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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버언니 Oct 17. 2020

사춘기도, 오춘기도 회사에서 겪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직장인이라면, 아마 ‘회사 가기 싫어 죽겠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매일 그런 생각이 들거나. 많은 직장인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말과 월요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말과 달리 정말로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은 드물다. 말이나 생각과 달리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간단하다. 회사에 아직 미련이 남은 것이다. 진심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들은 굳이 입 밖으로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도 않는다. 곧장 사표를 써버리지.     

많은 후배들이 내게 “언니는 회사를 몇 년이나 다니신 거예요?”라고 묻는다. 그리고 내 대답을 들으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다. 하긴 나조차 한 번씩 ‘내가 언제 이렇게 회사를 오래 다녔나.’ 싶어 놀라곤 하니 그들이 놀라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놀란 얼굴의 후배들에게 “너도 오래 다닐 수 있어.”라고 말하면 그들은 “으악! 끔찍해요!”라며 웃픈 반응을 보인다. 그래, 나는 어쩌면 그 끔찍한 시간을 견뎌냈기에 지금 이 순간을 편안하고 안락하게 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오랜 직장생활에 놀라는 건 후배들뿐만이 아니다. 지인들이나 친구들 역시 내 회사경력을 들으면 새삼 놀라곤 한다. “아직도 그 회사 다니는 거야?” “와, 벌써 10년은 넘지 않았나?”로 시작해서 “그 회사가 그렇게 좋아?” “돈 많이 벌었겠네? 밥 사!”까지 그들의 반응은 다채롭다. 그러나 다들 마무리는 하나같이 “그래서, 언제까지 다니려고?”라는 물음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면 나 역시 언제나처럼 대답하는 것이다. “더 오래 다녀야지. 버텨야지.”     

고통의 시간 없이 성장은 없다. 나는 직장에서 경험을 통해 이를 깨달았다. 만약 이곳에서의 그 ‘끔찍한’ 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추측컨대, 철든 어른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회사는 내게 고마운 존재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회초년생이던 나를, 할 줄 아는 거라곤 그저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밖에 없었던 나를 후배까지 챙겨줄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주었으니까. 

보통 10년 이상 하나의 길을 걸은 사람을 우리는 전문가라고 부른다. 10년이란 시간은 그만큼 길고 굴곡지기 때문이다. 나 역시 결코 평탄치 않은 시간들을 넘어 이 자리까지 왔다.

회사에 막 입사했을 때는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듯 울고 웃으며 업무를 익혔다. 열정만 가득한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회사에 입사한 값을 톡톡히 치러야 했던 것이다. 업무를 배우는 동안 나는 처음으로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겪으면서 삶의 새로운 면면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동료라는 이름의 인간관계였다. 가족들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직장동료들은 때로는 친구보다 더 친구 같은 사이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원수보다 더 원수 같은 사이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동료들과 아픔과 기쁨을 나누고, 학창 시절의 친구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우정과 선의의 경쟁을 펼침으로써 사람과 사람 사이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었다. 

5년 차가 넘어가면서부터는 나 자신의 정체성과 적성에 대해 고민하며 뒤늦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기도 했다. 남들은 다 학창시절에 겪는 사춘기를 직장에서 겪었던 것이다. 그 혼란의 시기를 겪는 와중에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으면서 부모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17년차가 된 지금도 나는 앞으로 내가 걸어갈 삶의 방향을 고민하며 회사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야말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시기를 모두 회사 안에서 보냈고, 또 지금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내 삶에서 회사는 내 모든 순간을 함께 해준 존재이고 의리를 지켜준 존재였다. 때로는 그 안에서의 경쟁과 성과에 치어 힘들 때도 있었고, 말도 안 되는 인간관계를 극복하느라 지난한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내게 남은 건 고마운 마음이다. 이런 과정은 비단 내가 다닌 회사가 아니어도 어디에서든 겪어야 하는 과정일 테니까.    

많은 직장인들이 회사를 그만둘 날을 꿈꾼다. 그러나 나는 반대였다. 결혼 전에는 ‘어떻게 해야 회사를 탈출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지만 가정을 이루고 난 뒤에는 정반대로 바뀌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을까?’ 고민했다. 책임져야 할 가정, 멋진 워킹맘, 더 성장한 직원으로서의 나, 성숙한 아내, 그리고 좋은 어른이 된 내 모습까지 내 마음속에는 회사를 다녀야 하는 이유들만 가득했던 것이다.

나는 내가 회사를 통해 성장하는 만큼 내 아이와 가정도 멋지게 성장하리라 믿었다. 그리고 이 믿음은 현실이 되었다. 나는 자랑스러운 내 가정을 볼 때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때때로 모든 것을 놓고 싶을 만큼 힘들고 어려웠던 그 긴 터널을 지나온 시간들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가정이 부모의 사랑으로 아이를 성장시킨다면 회사는 소속되어있는 동안만큼은 든든하게 내 편이 되어 나를 한 사람의 어른으로 성장시켜준다. 적어도 회사를 통해 배우고 그 배움으로 기여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회사를 통해 한 계단 더 성장할 내일의 나를 기대한다. 회사는 인생의 또 다른 동반자로, 든든한 울타리로, 최고의 행운 중 하나로 내 삶에서 항상 함께해준 존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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