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산드로 알론소
어렵다. 참으로 어렵다. 내러티브를 따라 내포된 의미를 머리 싸매며 찾아가는 영화라기보단 시각적인 자극을 통해 무언가 묘하게 느껴지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쉽게 말하자면 아빠가 딸을 찾는 내용이다. 덴마크 장교 군나르가 젊은 군인과 함께 달아난 딸 잉게보그를 찾는 여정에 대한 서사이다.
참여자가 아닌 관찰자의 입장으로 보다
영화는 1.33:1 비율의 화면으로 우리가 볼 수 있는 범위보다 좁은 화면을 제시한다. 심지어 프레임의 모서리는 라운딩 되어있다. 망원경을 통해 바라본다고 말하기도 다소 애매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확실한 건 이 영화는 관객이 영화 안에 들어가 어떠한 사건을 간접 체험하고 인물의 감정을 공유하는 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딸이 젊은 군인과 사랑에 빠져 아빠 몰래 도망간다는 내용은 서사적으로 극적이기에 충분하지만 영화는 굉장히 담담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딸을 찾으려고 고군분투하며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담아내지도 그렇다고 순간에 충실하며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딸과 젊은 군인의 사랑을 면밀하게 담아내지도 않는다. 결국 아빠가 딸을 찾는 내용은 하나의 부차적인 설정일 뿐이다.
영화는 관객을 영화 안으로 초대하기보다 단지 지켜볼 수만 있는 권한을 주듯 우리에게 무력감을 선사한다. 프레임의 비율과 더불어 캐릭터의 감정이 선명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캐릭터의 감정을 위해 컷의 길이가 길다기보다는 자연과 시간의 흐름을 굳이 인위적으로 줄이지 않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로 인해 우리가 영화 밖에서 상황을 지켜본다는 느낌은 더욱 커지며 우리는 스크린 밖에서 그저 지켜볼 뿐이다.
자연에 맡기다
자연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를 말한다. 저절로 생겨난 산, 강, 바다, 식물, 동물 따위의 존재를 말하기도 하고 그것들이 이루는 지리적, 지질적 환경을 말하기도 한다. 딸 잉게보그를 찾다가 군나르는 한 마리의 개를 만난다. 그 개를 따라가면서 군나르가 지나온 푸른 색색의 자연을 넘어 건조하고 무채색으로 가득 찬 회색빛의 자연으로 넘어온다. 군나르는 개를 따라가다 묘령의 노파를 만난다. 그는 노파가 지내는 듯한 동굴 안으로 들어가 그녀와 대화를 나눈다. 그는 아내의 죽음과 딸에 대한 이야기를 말한다. 노파는 말한다.
“시간이 걸린다 뿐이지 가족은 결국 사라져요. 세상에서 없어지고 사막이 집어삼켜요.
그게 최선이에요”
그녀는 마치 초월자처럼 군나르에게 주어진 상황에 대한 인정을 권유하고 자연 아래에 인간의 무력함을 상기시킨다. 군나르가 잉게보그를 찾기 위해 지나온 회화적 풍경의 자연은 그의 모습을 더욱 외롭고 초라하게 만든다. 좁은 프레임 안에서도 감독 리산드로 알론소는 하늘과 땅, 자연의 신비하고 아름다움을 담아낸다. 그리고 카메라는 인물이 걸어가는 길을 따라가지 않고 그대로 프레임 밖으로 벗어나도록 내버려 둔다. 마치 제 3자가 어떠한 인위적인 힘을 가하지 않고 자연 아래에 무력한 인간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느낌이 든다.
오히려 답을 찾아내려는 것이 무의미한 것은 아닐까
군나르는 묘령의 노파에게 장난감 병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노파는 그에게 안긴다. 노파가 잉게보그의 미래의 모습이고 사실 군나르가 걸어온 회색빛의 황무지가 변해버린 미래의 공간일지도 모른다. 이 또한 확실하게 답을 내릴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군나르가 동굴 밖으로 나오고 노파의 목소리가 보이스 오버된다.
“무엇이 삶을 가동하고 나가게 할까?”
이상향의 의미를 품는 도원경, 군나르가 바라는 도원경과 딸 잉게보르가 바라는 도원경은 결국 무엇이었을까, 더 나아가 인간이 실존하는 이유의 이상향이란 단지 이상향의 불과하며, 감독은 자연 아래에 무력한 인간의 모습 그 자체를 보여주려는 것일까. 사실상 영화가 어떠한 답을 확실하게 내던져주는 것은 아니기에 유추만 할 뿐 결정적인 답을 원하는 것 자체가 아마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항상 정확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사회의 압박감 속에서 이 영화가 주는 다소 불분명한 내러티브가 오히려 우리 안에 존재하는 무언의 압박에 허를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영화의 끝에는 군나르가 묘령의 노파로 인해 미래를 만나고 다시 영화는 현재로 돌아와 딸 잉게보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군나르가 딸을 찾으려는 목표와 사랑하는 사람과 달아나려는 딸의 목표가 어찌 보면 무용지물처럼 허물어졌다. 그들이 원하는 목표점과 이상향이 허물어지는 순간 인간의 무력함이 느껴지고 이 또한 자연의 순리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