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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리할리 Jul 18. 2021

도쿄 미술관 나들이

이사무 노구치와 도모카즈 마츠야마

오랜만에 우에노 공원


시끌벅적한 벚꽃 시즌만 피하면 우에노 공원 일대는 산책하기 좋다. 2년 전만 해도 닛포리 근처의 일본어 학교에 다니면서 오전 수업을 마친 후,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야나카 묘지를 지나 도쿄예대를 지나 우에노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이 동네의 여유를 만끽하곤 했다. 특히 야나카에는 오래된 동네 특유의 느긋함이 있고 운이 좋다면 게으른 고양이들도 만날 수 있다.


정겨운 우에노 공원


근처에 도쿄도미술관, 국립서양미술관, 도쿄예대 미술관, 도쿄 국립박물관 등 전시를 볼 수 있는 곳이 많아서 이 일대의 멋을 더하는데 얼마 전 우에노 공원에 들렀을 때 마침 눈에 띄는 전시회 포스터가 있어서 잠시 들러 보았다.


<이사무 노구치: 발견의 길> 전시 포스터


이사무 노구치 Isamu Noguchi


이사무 노구치(1904-1988)는 조각 작품뿐만 아니라 조경 디자인, 가구, 조명 디자인, 무대 디자인으로도 유명한 일본계 미국인 아티스트였다고 한다. 일본인 아버지 요네 노구치는 영문학자이자 시인으로 활동한 지식인이었으며 미국인 어머니 레오니 길모어는 작가 겸 편집자였는데, 요네 노구치는 당시 서양에 일본 문학을 전파한 지식인이긴 했지만 좋은 남자는 아니었나 보다. 임신한 길모어를 미국에 두고 혼자 일본으로 돌아가버렸다는..


LA에서 태어난 노구치는 두 살 무렵 어머니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다. 그때 용기를 뜻하는 '이사무'라는 일본식 이름을 아버지로부터 받게 되지만 이 셋이 함께 생활한 기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심지어 아버지 노구치는 결혼을 해서 다른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고. 길모어는 꿋꿋하게 일본에서 영어 교사로 일을 하면서 노구치를 홀로 양육했고, 유년기의 노구치는 자연스럽게 혼자 남겨져 있는 시간이 많았다.


노구치가 13세가 되었을 무렵 그는 홀로 미국으로 건너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콜롬비아 대학교 의대에 입학한다. 하지만 곧 의사의 길을 접고 뉴욕의 레오나르드 다빈치 미술학교에서 예술 활동에만 전념하는데 뉴욕에서 열린 브랑쿠시 전시회의 조각 작품을 보고 큰 감명을 받은 후 파리로 건너가 브랑쿠시의 견습생이 된다. (브랑쿠시는 미술 교과서에서도 봤던 <공간 속의 새>라는 작품의 작가!) 그 곳에서 노구치는 추상화, 미니멀리즘을 특징으로 한 브랑쿠시의 작품 세계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얼마 전 Artizon 미술관에서 만난 브랑쿠시의


노구치는 미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언제나 주변인이었다. 미국에서는 진주만 습격과 제2차 세계대전의 적국이라는 꼬리표를 부쳐 일본인에 대한 적개심이 팽배했었고, 유년기를 보낸 일본에서도 노구치는 이방인 취급을 당했다. 일본계 미국인 예술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을 수 있고,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거란 기대를 안고 애리조나에 있는 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소에 자원해서 들어가 보기도 하지만, 스파이로 오해받는 등 그곳의 생활은 노구치가 상상한 것과 달랐다. 그는 반년 만에 그곳을 도망치듯이 빠져나온다.


태어났을 때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줄 만한 가족도 그에게는 없었다. 자신에게 이름과 성을 물려준 아버지를 거의 만나지 못한 채 자랐고, 어딘가에 안전하게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을 맴도는 예민한 감수성이 어릴 때부터 자라났을 거라 짐작해볼 수 있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재료는 돌이었는데,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1960년대부터는 일본 시코쿠의 가가와현에 작업실을 마련한 후 석조 작업에 몰두한다. 도쿄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회는 그의 조각 작품을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전시장 한 쪽에서는 그의 생전 인터뷰를 담은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그는 '우리는 모두 돌에서 와서 돌로 돌아간다'라는 심오한 말을 하기도.


작업 중인 노구치. 조각가가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면 얼핏 구도자의 모습이 보인다


도쿄도미술관 <발견의 길> 전시


전시는 <조각의 우주>, <빛의 세계>, <돌의 세계> 세 개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전시 공간에 들어가면 그의 대표적인 조명디자인 아카리 시리즈가 먼저 환하게 관람객을 반긴다. 아카리 시리즈는 노구치가 일본 기후현의 전통적인 랜턴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조명 디자인인데 종이, 대나무, 철로 만들어진 이 아카리 조명이 실내 공간을 달빛처럼 밝히고 있었다.


아카리 시리즈는 노구치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자리 잡는데 <빛의 세계> 섹션의 아카리 제품을 보고 "이케아에서 샀던 것과 비슷한데?"라고 옆에 있는 H상한테 농담을 던졌는데, 알고 보니 실제로 노구치가 아카리를 디자인한 후 무수한 카피 제품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원조가 여기에 있었군)



전시회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아카리 시리즈


불빛이 자연스럽고 단아한 멋을 낸다 (출처: 노구치 뮤지엄 홈페이지)


스틸, 알루미늄, 청동, 돌로 만들어진 그의 조각들은 군더더기 하나 남기지 않은, 깨끗하게 정제된 아름다움을 은은하게 풍기고 있었다. 그나저나 조각 작품은 어디에 놓이는지에 따라 감상의 맥락이 크게 달라지는 것 같다. 조용하고 적당히 어두운 공간에 간격을 두고 자리 잡고 있는 작품들을 가까이 다가가서 보았다가 멀찍이 떨어져서 보았다가 하면서 그 형태와 공간감을 천천히 음미해 볼 수 있었는데, 같은 작품이 번잡한 도심의 고층 빌딩 앞에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조형작품으로 놓여있었다면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일본에서 열린 전시회라서 그런지 일본의 문화유산이 노구치에게 끼친 영향이 살짝 과장되어 설명되어 있다고 느꼈다. 그가 일본식의 조경 문화와 일본의 미니멀리즘, 기후현의 랜턴 등에서 영향을 받는 것은 맞지만 다른 자료들에서는 일본, 그리스, 이탈리아 등 다양한 문화권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다고 평가하는 듯한데 말이지.


Coud Mountain(1982-83) 구름인 듯 산인 듯 / Magriette's stone(1982-83). 초현실주의 화가인 그 마그리트
Void(1971) 이 작품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비어있는 공간의 공허함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청동의 묵직함

Avatar (1947) 힌두교 신화에 나오는 신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한다/ Mortality (1959) 노구치에게 죽음은 이 땅에 서 있으면서도 언젠가는 중력이 끌어당기는 대로  땅으로 돌아가야 하는 그런 필연이었을까 (도쿄도미술관, 노구치 뮤지엄 홈페이지)


묵직한 조각들이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어보면서, 그의 작품을 문학 장르에 비유한다면 시(poem)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다. 기승전결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보편적인 감정을 두드리는 아름다우면서 슬픈 감정을 환기시키는, 침묵하게 만드는 작품들.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면서 그가 찾은 답은 국적, 인종, 그 모든 것에 관계없이 인간이라면 모두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그 보편적인 진리였을까.


어디보자...



도모카즈 마츠야마 Tomokazu Matsuyama


요즘 미술계에서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는 일본인 아티스트 도모카즈 마츠야마의 전시회에 다녀왔다. 마츠야마는 일본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서 8살에 LA로 건너간다. (LA는 노구치가 태어난 바로 그 곳!) 유년 시절 미국의 다양성, 자유분방함, 개인주의 문화와 함께 자신이 소수자가 되는 경험 역시 동시에 맞닥뜨린 그는 3년 반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온 후에는 다시 미국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일본 사회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 후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2002년 뉴욕으로 건너간다. (뉴욕이라면 노구치의 활동 거점이었으며, 그가 직접 설계하고 디자인한 노구치 뮤지엄이 있는 바로 그 곳!) Pratt 인스티튜트에서 그래픽 디자인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디자인보다는 미술이 본인을 표현하기에 더 적합한 방법이라고 느껴, 25살의 나이에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고등교육 기관에서 정식으로 미술을 배운 적이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책을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한 셈이다.


노구치가 자신의 정체성을 깊이 고민했던 만큼 마츠야마의 작품을 이해할 때에도 이 '정체성(identity)'이 매우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했다. 바로 이 정체성의 고민을 두 아티스트가 어떻게 다르게 풀어냈는지를 비교해 보는 것이, 며칠 간격으로 다녀온 두 전시회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였다.


도모카즈 마츠야마 (이미지 출처: picturethispost)


KOTARO NUKAGA, <Boom Bye Bye Pain>


21년 5월 22일부터 7월 10일까지 롯폰기의 KOTARO NUKAGA 갤러리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렸다. 작품들을 본 후 직관적으로 눈에 들어온 것들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가상 공간, 동양 미술에 나올 법한 동물, 식물들이 또 서양적인 인물, 심볼들과 함께 놓여 있는 어색함, 회화 보다는 그래픽 디자인에 가까운 듯한 화려한 색감과 평면적인 공간감, 비너스의 탄생을 연상시키는 인물 구성의 배치와 무신한 듯한 표정’ 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캔버스에 문양의 패턴이 반복적으로 찍혀 있는 것도 특이했다. 찾아본 자료에 따르면 작품 위에 뿌려져 있는 하얀색 점은 일본에서는 생사관을 표현하는 모티브 중 하나이며,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에 대한 마츠야마의 오마주이기도 하다고.



River to the Bank (2021)
Spiracles No Surprises (2021)
이것은 초큼 난해하군


마츠야마 자신이 경험한 문화권의 다양한 모티브들을 가져와 하나의 캔버스 위에서 섞어 버리고, 시간이나 공간적인 맥락을 해체함으로서 어느 한 곳에 속한다고 정의내리기 힘든, 극단적으로 말하면 아이덴티티의 해체를 선언하는 듯한 기세가 그림에서 뿜어져 나왔다.


참고로 그는 미국의 스트리트 컬처, 스트리트 아티스트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뱅크시, KAWS 같은 아티스트들처럼 권위, 전통, 구분짓기를 거부하려는 작품의 맥락을 이런 배경을 고려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유년기 LA 에서는 스케이트 보드를 타면서 미국 사회와 연결될 수 있었고, 일본에 돌아와서는 스노보드를 수준급으로 탔다고 하는데 이런 개인적인 성향도 작품에서 발산하는 에너지와 연결되어 있을 것 같다.


노구치의 작품을 시에 비유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마츠야마의 작품은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설정을 통해 현실을 그리는 SF 소설에 가까울 것 같다고 혼자 구분지어 보았다. 마츠야마처럼 서로 다른 문화권을 오가며 생활해야 했거나, 인종 차별을 당했거나 정체성의 고민을 심각하게 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의 그림에 공감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오늘날 개인들이 특정한 아이덴티티로 자신을 구분짓는데 큰 거부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 같다. 역사, 전통, 권위 같은 거대한 사조를 따라가기보다 다양한 가치와 경험을 즐기고 받아들이면서 자기다움을 만들어가려는 자세가 오늘날의 시대정신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마츠야마의 작품이 요즘 미술계에서 핫한 것이겠지.






p.s. 1. 아싸 기질이 강한 나는 마츠야마 보다는 노구치의 작품에 마음이 더 오래 머물렀다. 우리는 모두 돌이야...


p.s. 2. 뉴욕의 롱아일랜드의 노구치 뮤지엄과 일본의 다카마즈에 있는 이사무 노구치 가든 뮤지엄에 가보고 싶다.


p.s.3 노구치가 디자인 한 커피테이블이 한국에서는 '유아인 커피테이블'로 유명한가보다.


노구치 커피테이블 (출처: 허먼밀러 홈페이지)


참고한 글:

美術手帖 6월호 마츠야마 특집 기사와 이웃님의 글

https://blog.naver.com/3mastokyo/222385866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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