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년, 소녀를 만나다, 1984>

레오스 카락스

by 태니

영화는 성별도 연령도 모르는, 아이 같으면서도 노인 같은 이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오면서 시작한다.


‘여기에 우리는 아직도 홀로 있다, 모든 것이 너무 느리고 너무 무겁고 너무 슬프다,

곧 나도 나이를 먹겠지 그리고 결국 끝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등장하는 사랑으로 인한 상처를 가진 인물들. 본래 인간이 갖는 근원적인 감정인 사랑은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한 개인에게 주는 굉장한 파급력의 감정이다. 레오 카락스는 영화를 통해 이러한 사랑이 파괴적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인물이 사랑을 현재형으로 하고 있고, 과거형으로 했었고, 사랑이라고 단정하지 못해도 어떠한 높낮이가 있는 감정 표현을 내뱉고 있다. 전화로 화를 내고 있는 중년의 남성, 친구에게 여자 친구를 뺏긴 알렉스, 미레이유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베르나르,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한 여인 앞에서 웨이터는 말한다.


‘고독한 이들의 진짜 문젠 혼자 있지 않는단 거죠.’


가장 고독해 보이는 베르나르 곁엔 그를 사랑하는 미레이유가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사랑에 대한 상처로 방황하는 소년, 알렉스는 자신의 여자 친구 플로랑스를 뺏어간 토마의 목을 조르지만 결국 죽이진 못한다. 집에 돌아와 플로랑스에게 편지를 쓰다가 옆 집의 사랑싸움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집 밖으로 나선다. 알렉스는 거리를 배회하다 서로 껴안고 입을 맞추는 연인을 본다. 그리고 그들에게 동전 몇 푼을 던진다. 마치 그들을 동정하듯 동전을 던지지만 유독 처량해 보이는 건 알렉스이다. 사랑에 대한 상처로 혼란스러워하는 소녀, 미레이유는 떠나간 베르나르로 인해 감정 기복이 심해진다. 갑자기 노래를 크게 틀고 탭댄스를 추기도 하고, 파티장에서 몰래 자살시도를 하려다가 가위로 듬성듬성 머리를 자르고 나오기도 한다.


‘사랑’은 사람을 안 하던 짓도 하게 만들고 하던 짓도 안 하게 만든다. 사랑 때문에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있으면서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어른을 아이로, 아이를 어른으로 만들기도 하며 브레인 포그로 일상생활을 못 할 수준으로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성적이지 못한, 보다 감정적인 소년과 소녀의 사랑으로 인한 방황하는 그들의 모습이 유독 짠하다.


인물의 복잡한 감정에 반면 내러티브의 연결이 뚝뚝 끊기는 느낌이 있다. 추상적인 이미지의 나열이 몰입을 방해를 하면서 계속해서 거리를 둔다. ‘사랑’의 감정을 복잡하게 다루면서 내러티브와 연결성에서 간결함이 있어야 좀 더 감정에 집중할 수 있었으나 계속해서 여러 메타포가 등장함과 더불어 스토리가 부유한다. 영화 초반부에 이별을 선택한 여인이 격자무늬 머플러를 길거리에 흘리고 간다. 그것을 발견한 알렉스는 격자무늬 재킷을 입었고 곧이어 베르나르로 인해 울상이 되어있는 미레이유 또한 격자무늬 팬츠를 입고 있다. 이별을 앞둔 이들의 시각적인 연결고리를 둔 것 같지만 단순히 연결고리로만 끝나고 기대하는 더 큰 무언가는 없었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시적인 대사와 감독의 자아표출이 담긴 자전적인 내용들이 누벨바그 영화가 떠오르면서 레오스 카락스 본인의 작가적인 영화 스타일의 단단함이 느껴진다. 반면 사랑이라는 복잡한 감정과 그에 걸맞은 복잡한 스토리의 맥락이라고 해도 다소 이해가 불투명한 부분에 있어선 여전히 아쉬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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