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에 뿌리내린다는 것, 2025년의 기록

by 담단

2025년의 문을 열었을 때, 그곳엔 낯선 여유가 고여 있었다. 지난 하반기를 온전히 쉼으로 채우고 맞이한 1월이라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아이들도 나도 낯선 도시에 어느 정도 스며들었고, 나는 휴직이라는 멈춤의 시간에 만족하며 한 해를 시작했다.

2월까지는 새벽의 찬 공기를 마시며 짧게 일을 했다. 아침 일이 끝날 무렵 집에 전화를 걸어 둘째에게 내려오라고 일러두면, 그 작은 아이는 처음으로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오곤 했다. 2025년, 나는 내가 시간을 어떻게 흘려보내는지 관찰하려 했으나, 굳이 애쓰며 붙잡지는 않기로 했다. 다만 흐르는 것들을 붙잡아두기 위해 삶의 영역을 나누어 기록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계절이 바뀔 무렵, 거실의 풍경을 바꾸었다. 거실 벽을 가득 채우던 거대한 텔레비전을 가장 끝방으로 유배 보냈다. 책상 하나와 컴퓨터만 덩그러니 놓여있던 그 방은 이제 영상과 소파가 있는 휴식의 방이 되었다. 덕분에 거실은 온전히 우리의 것이 되었다. 예전부터 사용하던 넓은 테이블과 책장을 거실 한가운데 두었다. 나는 일 년 내내 그 테이블에 앉아 등 뒤로 쏟아지는 따뜻한 햇살을 받거나,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쉬고, 생각하고, 생활했다.

아기 같기만 하던 둘째가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생이 되었다. 3월, 큰 아이는 영어 말하기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아왔다. 뜻밖에도 아이는 스스로 대회 참가를 결정했고, 직접 원고를 쓰고, 손에서 쪽지를 놓지 않은 채 잠들기 전까지 중얼거렸다. 그 모습이 귀엽고도 짠했지만, 무엇보다 그 치열한 성장의 순간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이었다.

봄에는 가족들의 보험을 정리하고 인문학 책을 펼쳐 들었다. 하지만 나의 인문학적 열정은 여름의 열기와 함께 타버렸는지, 하반기에는 소소한 단편 소설들로 독서의 결이 바뀌었다. 다행히 3월에 정리해 둔 보험 내역은 일 년 내내 유용했고, 연말 운전자 보험 갱신까지 이어지며 올해 가장 잘한 '기록 정리' 중 하나로 남았다.

5월은 큰 아이의 사춘기로 공기의 밀도가 무거웠다. 밖에서는 친구들과 잘 지내는 듯했지만, 집안에서 나를 향해 쏟아내는 거칠고 당황스러운 감정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때 내가 선택한 방법은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그리고 철저히 혼자가 되는 것이었다. 약속을 잡지 않고 일정을 비우며 곰이 겨울잠을 자듯 에너지를 비축했다. 아이와 부딪히며 소모되는 감정을 채우기 위함이었다.

6월의 무기력이 찾아왔을 때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남편과 요가를 하고 새벽 체육관을 걸으며 하루를 채웠다. 나를 위해 정성껏 점심을 차려 먹고, 아이들의 간식을 준비하며 '그냥 잘 사는 것'에 집중했다. 7월에는 할 일을 적고 지워가며 무기력을 털어냈고, 8월에는 휴직을 1년 더 연장하며 이 달콤한 쉼을 이어가기로 했다. 엄마라는 페르소나에는 휴식이 없기에 방학 동안 풀타임 육아를 했지만, 축농증이 악화되어 결국 수술대에 오르기로 결정했다. 그저 코로 숨 쉬며 잠들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랐던 여름이었다.

더위가 가시지 않은 9월, 뒤늦은 여름휴가를 떠났다. 제주의 한 호텔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우리는 거창한 관광보다는 조용한 숙소와 작은 수영장만 있으면 만족하는, 영락없는 '느림보 여행자'라는 사실을. 친정엄마와 함께한 여행이라 세끼 식사를 챙기는 일이 만만치 않았지만, 엄마의 웃는 모습에 고단함은 씻겨 나갔다. 이후 짧은 일본 여행에서 푸딩 맛에 눈을 뜬 큰 아이 덕분에, 우리는 하루에 세 번씩 편의점을 들락거려야 했다.

가을에는 큰 아이 명의의 펀드를 증여하는 복잡한 숙제를 끝마쳤다. 세무사의 도움 없이 남편과 내가 직접 해결했다는 사실이 적지 않은 보람을 주었다. 그리고 15년 만에 다시 수영을 시작했다. 물을 가르는 기쁨 속에 10월을 보냈고, 큰 아이의 중학교 진학 문제와 대가족 일본 여행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11월을 맞이했다. 대가족 여행에 이어 우리 가족만의 여행까지, 8일간의 일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12월. 나는 한 해 동안 다녀온 여행의 사진들을 모아 앨범을 만들었다. 일 년 내내 이어진 독서 모임에서 읽은 일곱 권의 단편 소설집과 시집 한 권은 내 시간의 밀도를 높여주었다.

12월, 큰 아이가 학교에서 관계의 어려움을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고, 남편을 제외한 온 가족이 독감으로 앓아눕기도 했다. 돌아보니 2025년은 마냥 편안하고 기쁘기만 한 해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지금 화가 난 것인지, 당황한 것인지, 아픈 것인지, 아니면 두려운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난관이라 여겨지는 순간마다 나는 멈췄고, 나에게 길을 물었고, 다시 걸었다. 어떤 의미에서 2025년은 내 한계를 끊임없이 시험한 해였다.

수입이 없는 탓에 때로는 경제적 여유나 능력을 갈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결핍을 느끼는 나에게서 건강한 생기를 발견했다. 무언가를 더 원한다고 느낄 때마다, 나는 즉시 지금 내 상황과 감정에 감사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일 년 동안 외롭거나 울적하지 않았다. 예전의 나는 버거운 감정 때문에 서 있는 자리에서 다리가 풀리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이 단단함은 단순히 올해 별다른 어려움이 없어서, 내가 온실 속에 있어서가 아닐 것이다. 이것은 내가 내 자리라고 생각한 곳에 비로소 뿌리를 내렸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25년은 그 어느 때보다 의미 있었고, 기뻤고,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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