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회고

생의 급류를 건너는 법

by 담단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거센 강물을 건널 때 무거운 돌덩이를 가슴에 안는다고 한다. 빈 몸으로는 물살에 속절없이 떠내려가지만, 제 몸무게를 넘어서는 돌의 중력을 빌리면 비로소 발바닥이 강바닥에 닿아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우리 가족은 각자의 가슴에 묵직한 돌 하나씩을 안고 차가운 강을 건넜다.


지난해 11월, 큰아이가 원하던 중학교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만 해도 우리 집 거실엔 축제의 온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기쁨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인 12월, 학교폭력이라는 예상치 못한 급류가 우리를 덮쳤다. 1월의 사실조사와 2월의 심의위원회, 그리고 '맞신고'라는 비정한 현실까지.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극단적인 감정의 진폭을 경험했다. 피해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고통 앞에 서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자람을 처절하게 마주했고, 때로는 부조리한 시스템의 민낯에 좌절하기도 했다.


그 지독한 시간을 견디게 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안고 있던 ‘고통’이라는 이름의 돌이었다. 큰아이는 그 무거운 사건을 통과하며 합격의 기쁨에 들떠있을 새 없이 현실 속 고통의 시간을 마주하며 제 몫의 성장을 일궈냈다. 나와 남편은 부모라는 이름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삶에서 거저 주어지는 평온은 없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다시 한번 조심해야 할 것과 아닌 것을 냉정하게 구분하는 법을 배웠고, 비로소 세상의 거친 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폭풍우 속에서도 일상은 묵묵히 흘러갔다. 가계부를 다시 쓰기 시작하며 고정 지출을 줄여나갔고, 그 과정에서 의외의 작은 기쁨도 만났다. 마침 코스피가 장중 최고가를 경신하던 날, 한 달에 한 번 아이들 주식 계좌를 확인하는 월간 원씽을 실천하며 숫자로 증명되는 성장을 확인했다. 가계부를 쓰는 정성이 일상의 질서를 잡자, 자산의 흐름을 살피는 일도 한층 자연스럽고 즐거운 루틴이 되었다.


설 명절을 앞두고는 집안의 결을 고르는 일에 집중했다. 전주 계시는 친정어머니를 뵙기 위해 길을 떠나기 전, 냉장고를 비우는 '냉파'에 성공했고, 새로운 음식을 들여오기 전 비워진 칸들을 깨끗이 닦아내며 마음의 먼지도 함께 털어냈다. 나 자신에게는 좀처럼 만족하기 어려운 힘든 달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빈자리를 채워준 것은 타인들의 온기였다. 우리를 돕고 지지해 준 수많은 손길을 통해, 이 세상이 결코 나 혼자 버텨내는 곳이 아님을, 서로가 서로의 지지대가 되어주는 공동체임을 깊이 감사하며 체득했다.


이제 큰아이는 중학교와 기숙사 생활이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다. 아이의 짐 가방을 챙기며 필요한 물건들보다 더 중요한 '단단한 마음가짐'을 함께 담아주려 노력했다. 2월의 가장 큰 수확은 단순히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 그 소란스러웠던 일들을 차분히 정리하며 우리 가족의 내면을 단단한 암석처럼 다진 것에 있다. 사건들이 모두 종결된 그날 남편과 나는 조용히 큰아이를 위로했다. 아이도 그 마음을 느꼈는지 한마디 해주었다. “엄마, 아빠 우리 이제는 앞을 보자.”


우리는 안다. 앞으로도 생의 강물은 때때로 우리를 휘청이게 하겠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도망치는 대신 기꺼이 돌을 안을 것이다. 그 무게는 우리를 침몰시키는 짐이 아니라, 거센 물살 속에서도 우리를 땅에 발붙이게 하는 유일한 구원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언제나 우리를 붙잡아줄 따뜻한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잊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