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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맞이한 엄마의 에너지 장전법

겨우 2일 차에 징징대면 안 되긴 하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아침에 일어나 오전 재택근무를 하고, 그동안 남편은 출근을 하고 방학을 맞은 아이들은 잠옷을 입은 채 하루를 시작한다. 다행히 어제저녁 힘들게 함께 짜둔 방학계획표가 있기에 그에 맞게 공부를 시키고, (계획이 없으면 정신없는 와중 더 통제가 안된다) 나는 업무를 본다. 하지만 하라고 한다고 그냥 공부를 시작한다면 그건 애들이 아니다. 어른이다. 지극히 평범한 우리 애들은 일단 미룬다.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좀 쉬고 시작한다는 핑계다. 그래, 그래라. 그래도 엄마 퇴근하는 12시까지는 수학이라도 꼭 끝내. 시간은 충분하니까. 일단 믿어본다. 그들도 믿음직스럽게 대답을 한다. 이후엔 말하나 마나다. 5분에 한 번씩 엄마를 불러댄다. 주 용건은 고자질이다. 대개 소리를 지르거나 우는 소리를 낸다. (진짜 우는 건 아니다) 안 그래도 층간소음에 민감한 엄마는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쿵쿵거릴까 싶어 역시 주기적으로 소리를 질러댄다. 쿵쿵 소리보다 아줌마의 샤우팅이 층간소음에 지대한 공을 세울 듯하다.


9시 반에 아빠가 챙겨주고 간 아침을 든든히 먹었기에 점심은 천천히 해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한 건 엄마의 오산이다. 12시가 되기 무섭게 배가 고프단다. 아침에 시리얼 반그릇 먹은 늙은 애미는 소화도 아직 덜 됐다. 역시 창창한 소년들은 다르다.


할인할 때 쟁여놓은 함박스테이크를 데운다. 아침에도 먹었는데 다행히 또 먹고 싶다 한다. 그래, 내가 생고기를 직접 갈아 만든 들 이것보다 맛있긴 힘들 거야. 그리고 요즘 이런 게 얼마나 잘 나오는데. 대식구 아닌 이상 이렇게 사 먹는 게 지혜로운 거야, 합리화해 본다. 괜히 미안해서 계란프라이에 낙지젓까지 꺼내 소복하게 담아낸다. 맛있다고 싹싹 비운다. 고마움에 목이 살짝 매인다... 는 아니고 나도 맛있다. 아들들이랑 먹으니 엄마도 밥 먹는 속도가 전광석화다. 반찬을 사수하려면 어쩔 수 없다. 잔소리를 내지르면서도 지들꺼 다 먹고 엄마 꺼도 내놓으라는 눈빛은 애미라면 차마 모르쇠 할 수가 없다. 사전 방지를 위해 그들과 속도를 맞춘다.


밥을 먹고 아침부터 쌓인 설거지 거리를 정리한다. 식기세척기가 있어 다행이지만 손 가는 건 비스무리하다. 쌓여있는 건조된 식기를 정리하고 다 먹은 그릇의 음식과 밥풀을 모두 불려 떼어내고 세척기에 넣는다. 그 시간이 생각보다 꽤 소요돼서, 적은 양은 손설거지가 마무리가 빠르다. 여하튼 네 식구엔 제격이다.


정리하고 나니 둘째 학원 시간이다. 집 앞이라 혼자 가라니 안 간다. 그냥 데려다 주려니 자꾸 늘어진다. 그래, 이김에 나도 잠깐 쉬다 와야지. 첫째에게 할 일을 서너 번 강조해 두고(아침에 다 못한 그놈의 수학숙제) 집을 나선다. 집에 와서 검사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둘째를 학원에 밀어 넣고 나오는데 큰아이 친구가 문 앞으로 나와 말을 건다. "유튜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요즘 아이들은 쿨하다. 어른도 친구 같다. 나도 편하다. "응, 아니야~안녕!" 아닌 건 아닌데 자세히 말하기 부끄러웠다, 아니 번거로웠다. 아침부터 탈탈 털린 몸과 마음을 추스르러 나왔으니, 얼른 카페로 향한다. 오늘 막 발행된 무료음료쿠폰이 있다. 냅다 사용하러 간다. 이런 건 놓치면 안 된다. 따뜻한 뱅쇼를 주문한다. 책을 꺼낸다. 익숙한 듯 의미 없는 사진을 한 장 남기고 책을 편다. 책 제목에 요즘의 싱숭생숭한 마음이 담겨있다. 자꾸 늘어지는 몸과 마음을 다잡고 싶다. 이러지 않으면 동굴 속으로 들어갈 것 같다. 내 딴엔 이리도 버둥버둥 노력하며 사는데 놓치는 부분이 많다. 지금의 소중함을 새삼 느껴야 더 힘이 날 것 같다. 사람은 이런가 보다. 어떻게든 살 방도를 찾아낸다. 친구나 멘토와 상담을 하든 혼자 울든 책을 읽든 스스로 헤쳐나간다. 나도 그렇다. 되든 안 되든 하루를 버티고 살아내고, 한 발씩 더 나아간다. 아이들에게 하는 잔소리의 반만큼이라도, 엄마도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전날 사소한 언쟁이 있던 남편에게도 보여줘야지. 그래야 에너지를 장전해 계속 당당히 그들에게 큰소리를 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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