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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리할리 Dec 13. 2020

직업이 여러개인 시대가 왔다

일본과 한국의 같은 듯 다른 부업 붐


나에게는 끼워팔기, 그쪽에는 파이프라인 활용하기 


일본에서 구직활동을 하면서 연락을 했던 에이전트 회사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나의 컨설턴트는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었는데 상담실에 컴퓨터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이력서를 같이 리뷰하고 지원할 만한 포지션을 필터링하는 상담이 다 끝나갈 무렵, 살짝 다른 이야기를 꺼내더라. 이력서를 눈에 띄게 예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사실은 본인이 친구들과 함께 이력서를 프로페셔널하게 바꾸어주는 회사를 만들어서 부업(副業)을 하고 있는데 관심 있으면 연락 달라고.


내가 일본에 와서 지금 끼워팔기 영업을 당하고 있는건가! 지금 생각하면 한번 고려해 보겠다고 넘어가면 될 일이었는데, 아직 현지 구직 시장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은 꼬꼬마 외쿡인 취업준비생 입장에서 기어코 한번 더 물어보고 말았다. 기업에서는 최대한 튀지 않고 정해진 형식을 잘 따른 서류를 선호한다고 하던데 이력서 포맷도 다들 사용하는 기본 템플릿을 써야 하지 않느냐고. 아이고 열심히 사는 청년 앞에서 눈치없이 그런 말을 하고 말았다.


아무튼, 이때 일본에서 부업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었다. 나에게는 끼워팔기 현장이었지만, 그쪽 입장에서는 구직자들의 이직을 도와주면서 동시에 관련 상품도 함께 판매할 수 있는, 소위 훌륭한 '파이프라인'을 만든 사례였다.


우리에게 너무나 낯선 말, 일손 부족


세상에서 가장 늙은 나라라고 불리는 일본의 최근 몇 년간 산업의 트렌드를 설명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일손 부족'이다. 나와 같은 세대인 한국의 2, 30대들이 요즘 얼마나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비추어보면 일본의 구직자 우위 채용 시장은 그저 부럽다. 2019년 10월 기준 일본의 총인구는 약 1억 2,616만 7,000명으로 9년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15세 이상 64세 이하 생산연령 인구의 비중이 2019년 기준 59.5%로 1950년 이후 역대 최저 비율이라고 한다.


일본 정부는 2018년 '일하는 방식 개혁' 개정법을 통과시키고 2019년 4월 1일부터 이를 본격적으로 시행하면서 노동 인구의 부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1) 초과 근무시간 상한을 규제하여 초과근무가 가능한 시간을 월 45시간, 연 360시간 미만으로 지정하였다 2)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해서 동일노동에 대해 동일임금 원칙을 천명하기도 했는데 기본급 및 수당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불합리한 처우 차이를 없애는 것을 골자로 한다. 3)연수입 1075만엔 이상의 일부 전문직 대상으로는 야근 수당을 지급하는 대신 성과에 따라 임금을 결정하는 '탈시간급(脫時間給) 보수체계'를 도입했다.


들어가는 시간이 아닌 퍼포먼스를 강조하면서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고, 비정규직이라도 같은 노동에 대해서는 정규직과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여 가사 및 육아를 병행하는 많은 여성 근로자들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국인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2019년 10월 기준 일본의 외국인 노동자수는 165만 8804명으로 전년 대비 13.6% 증가한 수치를 보였다. (2020년 통계에는 내가 +1 기여했지..) 2000년대부터 일본은 인구 감소로 인해 나타날 문제를 예상하고, 이민 정책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건설, 개호 같은 단순 노동직뿐만 아니라 고도 전문 지식이나 기술이 요구되는 인재 유치에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1990년~2019년간 일본의 생산연령 인구(15세 이상 64세 이하)의 비중 추이(초록색 부분) 출처: 코트라, <부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가는 일본>


이러한 인구 구조 변화는 산업의 구석구석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마존, 라쿠텐을 필두로 인터넷 택배 주문량은 늘어나는데 택배 배송 인력이 부족해서 일본 택배시장 점유율 독보적 1위인 야마토 운수가 2017년에 개인용 택배 운임을 15% 인상한 것이 당시 큰 뉴스였다. (가격 인상은 27년 만의 일이었다고) 2019년에는 세븐일레븐의 한 가맹점주가 새벽 시간대 매출 부진 및 아르바이트 인건비 상승 부담으로 본사의 허락 없이 24시간 영업을 중단하여 화제가 되면서, 편의점의 24시간 영업 방침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되기도 하였다. 식당에서 접객할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하니 자판기나 로봇 역시 코로나 이전부터 빠르게 도입되었다.


일본에서 부업에 관한 논의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빨리 시작된 배경에는 이러한 일손 부족이라는 인구 구조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이 곳에서도 탑티어 기업들은 줄 서 있는 지원자들 중에서 골라서 채용을 하지만, 중소규모의 기업이나 지방에 위치한 기업, IT 기업에서는 풀타임 고용이 아니라 부업 인재를 찾아서라도 일손을 메워야 하는 상황이라서 부업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한국보다 일찍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는 직장인들이 고용 불안 때문에 n잡러를 꿈꾸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부업을 공급하는 쪽 뿐만 아니라 기업 사이드에서도 부업 인재를 고용해서 부족한 일손을 메꾸고 싶어하는, 부업에 대한 커다란 수요가 있다는 점이 큰 차이이다.


일본 업종별 인재 부족률 순위 (출처: 코트라, 일본 기업이 직원의 부업을 허락하는 이유는?)


하나의 직장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


일손이 부족한 기업들만 부업 인재를 찾는 건 아니다. 본업을 갖고 있는 직장인 입장에서도 부업은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지이다.


1) 월급통장 하나만으로는 만족할  없다

부업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추가 수익 확보다. 아래 표에 나온 일본 샐러리맨 평균 연 수입을 보면, 이게 뭔가... 싶다. 아무리 경제가 안 좋다 안 좋다 해도, 한국의 거시 경제 그래프를 보면 대부분 우상향 하는 추세를 보이는데 1995년에 비해 2019년 근로자들의 수입이 더 적다니. 저성장, 저물가가 장기화되어버린 일본 국민들의 주머니 사정은 GDP 세계 3위 국가의 타이틀에 맞지 않게 그리 풍족하지 않다. 넉넉하지 않은 수입 때문에 추가적인 수입처를 찾을 수 있는 방법으로 부업에 사람들이 눈을 돌리고 있다.

출처: 프레스맨


닛케이에서 올해 427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부업 관련 앙케이트 조사에 의하면, 부업을 하고 있는지에 관한 항목에서는 이직 희망자의 12% 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찾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8.6%, 관심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64.9% 달했다. 이직을 생각하고 있지 않은 그룹에서는 부업을 하고 있는 비율이 10%, 찾고 있는 비율 2.5%, 관심이 있다는 비율이 56.1% 이직 희망자 그룹보다는 조금 낮게 나온다. 부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본 부업의 목적 1위는 단연코 '추가적인 수입 확보'이다. 이직 희망자들의 71.9%, 이직을 생각하고 있지 않은 그룹의 69.8% 비슷한 비율로 추가적인 수입이 가장  동인이라고 답했다.


닛케이 신문사에서 진행한 부업 관련 앙케이트. 부업의 목적 1위는 단연코 '수입 확보'


2) 나의 전문성을 살려 커리어를 개발한다 (부업시장의 양극화)


하지만 최근 부업 붐을 추가 수입으로만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실제로 부업을 하는 사람들을 수입 크기로 나누어보면, 부업 인구는 저소득 수입층과 고소득 수입층으로 양극화되어 있다. (아래 표 참고) 부업 인구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층의 본업 연봉은 99만엔 이하, 그리고 1000만엔 이상 초고소득층 두 그룹으로 극단적으로 나뉘어져 있다.


즉, 본업으로 수입이 낮은 편에 속하는 그룹에서는 부업의 동기를 경제적인 이유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겠지만, 고소득층의 부업은 경제적인 이유 뿐만 아니라 약간의 여가활동 느낌 같다. 특히 부업 수요가 가장 높은 IT 및 개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다양하게 활용하여 추가적인 수익도 확보하고 커리어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쏠쏠한 방법으로 부업 활동을 하고 있다(좋겠다...)


본업 연수입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부업 참여 비율 (출처: 東洋経済、12월 5일호 특집 <재택근무도감>)


부업 인재를 필요로 하는 회사와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crowdworks 같은 중개 플랫폼 서비스나, 지방의 기업들을 도심의 인재들과 연결해주는데 특화한 joins 다양한 관련 서비스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3)  모든 흐름에 기름을 부어버린 코로나19


그리고 대망의 코로나19가 조금씩 고개를 들던 부업 시장에 기름을 콸콸 부어버렸다. 2020년 일본은 코로나로 처음으로 재택근무를 도입한 기업들이 생겨났고 (우리회사 포함) 재택 근무를 위한 인프라와 가이드라인을 하나씩 만들어 나가면서 코로나 시대에 빠르게 적응해갔다. 육아 때문에 단축 근무로 근무하고 있던 워킹맘들이 재택근무가 도입되면서 풀타임으로 전환해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다른 기업의 소식도 들린다.


집에서 일하니까 통근시간 지하철에 끼여서 이동하는 최소 2시간을 절약할 수 있네? 회의는 얼굴 보면서 해야 하는 건 줄 알았는데, 모니터로 보면서 해도 아무 문제 없네? 컨퍼런스 같은 건 직접 들으러 가야 했는데 온라인으로 들으니까 돈도 절약하고 편하네? 코로나로 코로나가 우리 일상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는 날이 오더라도 다시 주 5일 출퇴근하는 삶으로 돌아가는 건 이상하지 않나? 근무시간 외에 시간이 많이 남는데 이 시간에 다른 일을 한번 해 볼까? 코로나19는 이처럼 먼 미래에나 이루어질 것 같은 다양한 일하는 방식을 앞당겨 보여주었다.


부업 관련 정책 바꾸는 기업들 


야후 재팬은 2020년 7월, 대대적으로 부업(副業) 인재를 모집하였여 화제가 되었는데 100명의 부업 인재를 모집한 공고에 4500명 이상의 지원자가 몰렸으며, 10월 말 기준 104명과 위탁업무 계약을 체결하였다고 한다. 부업인재 선발자들의 평균 연령은 37세로 30대가 41%로 가장 많으며 10세 초등학생과 고교생을 포함한 10대도 9명나 된다. 해외에서는 프랑스와 중국에서 1명씩 참여하고 있다. 본업도 기업인 및 의사, 만화가, 연예인, 건축가등 다양하다고 한다. 부업인재로 선발된 이들 104명 중 대다수인 101명은 '어드바이저직'이라는 직함으로 야후 간부와 논의해, 신사업의 기획 입안 등을 담당하는 프로젝트에 23개월 간 참가하며 보수는 월 5만엔 수준이다.


IT 대기업인 야후의 이번 부업인재 채용은 메이저 기업들이 부업 인재를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 입장에서도 단기간의 짧은 호흡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열정 넘치고 능력있는 외부 인재 풀을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정사원을 고용하는 것보다 적은 비용으로 고용을 할 수 있으며, 필요한 업무량에 따라 고용 인원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반면, 야후 재팬과 같은 경우와는 조금 달리, 울며 겨자먹기로 직원들에게 부업 및 겸업을 허용하는 기업도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대표 항공사 ANA홀딩스는 올해 1~3월 587억 엔(약 6,700억 원)의 분기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비행기가 뜨지를 못하니...ㅠ) 근무시간 축소 및 급여 일시 삭감 조치에 따라, ANA는 조종사와 승무원을 포함한 전체 직원 1만 5000명 대상으로 2021년부터 지방 거주 및 폭넓은 범위의 부업을 인정한다고 발표하였다.


올해 7월에는 기린 홀딩스가 부업 금지 조항을 해제했고, 9월 하순에 부업 금지를 해제한 다이도 그룹 홀딩스는 부업의 근무시간을 월 35시간까지로 제한하고 심야 근무도 금지하여 부업에 지나치게 집중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 마련했다. 미츠비시지쇼는 부업을 하는 사원 대상으로 컴플라이언스 연수를 실시해 정보 누설 대책을 주지 시키고 있으며 로토제약은 기밀 정보 누설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해 같은 제약업계 기업이나 헬스케어 관련 기업에서의 부업을 금지하지만 다른 업계에서의 부업은 인정한다고 발표하는 등 직원들의 부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본업에나 집중하라고 부업을 무조건 금지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 부업 및 겸업을 허용하고 있는 기업은 약 30%)


같은  다른 한국과 일본의 부업  


한국에서도 직업이 여러개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최근 자주 보이는데, 한국에서 나오는 N잡러의 논의는, 일본과는 조금 결이 다른 것 같다. 일본은 일할 사람들이 부족한 인재 부족 문제가 먼저 사회적인 이슈로 크게 부각되었고, 인재를 찾는 기업측 수요가 커져 있는 상황에서 부업 인재들이 시장에 들어왔다면, 한국은 여전히 일할 수 있는 자리가 너무나 부족하다.


한국에서는 장기적으로 인구 구조가 일본과 비슷해져 간다지만, 현재 일본 수준으로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낮아지려면(60% 이하) 2035년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인구 축소는 우리가 분명히 당면하게 될 사회적인 과제이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문제는 일손 부족이 아니라 높은 실업률 문제지 않은가.

 

한국의 인구변화, (출처: 뉴시스 <생산가능 인구 내년부터 연 33만 명씩 급감… '인구절벽' 가속> )


부업 붐으로 보이는 한국의 현재 N잡러에 대한 관심은, 현재 본업을 언제까지 이어나갈 수 있을지 짐작할 수 없는 직장인들의 불안의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본업에서 더 인정을 받기 위해 더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이는 방법으로 그 불안을 해소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유튜브, 스마트스토어, 수익형 블로거, 주식, 부동산 투자 등 여기저기 문을 두드리는 사람도 많아 보인다.


한 곳의 직장에서 평생 일하면서 헌신을 다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는 지나갔다.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지고 여러 곳의 회사에서 동시에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진정한 능력자로 인정받는 사회로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유연한 고용 형태와 성과를 중요시하는 고용 문화가 자리잡을수록 자기만의 전문성을 어필할 수 있는 인재들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는 더 넓어질 것 같다. 인구 구조의 변화와 코로나19 때문에, 직업이 여러개인 시대의 모습이 조금 일찍 그 모습을 드러낸 일본의 최근 부업 시장 상황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참고 자료:

https://www.nikkei.com/article/DGXMZO65479880W0A021C2000000/

https://news.kotra.or.kr/user/globalBbs/kotranews/782/globalBbsDataView.do?setIdx=243&dataIdx=184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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