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그 길의 시작

골목에서 시작된, 끝나지 않은 여정

by 할망

제주로 향하는 여정에는 특별한 시작이 있었다.

나에게 첫 구조 고양이였던 ‘미로’가 있었다. 미로와의 인연은, 길 위의 고양이들과 이어지는 삶의 방향을 열어주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직장 상사와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문득 창밖에 검은 무언가가 스치는 듯해 고개를 돌렸고, 창틀 너머로 한 고양이가 몸을 웅크린 채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턱시도 무늬의 그 고양이는 털이 엉망이었다. 제대로 구루밍 하지 못한 채 누더기처럼 헝클어진 털엔 낙엽이 붙어 있었고, 앙상하게 마른 몸에서는 뼈마저 드러나 보였다. 그 모습은 내내 잊히지 않았다. 사무실로 돌아와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그날 창밖에서 만난 미로. 낙엽보다 가벼운 숨결 하나가 마음을 흔들었다.


그날 밤, 상사가 말했다.

“네가 구조하고 싶다면 해. 병원비는 내가 낼게.”


낮에 창밖에서 마주했던 고양이의 눈빛이 다시 떠올랐다. 당시 나는 고양이를 구조해 본 적도, 동네고양이의 삶에 대해 깊이 아는 것도 아니었다. 돈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어떤 병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예상치 못한 치료비, 구조 후의 돌봄까지…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혔다. 그럼에도 우리는 결국 그 아이를 구조했다.

병원에서는 구내염 진단이 나왔다. 일주일간 입원 치료를 마친 후, 다시 길로 돌아갔다. 잘 먹이고 약도 챙겨야 했지만, 직장 생활을 하며 출근 전과 점심시간, 퇴근 시간에만 잠깐씩 마주치는 길고양이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행히 그 아이는 어느 사무실 앞을 종종 찾았고, 그곳 사람들은 고양이를 ‘미로’라 불러주었다. 나는 그곳에 약을 맡기며 안부를 확인했다.


두 달쯤 지나 다시 만난 미로는 젖이 불어 있었다. 당시 미로는 몸이 약해 중성화 수술을 하지 못한 채 퇴원했는데, 아마도 그때 이미 임신 중이었던 것 같다. 연약한 몸으로 아이 셋을 낳았고, 젖을 먹이며 차츰차츰 길 위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약해진 몸으로도 생명을 품어낸 미로. 젖을 물리며 조용히 길 위의 엄마가 되어갔다.


시간이 흘러 새끼들이 성묘가 될 무렵, 미로는 다시 자취를 감췄다. 아이들에게 영역을 물려주고 떠난 듯했다.
나는 그녀의 딸들에게 밥을 주기 시작했고, 그 아이들이 한 달 간격으로 낳은 아기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엄마 고양이들에게는 영양가 높은 음식을 전해주고 산후조리를 도왔다.

길 위의 엄마가 딸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딸은 다시 아이들을 품었다. 삶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미로가 물려준 자리 위에서, 딸과 손주들이 삶을 이어간다


그렇게 세대를 이어온 미로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녀는 더 야위어 있었고, 어디서 다친 것인지 알 수 없는 피범벅의 상처를 안고 있었다. 사람과의 거리를 두고 살아왔던 탓일까. 그녀의 몸엔 더 깊고 많은 상처들이 새겨져 있었다. 피로 물든 다리를 보며,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구조를 결심할 때면 늘 멀어져 갔던 아이였다. 이번에는, 반드시 제대로 구조하겠다고.

더 깊어진 상처와 함께 돌아온 미로. 나는 다시, 그녀의 곁에 서기로 했다.


하지만 미로는 쉽게 협조하지 않았다. 1차 구조 당시, 철장 안에서 다친 기억이 있었기에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미로가 좋아하는 치킨으로 유인하고, 도움을 주러 온 활동가가 조용히 다가가 뒤에서 안아 포획틀에 넣었다.

병원에서는 미로가 손을 타지 않는다는 이유로 철장 안에 넣어 치료하고 있었다. 마취를 동반한 처치가 반복됐고, 그녀의 몸은 그 모든 과정을 감당하기엔 너무도 연약했다. 소개받은 병원이었기에 믿고 싶었지만, 철장 안에서 홀로 버텨야 하는 시간들이 오히려 미로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마음이 무거워졌다. 퇴근 후 매일 면회를 다녔지만, 철창 너머 힘겹게 숨을 고르던 미로의 모습을 두고 돌아오는 길은 늘 고통스러웠다. 밤이 되면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상태는 점점 나빠졌고, 병원에서도 더는 희망적인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미로를 24시간 중환자실이 있는 대형 병원으로 옮겼다. 넓은 병실엔 포근한 담요와 화장실까지 마련되어 있었고, 그제야 미로는 처음으로, 제대로 누워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녀를 품에 안았다. 입원 전까지는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던 아이였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아파서였을까, 미로는 조용히, 내 품에 몸을 맡겼다. 나는 말없이 머리를 쓰다듬었고, 그녀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토록 간절히 회복을 바랐지만, 미로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그녀를 응원했고, 제주에서 전해진 따뜻한 마음들도 함께였지만, 끝내 미로는 회복하지 못했다. 나는 가만히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떠날 채비를 마친 그 작은 생명에게, 남은 마음을 하나씩 건네기 시작했다.

“미로야, 숨어 지내는 널 빨리 찾지 못해서 미안해. 언니가 몰라서, 더 잘 돌보지 못해서 … 정말 미안해.
다음에 다시 만나면, 그땐 정말 잘할게. 네 딸들과 손주들, 꼭 잘 보살필게.”

미안하고, 또 사랑한다고. 그렇게 나는, 마지막 마음을 전했다.

끝내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을, 마지막 인사에 담았다.


그날, 나는 미로의 장례식장 상 위에 꼭 전하고 싶었던 것을 함께 올렸다. 미로가 구조되기 전 마지막으로 발견됐던 곳은 동네 치킨집 앞이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그 가게 앞 노란 선을 따라 앉아 있었고, 우리는 그 치킨집에서 주문한 닭으로 미로를 유인해 구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장례식을 예약하면서, 치킨집에 미리 전화를 걸어 미로를 위한 마지막 한 상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미로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마음을 열었던 치킨 한 조각이, 장례식장 위에 고이 올려졌다.


그리고 그 곁에, 조용히 한 장의 그림을 올려두었다. 중환자실 면회 대기실, 미로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그 시간, 나는 작은 메모지에 그림을 그렸다. 품에 꼭 안고 있는 미로의 모습을 그리며, 어쩌면 그렇게라도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림 옆엔 짧게 적었다. “우리 미로, 혼자 아니야. 네가 싫어도 꼭 붙어있을 거라옹. 사랑해.”

나는 그 그림을 미로의 마지막 여정에 함께 실어 보냈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미로는 이 그림을 기억해 줄까. 나는 그날, 한 생명에게 진심을 다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그림 한 장에 담은 마음. 미로에게 전하고 싶었던 마지막 인사


이별은 고통스러웠지만, 미로와 함께한 마지막 순간의 체온과 눈빛은 내게 오래도록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다. 길 위에서 오랫동안 아프다 떠난 미로에게 미안한 마음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나는 그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다른 아이들에게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아간다.


두 번의 구조와 치료가 있었지만, 그 시절 나는 고양이를 돕는 방법을 잘 몰랐다. 미로에게 충분히 해주지 못했다는 자책은 여전히 마음 깊이 남아 있다.

미로의 마지막 안식처로 나는 제주의 선미 언니 집 앞마당을 떠올렸다. 끝없이 펼쳐지는 청보리밭, 바람조차 평화로운 그곳은 미로에게 가장 어울리는 곳처럼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내 마음을 꺼냈을 때, 선미 언니는 말없이 받아주었다. 길 위의 생명을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는 언니였기에 믿고 말했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처음엔, 그 집의 고양이 래미가 미로의 말동무가 되어주기를 바랐다. 초록빛 보리물결 너머로 함덕의 푸른 바다가 아득히 펼쳐지는 풍경은, 마치 미로에게 조용히 평안을 건네는 듯했다.

육지에서 온 미로에게, 래미는 제일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준 친구였다.


하지만 래미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소풍을 떠났다. 래미가 미로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듯, 나는 언니에게 목공방 앞에 유기돼 있던 아기 고양이를 조심스럽게 소개했다. 그날 우리는 나무 자재가 가득 쌓인 목공방 안쪽에서, 마치 그곳이 제 집인 듯 당당히 누워 있던 아기를 만났다. 그리고 문득, 다가서자마자 앞발로 내 다리를 덥석 붙잡고는 “데려가라옹!” 하듯 매달리던, 그 맹랑한 아기 고양이를 바로 품에 안아왔다.

목공방 앞에 유기된 아기 고양이. 나무 자재 틈에서 우리를 바라보던 그 아이는, 먼저 손을 내밀며 새 가족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쯤 래오는, 별이 된 래미와 미로 할머니 곁에 마음을 보내며, 청보리를 바라보며 재미난 수다를 나누고 있을 거라 믿는다.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조금 놓인다. 제주에 머물 때마다 나는 자연스레 그 집을 찾는다. 선미 언니의 너그러움이 늘 나를 맞아주었고, 그 덕에 더 많은 제주의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곳은 이제 미로만의 안식처가 아니다. 나와 래오에게도 소중한 쉼터가 되었고, 삶의 마지막에는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작고 단단한 희망을 내게 건네준 곳. 그곳이 바로, 미로의 마지막 집이다.

그 테라스 위에는 한때 래미가 앉아 햇살을 맞았고, 그 아래엔 지금 미로가 잠들어 있다. 나는 바란다. 래미도 여전히 그 곁 어딘가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기를.

가을이면, 미로 곁에는 래오 엄마가 심어준 분홍 소국이 활짝 피어난다. 작은 꽃송이들이 햇빛을 머금고 고개를 흔드는 모습이, 마치 미로가 다시 돌아와 웃는 듯하다.

테라스 위엔 래미의 기억이, 그 아래엔 조용히 잠든 미로의 안식이 있다.
래미의 자리를 따라 래오도 미로 곁에 머물고, 가을이면 분홍 소국이 그 자리를 물든다.


미로가 병원에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마음을 보태주었다. 특히 먼 제주섬에서 건너온 그 마음들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제주로 향한 나의 여정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미로를 기억하는 마음, 그리고 그녀에게 마음을 보내준 이들에게 전하는 감사의 길이었다.


삶을 걷다 보면, 예상치 못한 만남과 이별이 우리를 전혀 새로운 길로 이끌곤 한다. 미로와의 인연도 그랬다. 그녀는 내 삶을 고양이들과 이어주었고, 제주라는 땅과도 새로운 끈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나는 '길 위의 고양이들과 살아가는 삶'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미로’라는 이름은 방배동의 한 어르신이 지어주신 것이었다. 우연처럼 들렸지만, 이후 연남동 미로 골목에 자리한 한 카페에서 전시 제안을 받았고, 그 인연은 다시 이쁜이와 바람씨의 구조로 이어졌다.

제주에는 ‘김녕 미로공원’이 있다. 나는 세 번이나 그곳을 걸었지만, 끝내 출구를 찾지 못했다. 중간중간 마주친 고양이들에게 마음을 빼앗겨 길을 잃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미로가 내게 남긴 숙제였을까. 길 위의 고양이들을 계속 만나라는.

나는 여전히 골목을 거닐며 고양이들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언젠가 하늘 어딘가에서 미로를 다시 만난다면, 우리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며 출구를 함께 찾아낼 수 있을까.

미로공원의 어느 길목, 잊지 못할 이름이 걸려 있습니다


미로는 내게 첫 번째 길을 열어준 고양이였다.

짧지만 깊었던 인연은 마음속 작은 불씨가 되어, 시간이 흘러 제주의 방파제에서 다시 타올랐다.

그곳엔 또 다른 어미 고양이와 아기들이,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길 위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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