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같은 말투로 말하고 있나요?
어른이란 뭘까. 성인 중에서도 어느 정도 성숙한 사람, 자기 앞가림을 하면서 권리와 책임, 의무 따위를 잘 구별하고 이행하는 사람이 어른 아닐까? 요즘 세상은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은 누구인가'처럼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는 진짜 어른 찾기에 몰두해 있는 것 같다.
유행하는 쇼츠나 릴스 같은 짧은 영상을 보다 보니 90년대 즈음만 하더라도 20대부터 자못 어른의 인상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 시대가 원하고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에 맞추어 20대만 되더라도 저절로 어른이 되어가던 그 시대의 사람들. 외형만 그랬던 이들도 분명 있겠지만 지금에 비하면 훨씬 많은 어른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요즘은 어떠한가. 겉으로 보기에도 10대 후반과 20대 중반까지는 구분하기 어렵고, 20대와 30대, 30대 후반과 40대 역시 분간이 쉽지 않다. 나도 그중의 한 사람이지만, 그래. 우리 세대가 솔직히 그렇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도 그럴진대 그들의 속마음은 어떨까.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세대별로 나뉘어 있던 문화를 전 세대가 함께 향유하는 사회적 분위기 역시 여기에 한 술 더 보탠다.
그래서 더더욱, 말하기를 배우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나의 마음은 아직 어린데 사회에서는 그렇게 봐주지 않는다. 일터로 나가고 제 몫을 하고 싶지만 어린 나의 자아가 아직도 온몸을 맴돈다. 입을 열고 내 생각을 말하는 게 쉽지 않다. 어릴 적부터 알고 있던 나이 든 꼰대들의 말투를 굳이 따라 할 생각도 없다. 평소 보는 OTT나 유튜브 속 인물들의 말투 역시 나와 비슷하다.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도 나이 듦에 따라 어떻게 성숙하게 말해야 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린 말투를 쓰는 사람들의 특징은 보통 이렇다.
1. 입을 많이 움직이지 않는다.
입을 위아래는 물론이고 특히 양 옆으로 벌리는 것을 거의 하지 않는다. 사진을 찍을 때도 시원하게 웃기보다는 입을 손이나 다른 것으로 가리는 게 유행 아닌 유행인 적도 있다. 입을 가리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말을 보통 많이 한다.
"그른데~" (그런데)
"이곤데~" (이건데)
"채선을 다알게여." (최선을 다할게요)
"그럴 스 잇찌." (그럴 수 있지)
"어떻게 댄 거야?" (어떻게 된 거야?)
2. 말 끝이 계속 올라간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의 인사법'을 떠올려보자. 보통 아이들은 준비해서 말을 할 때 특히, 줄줄 책 읽듯 말하는 경향이 있다.
"1학년↗ 1반↗ 이민하↗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식이다. 실제 초등학생이 이렇게 말을 하면 아주 귀여울 것이다. 다만 다 큰 어른이 이런 억양으로 말을 한다면 그건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런 어른들은 보통 이런 식으로 말한다.
"제가↗ 조사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아이들과 별로 다를 게 없다.
3. 조사 또는 어미를 길게 늘여 말한다.
2번과 동반되기도 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아니요~~↗"
"지금~~ 보시는 것처럼~"
이렇게 말 끝을 담백하게 끊지 못하고 길게 늘인다. 결과적으로는 마지막 말 끝도 늘리다 못해 흐려지고 만다.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작아지며)..."
4. 어미를 확실한 서술어로 종결하지 않는다.
상하관계가 확실하던 예전에는 직장 선후배 사이나 사회에만 나가도 일명 '다나까체'를 써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말의 마무리를 '다, 나, 까' 셋 중의 하나로 써야 한다는 이상하고도 은밀하게 이어지는 법칙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한 지금은 거의 그렇지 않다. 물론 직종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아주 많이 자유로워진 게 사실이다. 다나까로 말을 맺느라 원치 않아도 말끝을 흐릴 수 없었던 때와 달리 요즘은 말의 마무리가 오히려 어려워졌다. 다나까 말투가 좋다는 뜻이 아니다. 계급의식이나 군기를 잡기 위해서가 아닌, 성숙하고 똑 부러지는 말투를 만들기 위해 말끝을 확실히 맺자는 말이다.
"아니요오...."
"그런 것 같습니...ㄷ"
"이쪽인 것 같은데요..(흐리며)"
심지어 진짜 어린이들은 이렇게도 말한다.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님!"
"저게 뭐임?"
"이거 진짜 꿀팁임. 내가 보장함!"
실제 어린이들의 경우 이젠 이렇게 말끝을 아예 줄여가고 있다.
5. 말 줄임을 많이 쓴다.
굳이 어린 말투에 넣어야 할까 말까 조금 고민했다. 왜냐하면 이건 애고 어른이고, 전 세계적 트렌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국의 언어를 사랑하고 지키는 사람들은 이 '말 줄임 문화'를 그리 응원하진 않는다. 점점 그 언어 본연의 미를 퇴색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길게 말하기 귀찮아서, 또는 유행어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또래와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 나아가 꼰대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일부러 줄임말을 공부하기도 한다. 내가 최근 본 어떤 쇼츠에서는 과거부터 미래까지의 언어 중 동일한 문장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재미있게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당신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1980년대)
"너는 몇 살이야?" (1990년대)
"몇 살이야?" (2000년대)
"몇 살?" (2010년대)
"나이?" (2020년대)
"Huh?" (2040년대)
...
"ㅇ?" (2080년대)
설마..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겠지만 조금은 걱정스러워지는 요즘이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