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환
수저 계급론이 대두한 지도 2015년을 기점으로 약 5년이 지났다. 한 개인의 인생에서 성공은 전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에 달려있다는 의미가 담긴 이 용어는 금수저와 흙수저 이 두 가지 잣대로 한 개인에게 주어질 앞날을 판단한다. 금수저는 쉽게 기회와 이득을 얻어 부를 유지하며 흙수저는 기회와 이득을 얻기 위해 취해야 할 노력이 많고 고되며 상승하는 일이 드물다. 사실상 수저 계급론이 대두하기 전에도 계급사회의 상류층과 하류층의 빈부 격차는 선명하게 대비되었다. 단지 금수저냐 흙수저냐는 이론이 떠오르고 자신이 하위계층에 속한다고 판단하는 일이 개인에게 정신적인 무력감과 씁쓸함을 안겨 줄 뿐이다.
주인공 병구는 광부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아빠는 광산이 무너지면서 팔 한쪽을 잃었고 술과 가정 폭력을 달고 살면서 결국 사망한다. 병구의 엄마는 길거리에서 나물 장사를 하며 동네 양아치에게 괴롭힘을 당하기 일쑤다. 말 그대로 흙수저인 병구는 고등학교 육성회비도 내지 못해 교탁 위에서 바지를 내린 상태로 무릎을 꿇고 학우들 앞에서 팬티 차림으로 담임 선생님에게 맞는다. 학교 안,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 중에서도 병구는 소외된 하위계층에 속한다. 병구가 사회생활에 뛰어들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병구가 다니던 공장에서도 부당한 대우는 끊이지 않았고 노조에 참가하여 시위하다가 여자 친구를 잃는다. 심지어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엄마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식물인간이 된다. 미치지 않는 게 더 이상 할 수준의 일들을 겪은 병구 앞으로 식물인간이던 엄마가 갑자기 일어나 지구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병구의 망상이었다. 돈도 없고, 명예도 없고, 동네 양아치와 마주쳐도 아무 말도 못 하는 병구가 지구를 지키려는 건 사실 지구 수준으로 소중한 자기 자신과 자신 주변의 것을 지키려는 것이 아닐까? 부조리가 만연한 계급사회 안에서 차별을 당해 온 병구가 오로지 세상에 대한 반감을 갖기보다 그런 세상이 존재하는 큰 범위의 지구를 지킨다는 게 사실은 본인이 가져보지도, 느껴보지도 못한 수준의 포부를 위한 개인적 합리화는 아닐까? 그러한 포부는 망상으로 이어진다. 동네 양아치를 때려눕혀 시민들에게 박수를 받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병구는 양아치를 향해 멋쩍게 웃으며 싸움을 피한다. 병구는 본인을 괴롭혔던 담임 선생님과 동네 양아치, 엄마를 괴롭히던 양아치를 찔러 죽여 소년원에 입소하고 자신을 폭행하는 교도관까지 살해한다. 병구에게 그들은 지구를 위협하는 외계인, 즉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을 위협하는 처단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병구는 새로운 표적, 본인이 일하던 유제 화학 공장 사장인 강만식을 납치한다. 누가 봐도 금수저인 강만식은 섹스 스캔들, 사회적 비리에 엮어도 여전히 잘 먹고 잘 사는 상위계층의 인물이다. 있는 놈이 더한다고 강만식은 대리기사에게 줄 4만 원도 아까워 2만 원을 쥐여주는 염치없는 인물이다. 그런 강만식을 병구는 외계인으로 확신하고 그를 납치한다.
지극히 이분법적인 사고로 그들을 판단하자면 강만식은 부유하고 병구는 가난하다. 강만식은 명예가 있고 병구는 명예가 없다. 강만식은 공장 사장이고 병구는 공장을 위해 고된 일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친밀한 협력관계가 아닌 피라미드 형태의 생산자, 노동자인 상하 계급이다. 그러므로 강만식은 나쁘고 병구는 착하다? 이는 이분법적 사고의 오류이다. 사회에는 돈이 많아 선행을 베푸는 자도 있고 돈이 없어도 어떻게든 이웃을 도우려는 자도 있다. 병구도 사회적으로 취약계층이고 가족과 연인을 사랑하는 선한 사람일지 몰라도 그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병구가 온전히 선한 사람은 아닐 거라는 냉정한 판단이 아니다. 이분화 하나로 대상을 판단하기에는 세상은 넓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본능적이면서도 나름대로 논리를 갖고 수사하는 개코 형사와 그를 신뢰하는 새내기 형사는 둘이서 술자리를 가진다. 개코 형사는 범인이거나, 범인이 아니거나라는 기준을 두고 500원짜리 동전의 앞면과 뒷면으로 이분화를 논한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동전을 쥔 손을 펴보기 전까지 그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결국 추측은 가능하지만 대담한 확신은 할 수 없다. 또한 강만식이 외계인인지에 대해서 영화 극 후반부 전까지는 알 수 없다. 그런 강만식을 외계인이라고 확신하며 열렬히 주장하는 병구의 모습에 우리는 갈등을 오간다. 강만식이 외계인에 대한 논리를 펼칠 때 정말 외계인인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강만식이 급하게 펼쳐 놓은 외계 이론 책들을 보면서 의심을 놓지 못한다. 또한 강만식을 외계인이라고, 또한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때 주변 인물은 의심을 놓지 못한다. 병구를 사랑하는 연인 순이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병구가 죽고 난 뒤에 강만식이 외계인으로 밝혀진다. 그토록 강만식이 외계인이라고 주장했던 병구의 말이 맞았다. 보통 사람들은 외계인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한 추측성 의견만 낼 수 있을 뿐 확신하진 못한다. 그동안 UFO를 보았다는 사람들의 인터뷰, 외계인으로 추측되는 생물체가 담긴 사진, 이 불확실을 밝히기 위해 계속해서 조사에 착수하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여러 심증과 물증이 존재한다. 외계인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 공적인 위치에 존재하는 여러 인물은 강만식의 죽음을 통해 병구가 범인인지 아닌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발 벗고 뛴다. 더 나아가 병구가 범인이든 말든 내가 범인을 잡을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답에 더 치중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가 잘못됐다는 막연한 판단을 내리고 싶진 않다. 어떠한 정보를 빠르고 쉽게 판단하기 위해 YES 또는 NO라는 판단이 어느 정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보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면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는 요인들이 발견되기 마련이다. 마치 병구가 외계인이라고 확신하며 사람들을 죽였지만 그 정도로 광기를 갖고 지구를 지키려고 하는 이유인 그에게 쌓인 불행한 과거의 순간들이다.
외계인의 실체를 드러낸 강만식은 외계인 중에서도 상위계층인 왕자였다. 사실 병구와 병구의 어머니는 그가 삼은 표본이었고 강만식은 실험을 중단하고 더는 지구에는 희망이 없다며 지구를 폭파한다. 흰빛이 감싸들며 서서히 사라지는 지구는 순식간에 폭파된다. 곧이어 보이는 병구의 유년 시절의 모습은 행복해 보이면서도 허무함을 자아낸다. 지구에서도 금수저인 강만식은 외계에서도 금수저이다. 흙수저인 병구는 결국 처절한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는 블랙 코미디답게 엽기적인 모습으로 보여주지만 수저 계급론의 이분법은 외계에서도 바뀌지 않았다. 영화는 강만식이라는 금수저 상위계층과 병구라는 흙수저 하위계층의 계급적 상하 곡선의 일탈 어느 정도의 허용치를 보여준다. 병구는 강만식을 납치 감금하고 그러한 상태에서 강만식은 무력하다. 그런 상태에서만은 강만식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내 죽음을 맞이하는 건 병구, 반면 강만식은 외계 왕자로 돌아가 하인들 앞에서 대우를 받는다. 영화는 끝끝내 변할 수 없는 계급 변동의 실태를, 상하 계급의 선명함을 씁쓸한 코미디로서 보여주면서 흑백의 답을 원하면서 그 안의 중요한 것들을 파악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현실을 그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