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스탤지아, 1983>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by 태니


단순한 그리움을 넘어 슬픈 감정이 서린 향수의 의미 ‘노스탤지아’를 선택한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제작한 뒤에 그가 느꼈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무릇 느껴진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촬영했지만 영화가 러시아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만큼 고향에 대한 향수는 무의식적으로 어떻게든 존재를 내비친다. 결국 한 개인이 느낀 감정은 스스로 부정해도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작가 고르차코프는 18세기 이탈리아로 유학 온 작곡가 소스노프스키의 일생을 연구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왔다. 소스노프스키는 이탈리아에서 음악가로 성공을 거두지만 고향에 대한 향수에 시달리다가 러시아로 돌아가 다시 노예 신분을 자처하며 결국 자살을 한다. 고향에 돌아가면 겪을 고통을 감내하면서 고향을 택한 그가 느끼는 그리움에 대한 감정의 수준이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영화 첫 장면에서 고르차코프가 유제니아 뒤를 이어 걷는 길이 곧 그가 느낄 긴 여정을 암시하면서 돌아올 향수에 대해서도 예견한다. 고르차코프는 유제니아의 유혹도, 이탈리아의 새로운 장소 안에서의 낯섦에 방어적인 자세를 갖추며 그만의 사색에 빠진다. 그런 그의 관심을 이끈 건 믿음 하나로 주변 사람들에게 눈초리를 받는 도메니코이다. 그는 그가 가진 퇴폐한 세계 안에서의 가족을 지키겠다는 믿음으로 7년간 가족을 감금하였다. 반면 유제니아가 만난 성당 직원은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해야 이루어진다며 말하지만 그녀는 무릎을 꿇지 못했고, 직원은 신앙심의 차이라고 말한다. 유제니아는 여자만 기원하는 이유를 물었고 직원은 주위 여자들을 보라며 아이를 낳고 강해진다고 말하면서 본인은 직원일 뿐이라며 불완전한 대답을 낸다. 도메니코가 가진 보편적이지 못한 소수의 믿음, 성당에서 이루어지는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는 여자들이 보여주는 보편적인 다수의 믿음, 세상은 이러한 다수의 믿음이 옳다고 믿는다. 이러한 세상을 악으로 판단한 도메니코라는 개인의 믿음에 관심을 갖게 된 고르차코프는 그의 촛불을 들고 물 위를 걸으라는 부탁을 받아들인다.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은 고르차코프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순간 장면은 롱테이크와 더불어 흑백으로 전환된다. 결국 회상과 회고의 순간일 뿐일지라고 그 순간 고르차코프에게 깊은 그리움이 스며든다. 숙소 침대 위에 누워있는 만삭의 아내, 그리고 등장하는 유제니아, 고르차코프는 과거와 현재, 곧 그리움과 현실 사이에서 혼동하고 시달린다. 이탈리아에 당도했을 때의 그리움이 점점 짙어간다. 그의 고향 집과 가족들, 인물을 넘어 공간에 대한 그리움으로 확장된다. 고르차코프는 유제니와의 다툼 뒤로 코피를 흘린다. 향수로 인한 육체적인 쇠약이 향수 ‘병’을 만든 것이다. 결국 그는 러시아로 돌아가기로 한다.


고르차코프는 유제니아에게 연락을 받는다. 그녀는 고르차코프가 그의 부탁을 했는지에 대한 물음을 전달하고 고르차코프는 러시아행을 미루고 온천으로 향한다. 도메니코는 로마에 있는 높은 석상 위에서 3일 동안 연설을 한다. 그리고 본인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이고 분신한다. 고르차코프는 물이 빠진 온천에서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손으로 바람을 막으며 조심스럽게 걷는다. 높은 곳, 그리고 낮은 곳에서 도메니코의 믿음으로 시작된 의식은 완성된다. 곧이어 고르차코프는 깊은 향수를 경험하게 된다. 장면은 흑백으로, 고르차코프의 고향 집을 뒤로하고 느리게 줌 아웃되면서 이탈리아 성당 건축물이 등장한다. 향수를 느끼는 것과 더불어 체험하게 되는 순간이다. 소스노프스키의 발자취를 따라 그의 일생을 관찰하는 것과 그가 죽음을 맞이하면서까지 선택한 고향에 대한 향수를 고르차코프, 그가 직접 체험한다. 도메니코가 가진 믿음, 소스노프스키가 겪었던 향수,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없는 수준일지 몰라도 그들의 감정의 깊이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견고했음을 느끼게 된다.


도메니코의 집 벽에는 1+1=1이라고 크게 적힌 포스터가 위치한다. 도메니코와 고르차코프가 행한 의식이 완성되자 고르차코프는 현재와 과거를 시간적, 공간적으로 동시적 체험을 한다. 현재를 살아가도 언제나 과거는 자리 잡고 있고 과거를 회상해도 우리는 현재에 머물러있다. 결국 현재와 과거가 모두 우리에게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세상은 생각보다 크고 깊을지도 모른다. 마치 도메니코의 믿음으로 통한 영적인 의식이 통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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