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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생각 Oct 28. 2024

알고리즘

알고리즘


김휼


나를 잘 아는 누군가 있습니다 몰래 환해지는 네모난 방 거기, 척후병처럼 숨어 내 생각을 살피는 이가 있습니다 이거 어때요? 이거는요? 내 취향을 추적 겨냥하는 그의 神氣에 종종 쓰러지기도 하는데 아직 나는 그를 본 적은 없습니다 변죽만 울리고 끝날 때가 많지만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충동질하는 그는 내 몸 밖의 나, 외로운 탓이겠거니 하다가도 잠들기 전, 생각으로만 했던 샤링 원피스를 코앞에 내미는 아침엔 소름이 돋기도 합니다 결이 같아 내 편이라 착각할 때가 많은 그를 아직 만나 본 적 없지만 요즘 들어 그가 나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내가 그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합체를 위한 욕망의 꼬리물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해설> 대구신문 <좋은 시를 찾아서 >387 김휼 시인

나를 찾는 과정에서 안의 나와 밖의 나를 살피는 시인의 감각은, 눈앞에 거울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두 개의 서로 다른 나를 두고 바라봄으로 어떤 합일을 찾으려고 나를 두고 시인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문제는 네모난 방? 인데 그 방은 형식적인 방이므로 이미 벗어나기는 힘들어 보인다. 방이 아닌 방 밖으로 탈출한 나를 통해 나를 충동질하는 나를 따라 샤링 원피스를 입고 뮤즈의 신전 문을 열고 들어서서 바라보는 세상은 또 다른 세상이 아닐까? 아무튼 근래 왕성한 시작 활동을 보여주는 시인의 시는 늘 궁금하다. 결국 시인의 알고리즘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언급한 개념으로 ‘시인의 임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법한 일, 즉, 개연성 또는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가능한 일을 이야기하는 데 있다’ 가 정답일 것이다. 시인이 어느 더운 날 목도리를 두르고 길거리로 나서거나, 단정한 머리를 단풍 숲에 들어가 풀어 헤치면 어떨까? 를 슬그머니 권유해 본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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