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줄 알았던 아기 고양이, 그리고 방파제 위의 기적 같은 하루
바람이 멈춘 방파제 위, 조용히 고개를 내민 작은 얼굴. 열흘 전 태풍에 휩쓸려 사라졌다고 믿었던 아기가, 거기 있었다. 말도 안 되게, 살아 있었다.
어미의 세 번째 출산에서 태어난 다섯 주령 아기 둘 중, 태풍 이후에는 오직 한 마리만 모습을 드러냈다. 보이지 않던 아기는 바닷속으로 떠나버렸다고 생각했다.
먼저 모습을 드러낸 아기를 구조해 임시 보호처에 맡긴 후, 더는 젖을 물릴 아이가 없다고 판단해 어미를 병원에 보냈다. 연이은 출산으로 지친 어미에게 이번만큼은 꼭 중성화 수술을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고 믿었다.
어미를 병원에 보낸 그날, 여전히 어미 곁을 맴도는 네 달 된 형제들이 걱정돼 바위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믿기 어려운 장면과 마주했다.
그동안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아니,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막내 아기가 그 자리에 있었다.
태풍 이후 바다에 휩쓸린 줄로만 알았던 바로 그 아이.
기적처럼, 살아 있었다.
석 달 먼저 태어난 언니가 마치 엄마라도 된 듯 막내를 품에 안고 있었다. 어미가 없는 동안, 자매는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있었다. 그 따뜻한 의지가, 오후 햇살처럼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살아 있어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혼란이 밀려왔다. 그동안 형제 중 하나라고 믿었던 아이가, 사실은 막내였던 걸까. 막내는 어디에서, 어떻게 그 긴 시간을 버티고 있었던 걸까.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나는 말을 잃었다.
태풍 ‘하이선’이 지난 어느 날의 장면이 떠올랐다. 비 예보가 있던 날, 선영 씨가 영양밥을 넣기 위해 바위틈 아래로 내려가던 순간이었다. 그때 바위 위에 나와 있던 아기 고양이가 다가와 그녀의 다리에 꼭 매달렸다. “언니, 나도 데려가라옹.” 마치 그런 눈빛처럼. 작고 말없는 그 발이 꼭 붙들듯 매달려 있던 모습은 오래도록 마음을 붙잡았다.
며칠 뒤, 안약을 넣으러 방파제를 찾은 날이었다. 낚시를 마치고 돌아가는 아저씨 뒤를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끈질기게 따라가고 있었다. 어미를 뒤로한 채 낯선 사람의 뒤를 당당하게 따르는 모습은 낯설고도 설명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멀찍이서 지켜보던 어미는 아기를 향해 애타게 다가섰지만, 이내 멈춰 섰다. 그 눈빛엔 말할 수 없는 애틋함이 서려 있었다.
아기는 가방을 멘 아저씨의 발자국에 보폭을 맞춰 또각또각 걷고 있었다.
낚싯대와 바람, 바닷소리 사이로 둘만의 런웨이가 이어지는 듯했다.
낚시꾼의 뒤를 졸졸 따라가던 아기를 보다 못한 동행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어미야, 아기 데려가야지!”
그는 낚시가방을 내려 아기 앞을 가로막았다. 그런데 아기는 겁을 내기는커녕, 가방에 얼굴을 비비더니 그대로 아저씨에게 돌진했다. 작은 몸으로 사람에게 기대는 아기. 낯선 냄새도, 소리도, 바닷바람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엄마, 이 아저씨 따라가면 평생 배부를 수 있어요.’
그 작은 눈빛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릿해졌다.
멀리서 지켜보던 어미는 마침내 달려와 아기의 목덜미를 물고 바위틈으로 돌아갔다. 낚시꾼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웃었고, 나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기 위한 호기심이었을까, 본능이었을까.
얼마 전 먼저 구조했던 형제 아기도 해 질 무렵 몰려든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쫓아다녔다. 어미의 보살핌을 온전히 받지 못한 두 아이는 본능적으로 살 길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방파제 위에서, 고양이와 사람은 그렇게 잠시 서로를 가로막고, 이어주었다.
다시 찾은 어느 날, 나는 여전히 아기 고양이들의 얼굴을 또렷이 구분하지 못한 채 방파제를 오갔다. 중성화 수술을 마친 어미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온 날, 다시 막내 아기를 만났다.
“아가야-” 낮게 부르자, 먼저 태어난 형제들이 바위 위로 올라왔고, 그 뒤를 따라 막내 아기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엄마가 곁에 없는 지금, 아기의 면역력이 걱정됐다. 무엇이든 먹여야 했다. 분유와 습식을 섞어 준비하고, 아기가 올라오도록 장난감 낚싯대를 흔들었다.
아침에 어미를 포획할 때도, 언니 고양이들이 포획틀 안을 들락날락하며 애를 태우더니, 이번에도 가장 먼저 튀어나와 낚싯대를 낚아챘다. 또 한 번의 시도는 다시 형제들에게 가로막힌 듯했다.
그러던 중, 낚싯대 끝을 향해 눈을 반짝이던 아기를, 나는 조심스레 품에 안아 올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낯선 냄새에 입을 꾹 다물며 억지로 떠먹여야 했던 습식 캔을, 이제는 숟가락만 보여도 스스로 입을 맞췄다.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작고 여린 몸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안약을 넣어주러 다시 갔을 때, 아기는 바위틈 깊숙이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눈은 더 붓고, 기침도 시작됐다. 분명 상태가 나빠지고 있었다. 어미도 없이, 이 작은 생명을 더는 그곳에 둘 수는 없었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형제 아기의 임시 보호처를 구하는 글을 올렸을 때 “저도 아기를 보살펴주고 싶다”며 연락을 주셨던 분이 있었다. 전화를 드리자, “방 하나를 비워두었으니 지금 오셔도 된다”고 하셨다.
선영 씨가 몸을 눕히고 바위틈 깊은 곳으로 팔을 뻗었다. 막내는 생각보다 안쪽에 있었다. 팔이 닿지 않자, 선영 씨는 온 힘을 다해 겨우 아기를 끌어냈다. “팔이 5센티만 더 길었으면…” 나중에 웃으며 했던 말이지만, 그날의 긴장과 숨 막히는 순간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이다.
병원 진단은 형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허피스 증상, 곰팡이성 피부병 의심, 항생제 주사와 연고 처방. 그런데 의외로 몸무게는 형제보다 100g이나 더 나갔다. 젖을 더 많이 먹은 덕분일까. 아기 안에 살아 있으려는 힘은 분명히 남아 있었다.
또다시 어미에게서 아기를 떼어내야 한다는 마음의 짐은 컸다. 그러나 늦지 않게 발견했다는 사실이 그 무게를 조금 덜어주었다.
임시 보호처는 방파제에서 멀지 않은 함덕에 있었다. 이미 네 마리의 고양이를 돌보고 있었지만, 작은 생명을 기꺼이 맞아주겠다는 그 마음이 고마웠다. 병원에서 사료와 캔을 급히 구입해 전했고, 필요한 물품은 주문해 보내드렸다.
밤이 내려앉은 길. 선영 씨와 함께 아기를 맡기고 돌아오는 길, 모든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아침까지만 해도 살아 있으리라 믿지 못했던 아기를, 해 질 무렵엔 품에 안고 있었다. 별이 된 줄 알았던 아기가 살아 있었고, 나는 그 아이를 보면서도, 끝내 알아보지 못한 채 며칠을 떠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사진을 들춰보다가 마침내 깨달았다. 태풍 이후 가끔 모습을 비췄던 그 무리 속에, 막내도 있었다는 것을. 콧등을 타고 흐르던 진한 무늬를 알아보지 못한 채, 늘 같은 아이만 보고 있다고 믿어왔던 나날들이 스쳐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미 고양이는 중성화 수술을 마치고 병원에서 이틀간 회복한 뒤 돌아왔다. 한쪽 귀는 잘려 있었지만, 대신 생의 의지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아이들을 만나자마자 어미는 정성스레 핥아주었고, 곧 어디론가 시선을 돌렸다. 막내가 머물던 은신처 앞에서 어미는 한동안 발걸음을 멈췄다.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어딘가 비어 있는 기운을 감지한 듯, 조용한 눈빛이 그 자리에 오래 머물렀다.
나는 마음 깊이 말했다.
“어미야, 이번 아기도 잘 보살필게. 꼭, 사랑해 줄 사람에게 보내줄게. 내가 지킬게, 이 약속.”
그리고는 여느 때처럼 생선을 물고 돌아왔다. 말없이 아이들의 식사를 지켜보는 그녀의 모습엔, 한 생을 감싸 안는 책임감이 묻어나 있었다.
그녀의 모성은 여전히, 단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