(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분)와 프리스카(빅키 크리엡스 분) 부부는 딸 매덕스(알렉사 스윈튼&토마신 맥켄지 분), 아들 트렌트(놀란 리버& 알렉스 울프 분)와 함께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휴양지 아나미카 리조트를 찾는다. 매니저에게서 소수만이 이용할 수 있는 해변으로의 특별한 여행을 제안 받은 가이 가족은 찰스(루퍼스 스웰 분), 아내 크리스탈(에비 리 분), 외동딸 카라(카일리 백레이&엘리자 스캔런 분), 찰스의 어머니 아그네스(캐슬린 찰팬트 분)와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좁은 협곡을 지나자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지고 일행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잠시 후 패트리샤(닉키 아무카 버드 분)와 재린(켄 렁 분) 부부도 합류한다.


그러나 해변에 먼저 도착한 유명 랩퍼 미드 사이즈드 세단(아론 피에르 분)과 같이 온 여자가 익사체로 발견되면서 사람들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핸드폰도 터지지 않고 들어왔던 협곡을 이용하여 나가려고 하면 정신을 잃는 통에 진퇴양난에 놓인다. 해변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던 일행은 아이들이 반나절 만에 청소년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이곳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반전'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꾸준히 집어넣었던 반전이 모두 사랑 받은 건 아니다. 그를 스타 감독 자리에 올린 <식스 센스>(1999)는 <유주얼 서스펙트>(1996)와 더불어 영화 역사상 최고의 반전 영화로 손꼽힌다. <언브레이커블>(2000), <싸인>(2002), <빌리지>(2004), <더 비지트>(2015), <23 아이덴티티>(2016), <글래스>(2018)의 평가도 좋았다.


반면에 <레이디 인 더 워터>(2006), <해프닝>(2008), <라스트 에어벤더>(2010), <애프터 어스>(2013)는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의 최악의 작품상, 최악의 감독상, 최악의 각본상에 올랐을 정도로 반응이 차가웠다.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가운데 한 가지 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M. 나이트 샤말란은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 줄 아는 드문 작가다.


영화 <올드>는 엄청난 속도로 시간이 흐르는 해변(이곳에서의 30분은 바깥세상의 1년에 해당한다)에 갇힌 인물들을 소재로 삼는다. 참으로 오싹하면서 환상적인 전제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노화와 죽음이 녹아든 이야기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을까?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딸들이 선물한 단편 그래픽 노블 <샌드 캐슬>을 읽고 외딴 해변에 휴가를 즐기러 간 사람들이 자신들의 시간이 급속도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전개에 단숨에 매혹되었다고 밝힌다.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시간으로부터 도망치는 데 쏟는다. 그리고 시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심지어 시간이 앞으로 움직인다는 걸 모른 체 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영화 한 편 전체를 인간과 시간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데 쓴다면 아주 멋지겠다고 생각했다." 



<올드>는 밀실 호러와 바디 호러의 공포를 두루 갖추었다. 인물들은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해변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탈출구를 찾지 못한다. 들어왔던 협곡으론 빠져나갈 수 없고 사방엔 거대한 암벽이 둘러싸인 상황이다. 바다로 가자니 파도가 거세다. 


갇힌 공간에서 인물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놓고 갈등을 벌이고 실패를 거듭한다. 찰스처럼 극도의 혼란스러움으로 인해 정신 착란을 보이는 이도 나타난다. 대립의 이면엔 백인이 유색인종에 가지는 차별과 혐오가 투영되어 있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광활한 해변이라는 열려있고 안전한 공간이 천천히 위험해지는 것"이라고 <올드>의 고립감과 공포를 설명한다.


<올드>가 그린 빠른 노화는 무시무시하다. 30분마다 1년씩 늙어가는 설정이기에 해안에 6살 무렵에 도착한 어린아이들도 최대 2일을 버티기 어렵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물들은 기억, 시력, 청력 등 신체 기능을 상실한다. 항상 아름다운 외모를 유지하기 위해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는 크리스탈은 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의 두려움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인물이다. 


<올드>는 삶에 관한 우화이기도 하다. 빨리 흘러가는 시간과 죽음은 현실에서 우리가 갑작스럽게 맞이하는 이별을 의미한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은 실로 무섭다. 영화는 남은 시간 속에서 삶을 돌아보고 실수를 성찰하는 인물들을 통해 현재의 시간을 헛된 욕망에 쓰지 말고 주위 사람을 위해 사용하길 강조하고 있다. <올드>가 코로나19 기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전염병 시대의 불안과 예기치 않았던 죽음을 반영한 호러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많은 사람이 M. 나이트 샤말란의 앞선 영화에 그랬던 것처럼 <올드>에서도 멋진 반전을 기대할 것이다. 극적 재미를 위해 던진 "왜 갇힌 것인가?"란 질문에 맞춰진 '반전'이 가미된 해답은 다소 맥이 빠지는 게 사실이다. 코로나19 시대에 대한 은유라고 본다 해도 진부하기 짝이 없다. 반전으로만 평가하면 낙제점이다.


<올드>의 기이한 경험과 조여 오는 불안은 일품이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자신만의 분위기를 만들 줄 안다. 그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한순간도 자신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일이 없게 만들고 싶었다"며 "마치 <올드>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처럼 한 가지 의혹을 풀고 나면 또 다른 의혹, 그리고 또 다른 의혹들을 풀게 하고 싶었다"는 바람을 전한다.


<올드>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만이 만들 수 있는 특별한 영화다. 최근 주목 받는 <겟 아웃>(2017), <유전>(2018) 등 호러 영화가 따라 할 수 없는 종류의 영화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식스 센스>부터 <올드>까지 변함없는 불안의 이야기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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