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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리할리 Sep 15. 2021

일본과 케이팝

<케이팝의 작은 역사> 리뷰


일본과 케이팝의 연결고리


일본에서 활동하는 김성민 교수가 저술한 <케이팝의 작은 역사>는 케이팝이 태동한 1980년대 후반부터 방탄소년단, 블랙핑크가 글로벌 무대에서 독보적인 아티스트로 우뚝 선 현재까지 약 30년의 기간 동안 케이팝의 형성 과정, 케이팝을 둘러싼 음악적, 산업적, 사회적 맥락을 살핀다. '케이팝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내리려 시도하기보다, 케이팝을 하나의 미디어로 이해하고 그 미디어에 담긴 감각과 스타일은 무엇인지, 또 그것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특히 저자가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만큼 케이팝이 제이팝, 그리고 일본 시장 내에서 지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비중있게 다룬다. 일본 엔터 업계가 한국의 엔터 업계의 성공을 연구하고 벤치마크할 만큼 이 두 시장의 판도가 다이내믹하게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케이팝과 일본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가 특히 흥미로웠다.



1. 80년대 일본 음악


트로트, 발라드가 중심이던 80년대 한국 가요신에 댄스, 힙합, 락 등의 요소를 가져와 새 장르를 열어젖힌 그룹은 단연코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다. 넷플릭스 다큐 <익스플레인: 케이팝의 모든 것>에서도 서태지 이전과 이후로 한국 가요를 나눌 만큼 이들이 한국 가요계에 미친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이들은 당시 미국과 일본 음악의 사운드를 단순히 모방하는 차원을 넘어, 이를 변용하고 참고하여 새로운 90년대 한국의 10-20대가 원하고 있던 새로운 음악을 선보였다고 평가받는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할 당시 난 유치원생이어서 서태지 음악 자체에 열광하지는 않았었는데 중학생 사촌 언니가 서태지의 돌연 은퇴 소식에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자기는 이대로 죽어버리겠다고 말했던 것만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로 잘 살고 있다)


저자는 소방차가 데뷔한 1987년부터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선언한 1996년까지를 케이팝의 원형이 만들어진 시기로 본다. 당시 해적판 카세트테이프, 비디오 등으로 유통되고 있던 일본 음악은, 미국 음악과 함께 한국의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일본에서는 <스타 탄생!>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1970년대부터 등장하는 등 그때부터 가창력 보다 스타성을 중시하는 독자적인 일본형 아이돌 시장이 형성되고 있었다고 한다. 90년대 한국 음악이 일본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았다는 건 개인적으로는 생소한 정보였는데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소방차의 무대(1988년)와 소년대의 무대(1987년)를 비교하면서 그 유사성을 확인해 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3xwe4tXnajo


https://www.youtube.com/watch?v=4b1bSrbrFVg



80년대 제이팝이 한국 가요에 미친 영향력은 발라드 영역에서도 두드러지는데 뮤지션 윤종신은 안전지대와 같은 80년대 일본 뮤지션들이 우리나라의 80-90년대 편곡자들에게 미친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고 언급한다. 1984년 발매된 안전지대의 대표곡 <그대에게>를 들어보니, 어딘가 친숙한 90년대 한국 발라드 감성이 모두 녹아들어있다.


동일한 곡을 캔이 2001년 <내일 또 생각이 나겠지>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했으며, (TMI 지만 내가 어릴 때 노래방에서 자주 불렀던) 포지션의 <I Love You> 역시 오자키 유타카가 1983년 발매한 곡의 리메이크 버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mB_8ys0Tb_c


하지만 한국 가요계에 미친 제이팝의 영향력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998년 정식으로 일본의 대중문화가 한국에 들어오고 PC 통신 같은 커뮤니티에서 제이팝을 노골적으로 모방하는 한국 가요계의 관행을 비판하며 자정작용이 일어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90년대 들어 제이팝 전반의 감각이 세계적 흐름과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2018년 한 유튜버가 음원을 올려 일본 시티팝의 세련된 감각을 전 세계에 뒤늦게 알린 타케우치 마리야의 Plastic Love는 1984년 발매곡이며, 마찬가지로 디지털 음원 세계에서 다시 발굴된 마츠바라 미키의 真夜中のドア(Stay With Me)는 1979년에 발매된 곡이다. 이 음악들을 듣다 보면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세련된 사운드를 일본은 30, 40년 전에 만들고 있었다는 점에 놀라는 한편, 이 화려한 영광의 시절을 뒤로하고 이후 내리막길을 걸으며 제이팝이 세계 음악 시장에서 갈라파고스화 되어버린 점에 아쉬움이 교차한다. 제이팝의 변화는 버블경제 붕괴 이후 장기 경기 침체기로 들어선 일본 경제의 변화와도 그 궤적을 같이한다.


한국의 90년대 학번은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인터넷, 휴대전화, 컬러티비 등 뉴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세대로 이런 소비자들의 감각과 감수성에 맞는 음악에의 요구 역시 높아지고 있었다. 한국의 뮤지션들은 미국의 힙합이나 락, 제이팝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변주하고 융합하여 한국적인 모습으로 재창조하며 케이팝의 초석을 닦아 나간다. (미국의 흑인음악에서 나온 힙합에는 인종차별이나 사회적인 부조리를 고발하는 저항 정신이 깔려 있었지만, 90년대 한국 힙합에는 그런 것이 없지. 사랑 노래! 아름다운 젊음! 예예예)



2. 보아의 성공이 갖는 의미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한 1996년, 바통을 이어받기라도 하듯 H.O.T.가 등장한다. SM은 미국의 음악 스타일과, 아라시 소속 사무소 쟈니스의 메니지먼트 시스템을 벤치마크하여 연습생을 뽑아 몇 년 간 트레이닝을 시킨 후 최종 데뷔 멤버를 선발하는 아이돌 육성 및 관리 방식을 도입했다. 공식 팬클럽에 부정적이었던 서태지와 아이들과 달리 SM은 공식 팬클럽을 지원하고 관리하며 팬덤을 영리하게 활용하기도 한다. 책에서는 H.O.T. 가 보여준, 케이팝 아이돌의 전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요소를 아래와 같이 나열했다.


노래, 랩, 댄스, 스타성을 포함한 종합적인 트레이닝
블랙뮤직의 영향을 받은 사운드와 한국어 랩
화려한 집단 퍼포먼스(칼군무)
시각적 매력과 서사성(내러티브)을 극대화한 뮤직비디오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사회성 높은 가사
해외 출신 멤버
헌신적인 팬덤
해외에서의 높은 인기
<케이팝의 작은 역사> 4장 케이팝의 탄생, p.82


H.O.T.의 성공적인 데뷔 이후 JYP, YG 엔터테인먼트가 잇달아 설립되면서 케이팝을 이끌어가는 3대 기획사 중심의 업계 구도가 형성된다. 90년대에도 미국에 이은 두 번째 시장 규모를 자랑하는 일본에 한국 기획사들은 계속 문을 두드렸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 90년대 일본의 음악 시장은 세계의 유행과는 살짝 벗어난, 독자적인 감각으로 움직이는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그만큼 한국 아티스트들에게 일본 진출의 벽은 높았다. 보아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2000년에 데뷔한 보아는 일본 시장을 정조준해 철저하게 트레이닝 받은 가수였다. 유창한 일본어 구사는 물론, 일본 기획사와 함께 일본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생리에 맞춘 현지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보아 이전의 일본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취향과 감성에 맞는 한국 가요를 선별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한국 음악과 일본 음악의 서열 구도가 은연 중에 존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멜로디의 노래를 한국과 일본에서 언어만 달리해서 부르며 두 나라에서 동시에 활동한 보아는 한국과 일본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되돌려 놓았다고 평가한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보아에 이어 2010년대에는 동방신기, 빅뱅, 소녀시대 등 한국 아이돌 그룹이 몇 만 명 단위의 관객을 동원하는 돔투어 콘서트를 잇달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일본 내에서 케이팝은 공고한 팬덤을 형성하게 된다. 이때에도 보아의 선례를 따라 일본어 앨범을 따로 발매하고 현지 미디어 환경에 맞춤화된 홍보 활동을 펼치는 형태는 유지된다.



3. BTS와 케이팝의 보편성


음반 판매량, 뮤직비디오 조회수, SNS 팔로워수, 빌보드 차트, 팬덤의 규모 모든 면에서 경이적인 기록을 써 나가고 있는 BTS는 더 이상 한국이라는 국가에 가두어 정의하기 힘든 '세계적인 보이그룹'이다. 이들의 성공은 케이팝이 한국, 혹은 일본의 감수성이 아닌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되는 보편성을 획득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스마트폰 보급의 확산과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반 시장이 옮겨간 건 케이팝이 작은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은 강렬한 퍼포먼스를 자랑하는 케이팝 아티스트의 무대를 전 세계로 내보내는 창구가 되었고, 한국의 기획사들은 개인 창작자들이 영상을 재가공해서 활용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케이팝의 외연을 더욱 확장시켰다. 이는 이해관계자가 얽히고설켜 2차 편집은 물론 음원 자체를 디지털 플랫폼에 공개하는 것을 오랫동안 꺼려온 일본의 업계와 대조적인 모습이다. (아라시의 유튜브 공식 채널이 개설된 연도는 2019년이다)


저자는 2017년을 일본이 케이팝을 수용하는 방식에 변화가 일어난 중요한 분기점으로 본다. 일본의 감각과 방식에 맞는 케이팝을 선별적으로 수용해 왔던 일본은, 2017년 이후부터는 글로벌 팬들이 즐기는 케이팝으로서 케이팝을 즐기기 시작했다고. 엑소, 트와이스, 방탄소년단, 레드벨벳, 블랙핑크, 세븐틴, 갓세븐, 워너원, 위너 등 일본에서 인기 있는 케이팝 뮤지션들은 더 이상 일본 미디어 환경에 의존하지 않고 소셜미디어나 아이튠즈를 통해 글로벌 팬들과 소통하고 있으며, 방탄소년단이 지상파 TV 에서 자신들의 곡을 일본어 버전이 아닌 오리지널 버전으로 따로 부른 사건을 그 근거로 든다. 그만큼 일본이라는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오릴지널 곡을 원하는 일본의 리스너들이 많아졌다고.


방탄소년단이 지난해와 올해 영어로 부른 <다이너마이트>와 <Butter> 싱글을 내기 이전까지, 유일한 외국어 앨범은 발매하고 한국어가 아닌 현지 언어로 팬들과 소통한 곳이 일본이라는 점, 그리고 팬클럽 역시 ‘글로벌 vs 한국’이 아닌 ‘글로벌 vs 일본’ 아미로 나누어져 있다는 점은 여전히 일본 시장에 맞춤화된 접근 방식을 방탄소년단 역시 따르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저자는 점차 일본향 케이팝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케이팝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국과 일본의 감각을 받아들이면서 형성된 케이팝은 '중심을 욕망하는 주변의 음악공간'에서 2017년 이후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넘어선 음악 공간'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2021년 일본에서


요즘 일본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K-Pop (그리고 K-Drama)의 성공을 열심히 분석하고, 벤치마크하고 있다. 일본 방송사 TBS는 엠넷과의 정식 계약을 통해 프로듀스 101 일본판인 PRODUCE 101 JAPAN 을 2019년 방송하기 시작했고, 여기서 탄생한 일본의 11인조 보이밴드 JO1은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NiziU는 소니뮤직재팬이 JYP와 공동으로 기획한 오디션 프로그램 Nizi Project를 통해 데뷔한 9인조 걸그룹이다. 데뷔곡 <Step and a step>은 발매와 동시에 오리콘 차트 1위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일본의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에 한국인 프로듀서가 등장해 한국어로 참가자들을 평가하는 모습은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외국인이 왜 우리나라 사람을 훈계하냐는 반발심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웬걸. 박진영이 따뜻한 말로 참가자들을 격려하면서 이들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오히려 화제가 되었다. 인터넷에는 <J.Y. Park 명언집> 같은 기사도 돌아다니는데, 참고로 공기반 소리반은 없다.


케이팝의 성공과 제이팝의 상대적인 부진을 분석하는 일본 미디어의 글을 보면, 케이팝은 내수 시장이 작아서 처음부터 글로벌 진출을 염두에 둘 수 밖에 없었지만, 제이팝은 충분히 큰 내수 시장이 있어서 외부의 변화를 민첩하게 따라가지 못했다는 논리가 자주 등장한다. 주변부의 위치에서 중심을 욕망하는 특성이 케이팝 안에 녹아 있다고 하지만, 케이팝 역시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는 점에서 고정적인 시장의 규모 만으로는 케이팝의 성격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런 양적인 요소보다는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아티스트 뿐만 아니라, 이들 뒤에 있는 프로듀서, 안무가, 작곡 및 편곡가, 스타일리스트 같은 크리에이터들 개인들의 역량이 제일 중요한 요소 아닐까. 지금 한국 엔터 업계를 지금 주릅잡는 방시혁, 박진영, 그 외 스타 PD로 불리는 이들 등 1970년대생 크리에이터들이 쌓아온 감수성과 감각, 지적 능력, 문화자본 같은, 콕찝어 설명하기 매우 어려운 '사람'이라는 요소 외에 무엇이 있을까. (이런 김빠진 결론이라니) 시스템이나 형식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의 케이팝과 10년 후, 20년의 케이팝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케이팝의 공간이 되는 한국 사회의 변화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거라고 예상해볼 수 있다.


그래서 한국 엔터 회사와 합작회사를 세워 케이팝의 포맷을 참고해 현지 가수를 육성한다고 해도, 케이팝스러운 제이팝을 듣는 대신 케이팝을 바로 들을 수 있는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반대로, 한국식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쳐 데뷔한 일본의 아이돌 그룹들이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케이팝의 요소를 벤치마크하면서도, 일본에서만 만들어낼 수 있는 그 어떤 플러스 알파의 요소가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D_nyuB8GbM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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