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입으로 생을 물어 나르는 고양이 어미의 하루
(이전글) 처음 만난 사이지만 가방 좀 털겠소.
어제 방파제에서 만난 고양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른 아침 서둘러 길을 나섰다. 전날 넉넉히 먹이지 못한 미안함이 마음에 남아 있었고, “내일 다시 올게”라는 말은 마음속에 오래 맴돌았다. 밤새 내린 비로 땅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고, 고양이들이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 같았지만, 약속을 기억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며 다시 방파제로 향했다.
일주일의 여정도 어느덧 마지막 날. 트렁크에 가득 담아 왔던 간식은 이미 바닥났고, 래오 엄마에게 양해를 구해 곤히 잠든 래오 몰래 사료와 닭가슴살을 챙겼다. 래오네 집에서 방파제까지는 차로 10분 남짓. 비가 갓 그친 아침, 방파제는 숨을 죽인 듯 고요했고, 고양이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햇살이 골목의 물기를 말려가자, 어디선가 하나둘 나타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마을 안쪽으로 걷던 중, 멀리 쓰레기통 위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젖소 무늬의 치즈 고양이 한 마리가 쓰레기통 주변을 킁킁거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며칠간 이어진 비에 포구는 적막했고, 제때 끼니를 챙기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료 봉지를 살짝 흔들자, 고양이는 놀라 뒷걸음쳤다가 이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나를 살피는 눈빛엔 경계심과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다. ‘이거, 먹는 거다냥. 안심하라옹.’ 속으로 말을 건네며 사료 그릇을 내밀고, 닭고기를 고명처럼 얹어주었다. 고양이가 안심할 수 있도록 한 걸음 물러서자, 작은 입으로 부지런히 사료를 욱여넣는 모습에서 깊은 배고픔이 전해졌다.
그러나 고양이는 몇 입 먹다 말고 갑자기 마을 쪽으로 사라졌다. ‘숨겨둔 은신처에서 먹으려나?’ 생각할 즈음, 다시 모습을 드러낸 녀석은 또 한 번 사료를 입에 가득 문 채 사라졌다. 그렇게 몇 차례를 반복하며 분주히 오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나는 문득 고양이의 불룩한 배에 눈길이 머물렀다. 젖이 불어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직 얼굴에 어림이 남은 이 아이는, 어미 고양이였다. 작고 단단한 몸에는 새끼를 살리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가방에서 습식 캔을 꺼내 조심스레 내어주었다. 한 입 베어 문 고양이는 또다시 자리를 떴고, 그 뒷모습은 말 한마디 없이도 깊은 울림을 남겼다. 자신은 배가 고파도 새끼부터 챙기려는 본능이, 그 작고 빠른 발끝에 그대로 묻어 있었다. 몇 번을 오간 뒤에야 어미는 잠시 숨을 고르듯 자리에 앉아, 와그작 소리를 내며 허겁지겁 식사를 시작했다. 남은 캔이며 사료, 닭가슴살까지 모두 내어주었다. 혹시 탈이 날까 염려도 되었지만, 어쩌면 이 한 끼가 오늘 하루 어미의 유일한 식사일지도 몰랐다. 나는 어미가 등을 돌릴 때까지 먹이를 보탰다.
어미의 몸은 앙상했고, 충혈된 눈은 허피스를 의심케 했다. 비바람을 견디며 젖을 물린 어미 고양이들. 어제도 셋을 만났고, 오늘로 넷째였다. 이틀 동안 마주친 네 마리의 어미 고양이. 두려움을 품고서도 새끼를 살려내기 위해 낯선 이 앞에 나서는 그 용기에, 마음이 저릿했다.
그때,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한 주민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고양이 밥 주는 거예요?”
“네. 태풍때문에 잘 못 먹은 거 같아서요.”
“새끼들 봤어요? 정말 손바닥만 한 아기들이 있는데, 태풍에 무사했는지 모르겠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방파제 끝에서 만난 건 다섯 달령 아이들과 성묘들뿐, 아기들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어미들이 수유에 필요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도록, 좀 더 도울 수 있었을 텐데.
오늘은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다. 짧았지만 뜨거웠던 만남. 나는 그날을 마음 깊이 새기며, 다시 고양이들과의 약속을 다짐했다. 그리고 조용히, 방파제를 뒤로했다.
*허피스 : 바이러스 감염성 감기증상을 말한다. 호흡기에 주로 발병하지만, 눈에도 바이러스가 감염될 경우 결막염을 유발하며 심할 경우 각막궤양을 부르기도 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