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결혼이야기, 2019>

노아 바움백

by 태니
다량의 스포일러와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곳곳에 재치를 두면서도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허를 찌른다. 한 부부가 이혼을 향해 가는 여정이지만 제목은 <결혼이야기>이다. 제목마저 재치있는 모순이다. 영화는 니콜과 찰리가 서로의 장점을 나레이션을 통해 읊조리면서 시작한다. 서로의 장점을 마치 당사자처럼 능수능란하게 설명하면서 이를 통해 본인의 단점을 반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서로의 장점은 서로가 함께한 기억과 경험 안에서 존재한다.


예술가 부부, 이혼을 앞두다

붉은 조명 아래에서 주인공으로 연기하는 니콜, 그리고 극단의 수장인 찰리의 연극은 성황리에 끝난다. 브로드웨이에 진출하게 된 극단의 뒤풀이 분위기는 화기애애하지만 이혼 조정 중인 니콜과 찰리에게는 크게 기뻐하지도 그렇다고 마냥 슬퍼할 수만은 없는 씁쓸함이 감돈다. 뒤풀이가 끝나고 둘은 집으로 돌아가는 같은 지하철을 탄다. 힘차게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지하철 안에서 둘은 멀찍이 떨어져 미묘한 기류를 품는다. 집에 돌아온 둘은 함께 살아왔던 집 안에서 괜히 어색하게 행동한다. 그리고 니콜은 찰리에게 오늘 연극에서 본인의 연기 지적을 권한다. 주저하던 찰리는 그녀에게 두 가지를 말한다. 상황에 비해 자세가 너무 당당하다는 것, 그리고 니콜이 감정을 쥐어짜는 게 보였다는 것이다. 니콜은 찰리에게 무대에서 잘 울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방으로 돌아가면서 홀연히 눈물을 터뜨린다.


본격적인 이혼

니콜은 그녀의 고향인 LA로 돌아온다. 니콜은 파일럿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고 주위의 관심과 기대를 한몸에 받는다. 그런 와중에 그녀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스태프에게 이혼 전문 변호사 노라를 소개받는다. 노라를 찾아간 니콜은 이혼 유경험자인 그녀에게서 동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노라는 니콜에게 ‘기분이 어때요?’라고 묻는다. 니콜은 그동안 겪어왔고 쌓아왔던 그간의 감정이 갑작스레 터져 나오듯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니콜은 이혼까지 다다르게 된 찰리와의 만남의 과정을 설명한다.


‘내가 살아난 게 아니라 찰리에게 생기를 더해줬던 거죠.’ -니콜


극단이 흥행하면서 찰리도 함께 성장해가지만 니콜은 스스로 작아짐을 느낀다. 찰리는 니콜이 출연하게 된 파일럿 프로그램을 비웃고 그녀의 출연료를 극단 예산으로 쓰자고 한다. 니콜은 찰리에게 본인의 번호를 물었고 니콜의 번호를 모르는 찰리를 보고 결국 이혼을 결심한다.


그들이 느끼는 무게

찰리는 니콜의 LA집으로 찾아와 맥아더 상을 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오가는 축하도 잠시 니콜의 언니 캐시는 송달원 역할로 어색하게 찰리에게 이혼 소송장을 전달한다. 멋쩍게 소송 사실을 알리는 니콜과 당황스러운 찰리, 그들이 갖는 이혼에 대한 무게감은 생각보다 달랐다. 니콜이 이혼 소송을 걸었기에 찰리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렇게 찰리도 LA에서 변호사를 찾고 승소의 문제에 꽤 전투적인 변호사를 만난다.


‘이성과 비정상의 중간에서 합의를 보겠죠.’ -제이


변호사 제이는 찰리에게 재판에서 이겨야 한다는 전투적인 태세를 거리낌 없이 보여준다. 찰리는 변호사 선임 비용과 과정에 대한 부담감에 본인과 니콜만의 방식대로 하겠다며 자리를 박차며 나간다. 시간이 흘러 찰리는 극단에서 공연 준비를 하는 와중에 노라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스태프들의 방해와 더불어 비상계단을 내려가며 통화하는 찰리는 그제야 이혼 소송에 대한 무게감과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느낀다. 찰리가 내려가는 계단이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만큼이나 내려갈 일밖에 없다는 의미에 동조함을 보여준다. 찰리는 극단 건물을 나와 뉴욕 거리 인파 속에 섞인다. 이미 상황은 복잡해 버린 지 오래였다.


‘이건 분명 끝이 있고 우리가 이기든 지든 부부가 같이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해요.’ -버트


찰리는 승소의 문제보다 부부의 문제 그 자체에 집중해주는, 말 그대로 인간 대접을 해주는 변호사 버트를 만나고 LA를 오가며 아들 헨리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마냥 찰리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헨리는 찰리보다 엄마인 니콜에게 더 의존하고 LA에서의 부자지간은 죽이 맞지 않는다.


긴 싸움의 시작

찰리와 니콜은 각자의 변호사를 두고 제대로 된 면담의 시간을 가진다. 변호에 유연한 노라에 찰리와 버트는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결국 공격적인 변호사 제이를 선임하여 니콜과 법적 공방을 치른다. 서로를 대변하며 불 튀는 설전을 벌이는 두 변호사를 두고 니콜과 찰리는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서로를 마주 보지 못한다.


‘그의 천재성은 결혼하고 축적된 무형의 재산이니까요.’ -노라


노라는 찰리의 맥아더상 상금을 니콜과 나눠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이는 찰리의 천재성으로 인해 받은 상이기에 상금을 나눌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에 노라는 찰리의 천재성은 결혼하고 축적된 무형의 재산이라고 말한다. 설전을 끝으로 둘은 집으로 돌아와 서로를 탓하며 격하게 다투기 시작한다. 감정이 격앙된 상태에서 주고받는 말다툼은 서로에게 상처만 줄 뿐이다. 그리고 니콜과 찰리는 지쳐 눈물을 흘린다.


‘항상 당신을 평가하는 기준이 훨씬 까다롭죠. 짜증 나지만 현실이 그래요.’ -노라


감정원이 각각 니콜과 찰리의 집을 방문하여 아들 헨리와 어떻게 생활하는지 관찰한다. 노련한 니콜과 달리 찰리는 좀 더 가정집처럼 보이기 위해 집을 꾸민다. 찰리의 집에 잔뜩 긴장한 감정원이 방문한다. 그녀는 토끼 눈으로 물만 마시며 찰리에게 가끔 질문을 한다. 서툰 감정원과 서툰 아빠인 찰리의 모습이 꽤 엇비슷해 보였다. 찰리는 본인이 가진 작은 칼을 소개하며 헨리와 어떻게 노는 지 설명한다. 그는 칼날을 제대로 넣지 못해 실수로 팔을 진짜 그어버리고 그의 팔에 큰 상처가 나게 된다. 찰리는 흐르는 피를 어떻게든 치료하려고 혼자 설전을 벌이다가 부엌 바닥에 처량하게 쓰러진다.


이혼을 하다

결국 니콜과 찰리의 이혼은 성립하고 니콜이 없는 극단 회식에서 찰리는 독무로 노래를 부른다. ‘날 너무 꼭 안는 사람, 깊은 상처를 주는 사람, 내 자리를 뺏고 단잠을 방해하는 사람 그리고 살아간다는 걸 알아차리게 하지’, ‘날 너무 필요로 하는 사람, 날 너무 잘 아는 사람, 충격으로 날 마비시키고 지옥을 경험하게 하는 사람, 그리고 살아가도록 날 도와주지, 내가 살아가게 하지, 날 헷갈리게 해, 찬사로 날 가지고 놀고 날 이용하지, 내 삶을 변화시켜 하지만 혼자는 혼자일 뿐 살아가는 게 아니야.’, ‘넘치는 사랑을 주는 사람, 관심을 요구하는 사람, 내가 이겨나가게 해주는 사람, 난 늘 그 자리에 있을 거야. 너 만큼은 겁은 나지만 같이 살아가야지, 살아가자.’ 찰리는 노래 가사를 통해 그동안 니콜로 인해 살아왔고 이제부턴 혼자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그의 상황을 내비친다.


찰리는 헨리를 만나기 위해 니콜의 LA집으로 온다. 니콜은 이미 애인이 생긴 상태였다. 찰리는 헨리가 있는 위층으로 올라가 헨리가 종이 안에 적혀있는 내용을 서툴게 읽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찰리는 헨리와 함께 그 내용을 읽어 내려간다. 그 종이는 니콜이 적은 찰리의 장점이 적힌 종이었다. 니콜은 마지막 문장으로 여전히 찰리를 사랑한다고 적었다. 허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찰리는 헨리를 데리고 본인의 차로 간다. 니콜은 찰리를 멈춰 세워 그의 풀려있는 운동화 끈을 묶어준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관계의 거리 두기

영화는 이혼을 앞둔 부부의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재결합을 담진 않는다. 재판을 코앞에 두고 찰리는 니콜의 도움 요청으로 니콜의 고장 난 집 대문을 합세하여 닫는다. 닫힌 그 찰나에 둘의 눈이 마주치지만 냉정하게 닫혀버린다. 영화는 계속해서 돌이킬 수 없으면서도 어떻게든 관계를 유지해야 함을 보여준다. 찰리는 뉴욕의 중심에 있고 니콜은 LA의 중심에 있다. 멀고 먼 도시 사이에서 그들은 어떻게든 헨리라는 중심을 두고 관계를 유지해나가야 한다.


짧게 치고 빠지는 재치

이혼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으면서도 영화 중간마다 가볍게 환기의 역할을 주는 재치있는 장면들이 있다. 니콜과의 어색한 상황에서 찰리는 TV를 보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그렇지만 TV 프로그램이 음소거로 틀어져 있다. 찰리가 변호사 제이를 만나 그와 맞지 않음을 느끼고 일어나는데 찰리가 기댄 쿠션에는 ‘Eat, Drink, and Remarry.’라고 적혀있기도 하다. 그렇게 찰리는 인간적인 변호사 버트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드디어 인간 대접을 받아본다고 고마움을 표시하고 나서 버트가 돌려놓은 음식이 담긴 전자레인지 소리가 바로 들려온다. 버트의 인간적임은 배가 된다. 영화의 재치는 영화의 주제를 방해하지 않을 만큼 짧게 치고 빠지며 센스있게 등장한다.


일상을 통해 허를 찌르다

한 장면이 특히나 기억에 남는다. 찰리는 감정원에게 본인이 가진 작은 칼을 소개하며 헨리와 어떻게 노는 지 설명하다가 실수로 팔을 그어버리고 그의 팔에 피가 뚝뚝 흐른다. 작은 칼은 헨리와 자주 갖고 놀던 일상적인 놀이도구이다. 그런 친근한 물건이 찰리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 마치 가깝고 친근한 주변인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것처럼 말이다. 살아가는 데엔 사랑만 있을 수 없다. 사랑이 있다면 미움도 존재한다. 니콜과 찰리는 갈수록 애증의 관계로 뻗어 나갔다. 누군가를 청렴히 사랑만 할 수 없듯이 이 또한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이 영화를 살아있는 감정이 담긴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인물에 담아냈고 보는 이에게 그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본래 인간이란 입체적이고 복잡한 동물이기에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똑같을 수 없다. 관계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인간관계도 좋은 관계로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현대사회에서 사회성의 필요성을 운운하는 것처럼 말이다.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관계도 없다. 그런 무한히 복잡한 인간과 인간관계를 이 영화를 통해 재차 느낄 수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