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사소할 수 없는 식사에 대하여
“나는 먹는 것을 사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이 문장이 그 인간의 입에서 나오기 전부터 이미 나는 그 인간이 별로였다.
이 인간과 꽤나 긴 시간을 함께 있어야 하는데.. 그날은 그해 여름 가장 일진이 사나운 날이었다.
먹는 것이 ‘사소하다’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맛을 잘 몰라서 아무거나 잘 먹어요 정도, 맛집을 부러 찾아다니는 사람은 아닙니다 정도.. 혹은 바쁘다 보니 허기를 때우기 위해 대충 먹고 산다는 표현 정도까진 들어봤지만.. 사소하다니?! 그건 맘에 쏙 드는 옷을 만났을 때 가격표에 붙어있는 금액 중 천 원 이하 단위에나 어울리는 말이 아니던가.
그렇다. 나는 먹는 재미를 그 어떤 재미보다 앞세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중하지만, 그 사람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완성이고. 여러 즐거운 경험에서도 음식을 도려내긴 힘들다.
아끼는 사람과 영화를 관람하고 나와 맛있는 음식(+술)을 먹으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여러 밤들 ,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향기로운 커피나 차를 곁들여 더욱 선명하게 기억에 자리 잡은 순간들, 경치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마시며 나눈 이야기들이 켜켜이 싸여 지금의 내가 된 것 같은데..
먹는 것이 사소하다니. 먹는 것으로 얻는 에너지가 심적, 신적 가릴 것 없이 엄청나다 맹렬하게 믿는 나로서는 도저히 소화하기 힘든 문장이었다.
사소하다는 문장을 듣고 여섯 시간쯤 지났을 때, 그날 함께일 수밖에 없던 일행들과 같이 식당에 들어섰다. 이런 인간과 함께 식사를 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고역이었지만 그날의 분위기 상 벗어나긴 힘든 자리었다. 가장 가까운 식당을 고른 그 인간을 따라 들어가니, 하필 입식 식당이다. 제법 더운 날이라 무릎 위로 올라오는 치마를 입은 일행(나 포함)들이 있는 것 따윈 신경 쓰지 않고 호기롭게 자리에 철퍼덕 앉아 "제일 빨리 나오는 게 뭐죠?" 주방 쪽을 향해 외친다. 아직 다들 앉지도 않았다, 진상아.
태어나서 맛본 중 가장 맛없는 불고기였다. 맥락 없이 달고, 참기름은 겉돌고, 고기는 나무껍질같이 뻣뻣했다. 흰쌀밥은 밥통에서 10시간쯤 숙성을 시켰는지 입안에 자리잡지 못하다 목 뒤로 뻑뻑하게 넘어갔다. 수저를 내려놓고 싶었으나 배가 오지게 고팠던 터라 찬으로 나온 샐러드라도 집어먹자 노선을 바꿔보았지만, 설탕을 주재료로 한 드레싱이 내 도전을 단박에 꺾어버렸다. 나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노라 이야기를 하고 식당 옆 커피빈에 들어가 머핀과 아이스라테를 주문했다. 5분 만에 먹어치우고(하아....) 식당으로 돌아가자, 그 인간은 밥그릇을 싹 비우고 "여기 커피 없나? 누가 커피 좀 사 오지" 주접을 싸고 있었다. 주방 앞에서 트로트 프로그램을 보던 직원이 "외부 음식 반입 안돼요!" 앙칼지게 외치신다. 이 식당에서 유일하게 마음 든 건 직원의 단호함이었다.
다시 고역의 시간, 세 시간쯤 더 지나 주차해둔 차에 올라 집을 향했다. 현관문 들어가기 전 소금이라도 뿌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집에 들어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곱창&대창, 콜?' 친구의 카톡이 도착해있다. 오늘은 진짜 곱창과 대창을 한껏 먹어도 죄책감 따위 들지 않을 만큼 열심히 산 날이 아니던가, 그래 콜!
테라와 진로가 섞인 음료를 마시며, 다음부터 그 인간과의 식사는 절대 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욕을 먹어도 분위기가 깨져도 상관없어, 두 번은 없다.
저는 먹는 것을
중대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