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할리할리 Sep 24. 2021

오키나와의 일곱 가지 얼굴

오키나와 4박 5일 여행기


2021년 9월, 우리의 늦은 여름휴가 목적지는 오키나와였다. 작년 4월 오키나와로 가족여행을 계획했다가 코로나로 무산된 후, 미리 사 둔 오키나와 관련 에세이만 읽으면서 내 언젠가 따뜻한 남쪽 섬 오키나와에 가보리라는 동경만 조용히 키워왔기에 이번 여행에 거는 기대는 더욱 컸다. 9월 오키나와는 태풍이 자주 온다며 주변에서 우려하기도 했지만, 오키나와에 가도 긴급사태 때문에 모두 문을 닫아 호텔에서 편의점 맥주만 마시고 왔다는 경험담도 들려왔지만, 우선 떠나보기로 했다. '설마 우리가 있을 때 태풍이 오겠어, 긴급사태라고 해도 볼 곳은 있을 거야.'


떠나기 직전, 태풍 14호가 오키나와 쪽으로 접근해 오고 있다는 일기 예보가 들려왔다.



1. 철조망


나하 공항에 내리자 다행히 우려했던 비는 내리고 있지 않았지만 하늘에는 역시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선선한 가을의 기운이 느껴지던 도쿄와는 달리 습하고 뜨뜻미지근한 공기가 피부에 감겼다. 그래도 어찌어찌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미리 예약해 둔 렌터카를 몰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눈에 들어온 풍경은 사진으로만 보던 에메랄드빛 바다 대신 길게 늘어선 철조망이었다. 도시의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사방을 벽으로 둘러싸고 은밀하게 숨어있는 여느 군사 기지와 달리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는 이제 막 이곳에 발을 디딘 관광객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그 존재감을 전혀 감출 생각이 없다는 듯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일본 내 미군 기지의 70%가 일본 영토의 1%에도 미치지 않는 오키나와에 모여 있다는 사실이 피부로 다가왔다.



또 하나의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듯한 미군 기지와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철조망


오키나와는 일본에 편입되기 전 1429년부터 1879년까지 450년간 존재한 류큐 왕국이라는 독립국으로 존재했었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오랜 간섭을 받다가 1879년 일본의 일부로 편입되는데,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던 1945년 오키나와 전투 이후 오키나와의 운명은 크게 달라진다. 1945년 3월부터 6월까지, 일본군에 의한 민간인 강제 징집, 자살테러 지시, 집단 자결 종용 등으로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고 미군은 1945년부터 27년 동안 오키나와를 통치한다. 오키나와를 일본에 1972년 반환한 후에도, 이 철조망이 보여주듯 미군 기지는 일본 정부의 동의하에 오키나와에 계속 주둔하고 있다.


기지 주변에서는 미군과 그 가족들을 위한 상점들의 빛바랜 간판들이 많이 보였다. 오키나와의 현대사가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상상 속의 오키나와의 모습과 살짝 빗나간 이 풍경이 조금은 쓸쓸하게 느껴졌다.



미군 기지가 위치한 지역의 간판들. 녹이 슬어 바래고 벗겨져 있다.


2. 1$ = 100円


미군 기지의 존재는 상점에서 지갑을 열 때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는데, 가게에서 무려 달러를 받고 있었다. 1 달러가 현재 환율로 약 110엔인데 이곳의 1달러 시세는 100엔으로 통하고 있었다. 달러를 엔화로 환전하는데 드는 비용,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나름 합리적인 비율로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현금을 사랑하는 일본이라는 것도 다 옛말이라 느껴질 정도로 신용카드, 모바일 페이 사용자가 급격히 늘어났지만 오키나와에서는 여전히 현금만 받는 가게들이 꽤 남아 있는 것도 독특했다. 마치 일본 본토와는 조금 다른 독자적인 질서로 움직이고 있는 곳같이 느껴졌다.



오키나와의 바다를 내려다보며 피자를 먹을 수 있었던 카진호(花人逢). 유명한 가게임에도 불구하고 캐시온니, 달러랑 엔화만 취급한다


미 군정이 시작되면서 오키나와 경제는 유례없는 경제 호황기를 맞이했다고 한다. 전쟁으로 처참하게 폐허가 된 땅을 재건하기 위해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이루어졌고, 오키나와 사람들은 원한다면 모두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당시 미군들의 월급날이면 기지 주변의 이자카야에서는 달러를 넣어둘 곳이 없어서 택배 상자를 카운터 옆에 놓아두고 들어오는 달러를 신발로 눌러 담아야 했다는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그땐 그랬지' 안주 거리라고.


현재 오키나와의 실업률은 일본의 47개 도도부현 중 가장 높으며, 근로자 평균 임금도 낮은 편에 속한다. 달러와 엔화가 여전히 함께 돌아가는 오키나와에서, 한때 달러를 쓸어 담던 그 시절의 오키나와를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미군 기지 옆 동네 차탄의 하와이안 음식점 MORNING BOWLS. 여기는 기본 언어가 영어인가 싶을 정도로 외국인 손님들이 많았다.


3. 건축


슈리성


옛 류큐 왕국의 왕궁인 슈리성을 방문했다. 역사적 명소인 만큼 당연히 임시 휴업 상태였지만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일부 시설을 부분 개방하고 있었다. 슈리성은 일본과 중국 양쪽의 건축 양식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지금 볼 수 있는 건 몇 번이나 전소된 후 다시 복원된 모습이다. 1945년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군이 슈리성의 지하 벙커에 자리를 잡은 바람에 미군의 타깃이 되어 전소되었고, 이후 복원 사업이 진행되었지만 2019년에 안타깝게도 다시 화재로 타 버린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도 한 쪽에서는 여전히 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옛 류큐 왕국의 흔적을 찾아보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나 깨끗하고 다시 지어진 티가 났다.


오키나와 지역에서 발견되는 진흙을 구워 만든 붉은색 타일이 오키나와의 대표적인 건축 양식 중 하나라고 하는데 붉은 타일의 지붕이 드문드문 보였다


나고 시청사


오키나와에서 본 건축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나고 시청사였다. 고대 유적지에 온 듯한 첫인상을 풍기는 이곳의 설계 경합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데, 1970년에 출범한 나고시의 시청사를 만들기 위해 나고 시청사 건설위원회가 조직되고, 이 모임에서는'시청사를 굳이 만들어야 하는가, 시청의 존재 의의는 무엇인가, 시청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가' 등 근본적인 질문부터 열띠게 토론했다. 위원회는 '오키나와의 건축은 무엇인가', '시청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하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건축 설계안을 경합을 통해 최종 선발하기로 한다.


10년 동안 이렇다 할 공공 건축 경합이 없었기에 1978년 오키나와의 작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낸 설계 경합에 전국에서 자그마치 308팀이 참여하는데 미리 최종 당선자를 정해놓고 형식적으로만 경합을 치르는 관례를 전혀 따르지 않은, 모범적이고 공정한 경합 사례로 아직 회자된다고 한다. 설계 경합 응모 요강문은 흡사 자치와 자립을 주창하는 매니페스토 같다. 미 군정을 거쳐 일본 중앙 정부와의 관계에서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던 오키나와의 상황과 지역의 고유성을 계승해 나가고자하는 위원회의 깊은 고민이 드러나는 명문이다. (어설픈 번역 죄송;;)


[오키나와의 지역 특성과 시청사 건축]

오키나와는 아열대에 속하며 많은 섬들과 주변 해역으로 구성, 일본 내에서도 특이한 자연환경에 놓여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이 자연에서 살아왔고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과의 오랜 관계 속에서 독특한 풍토가 형성되어 오키나와 지역의 개성적인 감성과 건축양식이 생겨났다.

그러나 현재의 오키나와 건축은 이런 역사의 결과로 존재하고 있을까. 건축의 틀, 합리성, 아름다움은 계승되고 있는 걸까.

(중략)

이런 상황에서 주최자가 시청사를 건설하는데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은 오키나와 고유의 자연조건과 그 풍토를 재고하여 오키나와를 표현할 수 있는 건축가의 상상력이다.

시청사 건축에서 풍토가 문제시되는 배경에는, 지역이 스스로 자신의 문화를 인지하고 그것을 중앙 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명확하게 평가하지 못한 데 있다. 지역이 중앙에 대결하는 관점을 잃어버리고, 행정이 국가의 말단 기구로서만 기능하는 상황에서는, 지역은 그 자립과 자치를 상실하고 문화 또한 중앙과의 격차만으로 그 가치가 판단된다.

(중략)

주최자는 이번 경합에서 오키나와의 풍토를 확실히 포착하고, 지역의 자치를 건축 속에 표현하며, 밖을 향해 '오키나와'를 표명할 수 있는 건축가와 그 설계안을 요구한다.

나고 시청사 기획 설계 경합 응모 요강 중 (名護市庁舎企画設計競技応募要項)


자치와 자립의 의미, 오키나와의 자연 풍토를 고려해 설계된 나고 시청사


경합에서 우승을 거머쥔 팀은 '코끼리 설계 집단(象設計集団)'과 '아틀리에 모빌'의 멤버로 구성된 '팀 ZOO'였다. 오키나와 건축에서 자주 쓰이는 콘크리트 블록을 두 가지 색으로 번걸아 사용하며 만들어낸 줄무늬가 인상적이다. 이 콘크리트 블록이라는 재료는 전후 미군이 도입한 콘크리트 제조 기술을 오키나와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모래를 이용해 만든 것으로, 군사 시설이나 주택 건설용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나고 시청사를 설계하는 시점에서 기껏해야 30여 년의 역사밖에 갖고 있지 않은 재료였지만, 설계팀은 지역성을 표현하는 재료로 이 콘크리트 블록을 적극 사용한다. 한 기사에서는 이 콘크리트 블록 사용이 '지역성이란 미리 부여된 것이 아니라 새로 발견되는 것'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기술하고 있었다.


시청사는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한 개방된 공간이 많았는데 그곳에서는 아열대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이 식물들은 시청사 주변에서 더위를 식힐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건물이 자연과 함께 숨 쉬고 있는 듯한 느낌도 주었다.


건물 뒤쪽은 본래 오키나와의 수호 동물인 시사 56마리로 장식되어 있었다고 한다. 오키나와의 가정집에서도 이 시사를 바깥에 장식해 두는 경우가 많은데, 설계 당시에는 나고시의 취락 수 55개에 나고시까지 더해서 총 56개의 시사를 작가들에게 하나씩 의뢰해, 각기 다른 디자인의 시사로 꾸며 놓았다고. 하지만 태풍과 염해로 이 시사가 추락하는 사고가 잇따르면서 2019년 철거되어서 현재는 볼 수 없었다.


건물 내부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는데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오키나와에서 냉난방을 설치한 건물은 흔하지 않았고, 경합 당시에도 냉난방 기능이 없다는 조건이 설계사들이 풀어야 할 까다로운 과제였다고 한다. 설계팀은 바다에 인접해 있는 시청사의 위치를 이용해서 건물에 '바람의 길(風の道)'이라고 이름 붙인 구멍을 뚫어서 남북으로 부는 자연 바람이 내부를 냉각시킬 수 있도록 만들었다. 현재는 에어컨이 들어와 이름마저도 귀여운 '바람의 길'은 기능하고 있지 않지만.


방문했을 당시에는 빛바랜 외관이 실제 건물의 나이보다 훨씬 더 오래되어 보이는 느낌을 주었는데, 오키나와 다움이란 무엇인지, 시청사는 시민들에게 어떤 공간을 제공해야 하는지, 건축은 중앙과 지역의 관계를 어떻게 표현하고 주장할 수 있는지, 천천히 둘러보았다. 변덕스러운 오키나와 날씨 때문에 위층으로 올라가는 와중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서 후다닥 차로 돌아와야 했지만.



국립극장 오키나와


오키나와의 중요무형 문화재 쿠미도오리(組踊)를 비롯한 전통 예능을 보존하고 이어나가는 역할을 하기 위해 지어졌다는 국립극장 오키나와도 살짝 구경했다.


국립극장 오키나와


4. 긴급사태


오키나와는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 중 올해 코로나 상황이 가장 심각했던 현이어서 일찍부터 긴급사태 선언이 떨어졌었다. 여행을 계획할 때만 해도 9월 12일까지 발령되었던 긴급사태 선언이 해제되지 않을까 살짝 기대를 했지만 거듭 9월 30일까지로 연장되었고 추라우미 수족관, 만좌모 같은 유명 관광지는 물론 주요 박물관, 미술관은 모두 닫혀 있었다. 해수욕장에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입구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뿐만 아니라 현지 사람들이 찾는 시장도 썰렁하긴 마찬가지였는데 커피를 사기 위해 잠시 들렀던 사카에마치(堺町) 시장의 풍경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사카에마치시장의 아이돌이라는 '할머니 랩퍼おばぁラッパーズ' 포스터
오키나와 맥주 orion 을 이자카야에서 마셔보고 싶었는데
5월 23일부터 시작된 임시 휴업 기간이 6월 20일, 7월 11일, 9월 12일, 그리고 9월 30일까지 계속 연장되고 있다.


5. 편의점


이번 4박 5일 여행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이용했다. 첫 2박을 보낸 중부지역 차탄의 숙소는 주변에 식당이 많아 지내기 편리했는데 문제는 후반부의 2박 이었다. 남부 남조시에 위치한 숙소의 호스트가 메시지로, 주변에 식당이나 편의점이 별로 없으니 필요한 것들은 미리 사 오는 것이 좋을 거라고 주의를 주었는데 빈말이 아니었다.


방에서 바다가 바로 내려다 보이던 두 번째 숙소


간단히 저녁을 먹자고 숙소에서 지도를 찍고 찾아간 푸드트럭이 분명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안 보인다. 다시 주변 식당을 검색해 봐도 차로 30분 안으로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영업을 하고 있는 식당이 몇 군데 없었다. 영업 중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작은 이자카야를 찾아가 보았지만, 안에는 가게 주인인지 단골손님인지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계시던 할아버지가 현재 영업을 하고 있지 않다고 일러주었다. 8시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아버리기에 7시가 넘어가니 우리도 슬슬 초조해졌다.


마트에서 도시락이라도 사면 다행이겠다 싶어 '벤토(お弁当)'라고 적혀 있는 동네 마트에 들어갔는데도 도시락은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 믿을 건 편의점 뿐이다. 까닭을 알 수 없지만 평소에 잘 먹지도 않는 신라면이 간절히 생각났다. 찾아간 세븐일레븐에는 아쉽게도 신라면은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배를 채워줄 냉동 식품이 가득했다. 편의점이 우리를 오키나와 긴급사태에서 살렸다.


냉동 피자와 카르보나라 스파게티로 기분을 어찌 내 보겠다고 숙소에 있던 그릇에 음식을 담고 미리 사 둔 와인도 따랐다 (남편의 좋아요 엄지손가락 찬조출연)


6. 바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틈틈이 주차가 가능한 공간을 발견하면 내려서 바다 구경을 했다. 전반부에는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사진으로는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던 오키나와 바다도 어두컴컴했는데 오키나와를 떠나기 전날 고맙게도 맑은 하늘이 얼굴을 내밀었다.


코우리 대교의 바다도, 연인들의 파워스폿이라고 하는 하트 바위도 쓸쓸한 건 왜
카페의 창가 자리에서 처음으로 오키나와의 반짝이는 바다를 만났다. 바다에 한번 들어가 보아야 하지 않겠냐고 떠보았더니, 귀차니즘 대마왕 남편 왈 "우리는 이미 바다에 들어와 있어"
가까이 다가가서 발만 살짝 담가 보았다. 지난 번 치바 바닷가 여행도 그렇고 늘 수영복은 바리바리 싸들고 여행을 오는데 물에 들어가는 건 왜 이리 어렵지


7. 역사


난 일본이 오키나와 전투 당시 일본군이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가한 행위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했었다. 태평양 전쟁을 다룬 HBO의 명작 드라마 <더 퍼시픽> 오키나와 전투 편에서는 일본군이 갓난 아이를 등에 업은 오키나와 여인의 몸에 폭탄을 설치해서 자살 테러에 이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본에게 오키나와는 어떤 존재였던 걸까. 오키나와 사람들은 미군 뿐만 아니라 일본군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오키나와 사범학교 여자부와 오키나와 현립 제1고등학교의 여학생 222명과 교사 18명으로 구성된 240명의 히메유리 학도대는 일본군의 명령으로, 1945년 미군이 오키나와를 공습할 때 간호 부원으로 동원된다. 미군이 점차 일본군을 조여오자 히메유리 학도대의 활동 공간은 병원에서 방공호로, 동굴 속으로 바뀌어 간다. 더 이상 승산이 없다고 판단되자 일본군은 아무런 보호 조치 없이 동굴 속에서 미군에 포위되어 있던 히메유리 학도대에게 해산 명령을 내린다.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알지도 못한 채 히메유리 학도대는 폭격으로 사망하거나, 실종되거나, 자결 하거나, 살아 남는다.


우연히 들른 히메유리 평화기념 자료관은 히메유리 학생들의 학창 시절 모습과 당시의 사건들을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당시의 일을 오랫동안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어했던 생존자 분들이 전쟁의 폭력과 참혹함을 겪어야 했던 한 개인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오키나와 평화기념 공원에는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에서 징집되어 희생당한 이들을 기리는 위령탑도 있었다.


전쟁 당시 일본군의 임시 병원으로 사용되었던 동굴의 옆자리에 히메유리 탑이 세워져 있다
왼쪽이 히메유리 평화기념 자료관 입구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 내부는 휴업 상태라 입장이 불가했다.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 내부의 한국인 위령탑


오키나와 여행을 마무리 할 때가 되자 날씨가 개어 흥겨운 기분으로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옆 차선에 갑자기 군용차 세 대가 나란히 등장했다. 운전을 하고 있던 남편도 "어우 이런 군용차가 갑자기 나타나네"라며 괜히 운전을 더 조심하는 듯 했다. 오키나와 바다를 동경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떠난 여행이었지만, 이렇게 거리의 풍경과 하늘을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 커다란 군용차가 무심하게 옆으로 다가오는 오키나와는 내가 상상한 것 보다 훨씬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먼저가세요


할리할리 소속 직업 회사원
구독자 76
매거진의 이전글 일본과 케이팝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