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져 있어도 서로 이어진 우리
너와 내가 단순히 말뿐인 연대가 아니라, 말 그대로 '하나'인 우리가 될 수 있다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든든하고, 황홀하기까지 하다. <센스8>은 실체적인 연대를 다루고 있다. 이야기는 세상에 '호모사피엔스'가 아닌 다른 인류가 존재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센세이트'라 불리는 이들은 정신과 감각이 연결되어 있어 서로 생각과 감정을 교류한다. 텔레파시와 비슷하지만, 마치 자신이 직접 겪는 것처럼 생생하다는 점에서 보다 직접적이다. 말 그대로 '나'가 '너'가 되는 것이다. 8명의 주인공은 이 능력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며 하나가 된다.
주인공 8명의 다양한 정체성은 그들의 연대를 더 의미있게 만든다. 다양한 문화권과 인종은 물론 레즈비언, 게이, 트랜스젠더 그리고 폴리아모리(비독점적 다자 연애)까지 거의 모든 경우의 수를 포함하고 있다. 이젠 워쇼스키 자매가 된 두 감독의 가치관이 많이 반영된 듯하다. 사실상 백인 이성애자 남성인 '윌'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소수자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소수자로서 마주하는 어려움을 연대를 통해 해결하고, 성장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우리 역시 그들 중 한 명이기에 연대의 힘은 우리에게 고스란히 다가온다.
다양한 소수자를 등장인물로 내새워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시즌2 2화에서 주인공 '리토'는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잘 나가던 소위 '마초 배우'에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한순간에 웃음거리가 된 후다. '나는 당신과 같아요. 더 낫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모두 당신이나 나와 같을 겁니다.'
우리를 연결시켜 주는 것은 고통이다.
우리가 마약이나 술에 중독되는 이유는 외로워서라고 한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인 사람은 중독되지 않는다. 고통과 외로움은 우리를 마비시키고 잘못된 길로 유도한다. 하지만 나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그와 가까워진다. 주인공들은 각자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그로 인해 아파한다. 그래서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저지른다. 드라마는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인물들의 고군분투를 다룬다. 큰 줄기는 물론이고 캐릭터 각각의 이야기 역시 비슷하게 흘러간다.
배우 배두나가 맡아 화제였던 한국인 캐릭터 '선' 역시 그렇다. 동생을 잘 보살펴 달라는 엄마의 유언은 그에게 낙인처럼 남아 있고, 엄마를 잃은 슬픔과 아버지의 숨겨진 딸로 살아온 고독함에 선은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만다. 동생 '중기'의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간 것이다. 이른바 'K-장녀'의 한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지만 선은 다른 이들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탈출한다. 또다시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지만 이번에는 후회를 만들지 않는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특히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더 그렇다. 그 어떤 과학의 발달이나 무자비한 외계 종족의 침입도 사랑을 이기지는 못 한다. <제5원소>에서 세상을 구원할 마지막 제5 원소는 사랑이었다.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쿠퍼를 움직이게 한 것 역시 딸을 향한 사랑이었으며, <매트릭스>에서 마지막에 네오를 나아가게 한 것도 사랑이었다. <센스8>의 주인공들 역시 사랑의 힘으로 악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 연대의 힘의 근원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연인, 친구, 가족… 그들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사랑이 그들을 승리로 이끌었다.
운명은 우리의 선택이 만드는 것이다.
<블랙팬서>가 흑인들에게 '와칸다 포에버'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해냈듯이, <센스8>은 고통받고 슬퍼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속삭인다. 떨어져 있지만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는 하나라는 소속감을 준다. 마니아 팬층이 많은 이유도 이 소속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시즌3 제작 취소로 남은 이야기를 2시간 30분 분량으로 단축하면서, 몇몇 캐릭터의 이야기가 생략되었다. 또한, 다양한 인종과 성소수자가 등장함에도 백인 이성애자 남성 캐릭터가 리더 격으로 무리를 이끌고, 백인 캐릭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경향이 있다. 흑인과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묘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한국인 선은 무술과 명상에 능한 스테레오 타입의 동양인이고, 유독 여유롭고 긍정적인 해답을 제시하는 나이로비인 카피우스는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마법의 흑인' 캐릭터를 떠오르게 한다.
그럼에도, 유색인종과 LGBT가 전면에 등장한다는 점과, 그 모두의 연대와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센스8>은 의미를 갖는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 외로움과 싸우기 마련이다. 이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느껴질 때, 너와 나 우리가 하나라고 외치는 이 드라마를 떠올리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그래서 더 이상 아파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