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이 학교를 오래 다니지 못했을까?
1탄에서 말했듯, 나는 한 학년 낮게 들어가서 귀엽고 착한 반 친구들 덕에 즐겁게 학교 생활을 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쯤에 해당하는 7학년에 들어간 오빠는 베트남 남학생들과 자주 부딪혔다.
일부 남학생들의 한국인을 향한 관심은 다소 거칠고, 공격적으로 표현되었는데, 그 영향으로 우리들은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욕을 종류별로 배우게 될 정도였다. 욕의 수위도 상당히 높았는데, 유독 폭력적으로 굴던 몇몇 남자애들은 오빠에게 부모님 혹은 동생인 나 그리고 오빠의 신체 중요부위까지 언급하면서 매일 새롭게 도발했다. 무시로 일관하기에도 지쳐가던 오빠가 참지 못할 땐 싸움으로 번진 적도 자주 있었다.
그때 아이들은 사춘기를 정통으로 겪어내는 시기였으니 아마 더 강한 충돌이 생겼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보지만, 이 학생들의 언행은 베트남사람들도 듣고 놀랄 정도였던 걸 미루어보아, 다소 거친 학생이 많았던 학교였던 것 같다.
당연하게도 오빠도 친하고 사이좋게 지낸 친구들이 많았지만, 3-4명 정도 되는 일부 아이들이 말썽이었다.
한 번은 오빠와 같은 반 아이가 싸워서, 교장 선생님이 무게를 잡으며 부모님께 면담을 신청했다. 그렇게 학교로 간 부모님은 우리가 매일 같이 배워오는 욕과 오빠가 견뎌내는 시비에 대해서 잘 알고 계셨기에 답답한 마음으로 면담에 응하셨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이 학교 학생들이 얼마나 거친 말과 행동을 하는지 알고 있는지 물어보니, 교장 선생님은 우리 학생들은 절대 욕을 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하셨다. 그 교장 선생님에게 우리가 알게 된 욕을 몇 가지 예시로 알려드렸지만, 눈을 감고는 인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셨다.
그들이 보기엔 '문제를 일으키는 외국인 청강생' 보다는, 학교 학생들의 편을 드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의 충동을 막아주거나 조율해 줄 수 있는 선생님도 많지 않으셔서 우리가 야생에 내던져진 느낌을 지우긴 어려웠다.
한국학생 6명 중 유일했던 한국인 여학생인 나는 흡사 동물원의 원숭이 같은 존재였다. 처음에는 교실을 벗어나 학교의 다른 곳을 다니기 무서울 정도였는데, 지나가는 나를 보고 '한꿕 (Hàn Quốc)'이라거나 '꼬레아'라는 의미 없는 말을 소리치거나, 위협적인(?) 행동으로 관심을 끄는 학생들 때문이었다.
여학생들의 경우, K-pop의 영향 인지 그들의 관심은 호의를 품고 있었다. 외적인 칭찬을 많이 해주고, 내가 입고 다니는 옷이나 스타일에 관심이 많았다.
한 번은 엄마가 학교 교복 상의에 달려있는 짧은 끈을 리본처럼 보이게 고리를 만들어주셨다. 나름 맘에 든 나는 곧잘 그렇게 하고 다녔는데,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고학년들까지 대부분의 여학생들의 교복 상의에는 나와 같은 리본이 생겼다. 이런건 뿌듯하고 기뻤지만, 어딜 가나 날 따라다니는 시선과 관심이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버거워졌다.
그렇게 우리는 빠르게 적응하며, 베트남어도 배워갔지만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50%도 알아듣지 못하는 수업은 점차 지루해졌고, 우리가 배우는 베트남어라고는 욕과 반복되는 일상 속의 장난이었다. 아마 친구들과 그 이상으로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엔 너무 어렸고, 베트남어 수준의 한계가 컸다.
또한 다른 친구들의 시험기간 동안 방학처럼 자유시간이 주어지는 건 기쁨이 아니라, 내가 외부인이라는 강한 느낌을 되새길 뿐이었다. 언어를 떠나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동기부여에 실패했던 것 같다.
심지어 오빠와 나는 학교를 부모님 몰래 땡땡이를 친 적이 있는데, 이걸 들킨 이후로 실망한 부모님과도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었다. 1년이 다 되어갈 때 쯔음, 끝내 긴 대화 끝에 부모님은 이 학교를 더 다녀야 하는 의미를 찾지 못한 우리들의 의견을 결국 존중해 주셨다.
오빠가 먼저 학교를 그만두었고, 나는 친해진 같은 반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몇 개월정도 더 학교를 다녔다. 짧은 기간이었고, 무언가 결실을 봤다고 하기 어려울지라도, 이 경험은 이후 내가 베트남에서 로컬로 잘 섞여 들어가는 방법과 의미를 알려줬기에 나에게는 후회 없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때 어린 나이에 겪었던 불안함과 혼란을 생각해 보면 언어를 배우기엔 다소 큰 리스크였던 거 같다. 주변에 베트남에서 자녀의 학교 고민을 하시는 분 이 있다면 로컬학교를 선뜻 추천하기 어려운데, 적응에 큰 스트레스가 따를 수 있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로컬학교를 선택하려면 먼저 잘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는 곳 인지를 잘 판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응을 잘 해낸다면 독보적인 자신만의 색을 가진 사람으로 잘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파격적인 선택이었는데, 그렇게 우리는 어디로 어떻게 흘러갔을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풀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