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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리할리 Apr 09. 2022

이것은 연애 이야기에요

어느 재일한국인의 이야기 <GO> (스포주의) 


"이것은 나의 연애 이야기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를 모국어로 배웠고 외모도 일본인 같아 보이지만, 국적은 일본이 아닌 재일조선인/재일한국인에 관한 이야기 <GO>는 고등학생 스기하라의 선언으로 시작한다. 이건 본인의 연애 이야기라고. 재일조선인 스기하라는 조총련계 학교에서 주체사상과 노동 혁명역사 같은 북한식 교육을 받는다. 굉장히 폭력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조선인 학교에서는 조선어가 아닌 일본어를 사용한 친구를 서로 고발해야 하는 시간이 있고, 선생은 이 학생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한다.


한때 열렬한 마르크스주의자였고 프로복서이기도 했지만, 현재는 파친코 경품 교환소를 운영하고 있는 스기하라의 아버지는 어느 날 느닷없이 재일조선인에서 재일한국인으로 귀화를 하겠다고 가족들에게 선언을 한다. 조총련계의 중요한 자금줄이기도 했던 아버지는 하와이에 가기 위해 국적을 바꿔야겠다며, 재일조선인 신분으로는 자본주의의 온상인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돌연 국적을 바꾼다(실제로는 재일조선인 신분으로도 해외 여행의 제약이 크지 않았다고 한다).


스기하라 역시 허울뿐인 주체 사상만 주입시키는 학교를 빠져나오고, 민족 반역자 소리까지 들으며 재일한국인으로 국적을 바꾼다. 일본인 학교로 전학을 간 첫 날 부터 스기하라가 재일한국인이라는 소문은 이미 삽시간에 퍼져 나갔고, 주먹을 좀 쓴다는 녀석들이 차례로 스기하라에게 싸움을 걸어온다. 하지만 프로복서 출신 아버지에게 배운 스기하라의 주먹질을 당해낼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코를 부러뜨려 준 녀석이 하필 야쿠자의 아들이어서 스기하라는 손가락을 잃을 뻔한 위기에 처하지만, 코 수술을 한 후 인물이 훨씬 좋아진 아들을 보고 야쿠자 아버지가 만족하는 바람에(?) 가까스로 풀려난다. 이렇게 우연한 계기로 친해진 친구 카토의 생일파티에서 스기하라는 사쿠라이를 만나게 되고 둘의 연애 이야기가 시작된다.





차별은 있지만 적은 어디에


국적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다며, 그깟 국가의 이름으로 차별하는 인간들은 다 밟아주겠다며 큰소리치고 살아왔던 스기하라는 사쿠라이를 만나면서 자신의 이정호라는 또 다른 이름을 그녀가 알게 되었을 때 이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두렵다. 관계가 진전될수록 스기하라는 자신이 일본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야 하는 순간이 와도 사쿠라이가 자신을 예전과 똑같이 받아줄지 자신이 없다.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차별은 증오하거나 무시할 수 있었지만, 소중한 사람 앞에서는 움츠러든다.


2000년에 발표되어 일본의 유명한 문학상 중 하나인 나오키상을 수상하며 화제가 된 소설 <GO>는 재일한국인 문제를 민족 간의 갈등이라든지, 정치 역사적인 화합 같은 거시적인 담론으로 끌고가지 않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에 집중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듯한, 나라 따위 가져본 적 없다고 느끼는 혈기왕성한 고등학생이 겪는 연애와 우정을 그린다. 이런 탈민족적인 관점이 이전 세대의 재일한국인 문학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한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이 소설에는 스기하라에게 같은 일본인 학교의 학생이 조용히 찾아와서, 재일 한국인들의 비밀 모임이 있는데 동참하지 않겠냐고 제안하는 장면이 나온다. 스기하라는 이 제안을 거절한다. 단체를 만들고 운동을 하는 건 필요하기도 하고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며.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지만, 책장을 덮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소설을 읽어서 무엇하냐는 스기하라에게 소중한 친구 정일이 했던 다음의 말에서 스기하라는 그 답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혼자서 묵묵히 소설을 읽는 인간은 집회에 모인 백 명의 인간에 필적하는 힘을 갖고 있어. 그런 인간이 늘어나면 세상은 좀 더 좋아질 거야
- 정일


작가의 역사관은 작품에 등장하는 일본인들의 묘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성인이 된 재일한국인은 관공서에 가서 의무적으로 지문을 찍어야 하는 외국인 지문날인 제도가 예전에 존재했다 (외국인 차별을 이유로 1991년에서야 폐지되었다). 스기하라의 선배는 자신을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하는 관공서 직원들을 다 때려 주겠다는 마음으로 갔지만, 정작 그곳에서 만난 직원은 미안합니다고 읊조리며 지문을 찍는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그 선배의 손을 파일로 가려준다. 선배는 분노를 누구한테 풀어야 할지 몰라 그냥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스기하라의 아버지가 북한으로 건너간 친동생의 비보를 전해 듣고, 택시 안에서 동생과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슬픔에 잠겨 있자 일본인 택시 기사는 택시비를 사양하면서 북한에서 돌아가신 동생분에게 전해달라며 조의를 표한다.




넓은 세상을 보라는 말의 슬픔


사쿠라이와의 관계가 결국 삐걱거리자, 스기하라는 자신의 피부가 차라리 초록색이어서 누구든 자기가 이상한 사람인 줄 먼저 알아봤으면 차라리 좋겠다고, 일본이 지긋지긋하다며 여기에서 멀리 떨어진 노르웨이 사람이 될 거라고 오기를 부려본다. 국적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친다. 아버지는 그런 스기하라에게,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는 조선 사람도 아니고, 일본 사람도 아니고, 떠다니는 일개 부초다"라는 말을 읊조려 보인다. 스페인어로. 당시 스기하라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재일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고단함이 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는 걸 보여주는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아버지는 스기하라에게 국적 같은 건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며(본인이 몸소 보여주기도 했다), 넓은 바다를 보여주며 아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라. 그리고 스스로 결정하라"고 당부한다.


이런 어둠을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 어둠을 모르는 인간이 빛의 밝음을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니체가 말했어.'누구든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과정에서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오래도록 나락을 들여보다 보면 나락 또한 내 쪽을 들여다보는 법'이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조심하라구.
- 스기하라 아버지


스기하라가 이 이야기는 자신의 연애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지만, 그 평범한 연애를 해보려는데 자신의 국적이 장애물이 되었고, 또 국적 때문에 소중한 친구들을 잃는다. 국적은 돈 몇 푼에 팔아도 상관없다고 소리칠수록 그 국적의 굴레는 더 선명해진다. 그래서 넓은 세상으로 눈을 돌리라는 아버지의 당부는 조금 슬프게 들린다.



소설 속 익숙한 장소들


https://www.youtube.com/watch?v=4IQxVN4EYgo


영화를 먼저 보고 흥미가 생겨 원작 소설을 읽어 보았는데 영화, 소설 모두 엄청 재미있다! 구체적인 지명이 드러나지 않았던 영화에 비해 도쿄를 배경으로 쓰여진 소설에서는 익숙한 장소들이 종종 등장했다. 예를 들어 스기하라와 사쿠라이가 야마노테센을 타고 유라쿠초 역으로 나와서 히비야 공원으로 걸어가며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나 역시 자주 발걸음을 하는 곳이라서 두 사람이 걸었을 거리의 풍경을 떠올려보았다.


영화에서는 스기하라의 집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부모님과 나들이를 갈 때 센비키야나 시세이도 팔러에서 디저트를 사 먹곤 했다는 소설 속 정보를 통해 스기하라 집이 꽤나 유복했다고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제국호텔, 세타가야의 주택가, 신주쿠역 동쪽 출구, 우에노와 니시닛뽀리 등 익숙한 장소들을 만나며, 낯선 이국이었던 도쿄의 이야기가 어느새 이렇게 익숙하게 읽힌다는 사실에 은근히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한 아버지의 전하지 못한 말


얼마 전 참여한 행사에서 만나뵌 연사분은 자신이 재일한국인 3세라는 사실을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서류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고 하셨다.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온 이민자였다는 사실을, 아버지 역시 일본에서 외국인 신분으로 살았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 한 채 본인이 순수(?) 일본인이라고 생각하고 평생을 살아왔건만. 아버지에게 왜 가족의 이야기를 숨기는 결심을 했는지 물어보기엔 너무 늦었지만, 스기하라의 아버지가 어둠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고 넓은 세계를 바라보라고 했던 그 마음과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자식을 위해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누가 비난할 수 있나. 외국인으로서 의무적으로 남겨야 했던 국가 기록 덕분에 그 분은 아버지, 할아버지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긴 여행을 하고 있었다. 대구를 방문해서 할아버지의 지인을 만나보기도 했고, 아버지가 근무했다는 파친코를 찾아가 자신이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고 한다.


국적이 무슨 상관이냐고, 사자는 본인이 사자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을 거라고 했던 스기하라는 재일조선인에서 재일한국인으로 국적을 바꾸었던 것처럼 이후에 자연스럽게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았을까.(이 소설의 작가 가네시로 카즈키 역시 일본으로 귀화하였다) 아참, 소설과 영화에서 스기하라의 연애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국적, 이름에 관계없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작품의 메시지대로.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2094720


http://naver.me/IMQVgwf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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