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이때까지의 나에게는 여백이 그리 많지 않았다. ‘나’라는 노트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써 내려갔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아무것도 없는 노트의 흰 부분을 바라보다 마치 이건 나인가,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곳에서는 결핍과 부재, 공허함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반대로 무언가에 집중할 때의 고요함과, 정갈하게 잘 준비되어있는 식사 전 파인 다이닝의 하얀 식탁보가 떠오르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양면성이 좋다. 어차피 모든 면에서 일관적인 것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걷지 않아도 되는 길을 재촉해 걸으며 사는 것은 불행하다. 굳이 나를 써 내려가 의미 없는 내용들로 여백들을 꽉꽉 채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는 오직 여백을 채우기 위해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 안에는 고요한 흰색의 공간들이 그때의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꼭 필요한 것들을 쓰기 위해.
나는 그날 사람을 죽였다. <보헤미안 렙소디>의 첫 구절이 떠오른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남성성을 죽였었지. 나 또한 누군가를 죽이고 홀로 장례식을 치렀다. 상여도 행렬도 없는 가난한 죽음이었다. 문을 닫고, 침대 위에 몸을 던지고, 그제야 나는 달아나듯 베개 위에 비를 뿌렸다. 쫓기듯 급하게 들이마시는 젖은 숨소리와 그 뒤를 쫓는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들이 점점 잦아드는 것을 느끼며 덜컹, 입관했다. 그날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이후 내가 집착하던 빽빽한 활자들은 스스로 하얀 수의를 입고 그 남자를 기리며 고요한 묵념을 시작해 마치 여백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부은 눈과 여전히 아픈 마음과 입맛은 없지만 그래도 무엇을 좀 먹어야지 하며 입안으로 욱여넣는 밥. 그것은 장례식 이후에 먹는 첫 끼의 쓴맛 그대로였다.
사랑과 울음은 서로 닮았다고 한다. 마음대로 시작할 수도 없고, 한번 시작되면 내 멋대로 멈출 수도 없다. 누군가가 흉내 낼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높은 곳에 걸리지 못하고 낮은 곳으로 흘러내리는 것 들은 역시 금방 툭 툭 떨어져 잊힌다. 사람들에게서 멀어지면 외로워지고, 나 자신에게서 멀어지면 고독해진다는 말을 입 안에 넣고 질겅질겅 씹었다. 외롭지 않다. 다만 거울 속에 비치는 너는 고독해 보였다. 그래 뭐,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나를 외면한 채 내버려 두어 고독사 한 남자의 장례식을 한 번 더 할 자신은 없다.
그래서 오늘 일부러 못 본 체하며 내버려 두었던, 맞지 않던 퍼즐 조각을 쓰레기통에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