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듀코나우
인간은 현재의 문명을 구축하기까지의 우수한 지능을 가졌고 객관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사고 과정에 뛰어나다. 인간과 더불어 동물 또한 환경의 적응 방식과 그에 따른 지능, 생존 전략이 있지만 인간이 갖고 있는 언어체계와 사고방식 면에서는 현저히 하등 하다. 우리는 인간은 이성적이며 동물은 본능적이라는 편협한 오류를 범하며 인간과 동물의 수직적 체계를 암묵적으로 동의하며 살아간다. 인간은 이족보행을 하고 침팬지와 같은 포유류 제외한 대부분의 동물은 사족보행을 한다. 영화 <로우>는 네 발로 걷는 동물을 두고 인간이라는 우월감을 비가시적으로 품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결국 인간도 동물에 불과하다는 고등 동물로서의 회귀를 조장한다. 잠에서 깨어나 속옷 차림으로 붉은 조명의 기숙사 복도를 걷는 주인공 쥐스틴의 모습은 마치 제 발로 정육점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과 같다.
본능은 동물의 행동 중 어떠한 연습이나 모방 없이 유전적으로 몸에 지니고 있는 성질이다. 형태에 따라 구분하자면 섭식·모성·생식·방어·귀소 본능 등의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자극에 대하여 극히 단순하게 반응하는 하등 동물에 비해 인간은 여러 시대를 거친 진화에 따라 본능을 억제하면서 이성과 본능을 어느 정도 스스로 오갈 수 있게 된다. 반면 동물은 먹이가 없으면 식욕에 대한 본능을 이기지 못해 자기 새끼를 먹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주인공 쥐스틴이 스스로 본능을 억제하지 못해 육식 본능과 식인 식성에 고통을 받으면서도 끊임없이 갈구하는 모습처럼 말이다.
수의사 집안에 따라 자연스레 수의 학교에 진학한 쥐스틴은 학교에서 혹독한 신입생 신고식을 치른다. 신고식은 즐거움으로 포장된 강제적인 폭력성을 띄었고 쥐스틴은 그런 학교에서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채식주의자인 쥐스틴은 학교의 특수한 집단의식으로 억지로 토끼 콩팥을 먹는다. 이 때문에 쥐스틴의 몸에는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고통스러울 수준으로 몸이 가려우며 오한이 끊이지 않는다. 그렇게 쥐스틴에게 의도치 않는 육식 본능이 무의식적으로 나타난다. 냉장고를 열어 허겁지겁 생닭을 먹고 학교 급식으로 나온 고기 패티를 몰래 주머니에 넣는다. 이러한 본능은 가중되어 식인 본능으로 이어지면서 쥐스틴의 신체적, 정신적인 욕망을 끊임없이 지배한다.
학교 파티장에서 만취한 쥐스틴은 언니 알렉스의 장난으로 개처럼 네 발로 서서 시체 앞에서 마치 먹이사냥을 하는 것 마냥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이러한 쥐스틴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은 학교에 유포되고 다른 학생들은 쥐스틴을 혐오의 눈빛으로 쳐다본다. 여러 시대를 거친 인간의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일지언정 인간도 일련의 동물이라는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인간이란 결국 하등동물과의 구분이 명확한 ‘인간’이라는 하나의 탈을 쓴 동물임을 보여준다. 영화 결말부에 쥐스틴과 알렉스의 식인 본능은 그들 개인의 특수성만이 아닌 어머니가 갖고 있는 특성의 대물림이었으므로 밝혀지면서 한 인간만이 갖고 있는 단순한 개인적인 서사가 아닌 인간 모두에게 적용되는 동물적 본능을 회귀시키면서 결국 인간도 동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