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휼
태양의 움직임을 이용해 만들어졌다는 24절기는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라고 한다. 24 절기의 이름에는 기후의 변화를 담고 있어 절기 이름만 들어도 온도의 변화와 날씨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가 있다. 그런데 요즘은 이상기후로 인해 그 기준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입추가 진즉 지나고 모기의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났어도 여전히 한낮의 햇빛은 칼칼하다.
이러한 자연의 변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하는 대로 살든지 아니면 사는 대로 생각을 하든지 목회자의 삶을 살다 보니 묵상하는 습관 때문에 생각을 하게 된다. 더디 오는 가을이지만 수확의 계절이 오고 있는데 내게 거둘 것이 얼마나 있을 것인지, 거둘 것이 없어 황망해 하는 농부의 신세가 되는 것은 아닌지, 가을을 알리는 절기 앞에서 내 인생의 가을을 돌아보게 된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심방(尋訪)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요즘은 자기계발을 위해 다들 무언가를 하고 있어서 그것도 어려워지고 있지만 목회자가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아픈 환우가 생기면 찾아가 안부를 살피고 어려운 문제로 힘들어하는 성도가 생기면 찾아가 힘든 마음을 나누어야 한다. 여기저기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피부로 느껴지는 것이 있는데 고급 아파트에 사는 사람일수록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다 맞는 것은 아니겠지만 평수가 넓고 값비싼 아파트에 사는 사람일수록 이웃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고급 아파트는 일단 출입부터 제약이 많다. 반면 서민들이 사는 작고 오래된 아파트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단지(團地) 내의 풍경도 확연히 다르다. 고급 아파트는 대부분 주차를 지하에 하게 하고 지상은 정원으로 가꾸어져 있는데 이상한 점은 공들여 가꾸어 놓은 정원에도 사람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멋지게 꾸며진 아이들 놀이터에도 노는 아이들이 별로 없다. 알고 보니 놀이도 학원 등에서 놀이 프로그램으로 충족을 시킨다고 한다. 그런데 서민 아파트를 가보면 단지 내 지어진 작은 정자에 어르신들이 모여 정담을 나누는 모습을 종종 본다. 누가 오늘 김치를 담그는 날이면 함께 파를 다듬어 주고 마늘을 까준다. 정자 옆 놀이터에서는 시끌벅적 아이들이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뛰논다.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시간과 돈을 저축하느라 지금을 잃어버리고 산다. 내일 쓸 시간을 저축하려고 오늘 내 곁에 머물고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하며 바쁘게 사는 것이다. 성경은 내일 일은 내일에게 맡기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오늘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지금을 잃고 얻은 내일은 쓸모가 없게 될 가능성이 크다. 내일은 정작 보장할 수 없는 시간이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시간은 사라져 버린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일의 시간을 저축하려고 오늘을 탕진하고 있지는 않은지,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이 우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다고 미하엘 엔데는 그의 작품 모모에서 말한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는 시간은 모두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며칠 있으면 추석이다. 우리 모두 보름달처럼 둥근 마음으로 둘러앉아서 가슴을 열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잠시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광남일보에서 발간하는 매거진 <전라도人> vol. 136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