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꾼 아저씨가 건넨 생선, 고양이의 하루를 바꿨다.
전날, 아픈 아기를 급히 구조해 병원으로 향하면서도 어미에게 아무 말도 전하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 순간 어미는 멀리 반대편에 있었고, 나는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어미 입장에선 또다시 아이를 빼앗긴 셈이었을 것이다. 작년, 일곱 마리 중 세 마리를 데려갔던 기억까지 떠올렸다면 더욱 그랬으리라.
하지만 우리는 말 없는 시간 속에 신뢰가 조금씩 쌓여갔다. 넉 달 사이 두 번의 출산을 한 어미는 먼저 태어난 아이들을 돌보느라 바빴고, 그 사이 아기는 홀로 남겨지는 일이 잦았다. 어미 고양이는 마치 “우리 아기 좀 데려가서 치료해 주세요”라고 말하듯,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서 아기가 사람을 따라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혹시 이번에도, 아이가 무사할 거라고 믿고 있었던 건 아닐까.
다음 날 아침, 미안함과 걱정을 안고 다시 방파제를 찾았다. 어미와 두 아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온히 앉아 있었다.
“어미야, 아기는 치료받고 있어. 건강하게 나아서, 좋은 가족 만나게 해 줄게.”
내 말에 어미는 담담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연이은 출산과 태풍 속에서 아기들을 지켜내느라 몸도 마음도 지쳤을 어미였다. 스스로 돌보기 어려운 아기를 위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어쩌면 어미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막내 아기는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정말 태풍이 데려가 버린 걸까.
어미는 방파제 끝자락에서 낚시꾼들과도 정이 들었다. 마치 전속 응원단처럼 아저씨들 곁에 꼭 붙어 앉아 있었다. 한 아저씨가 작은 생선을 건네자, 어미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옆에 있던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얘는 이제 벵에돔 아니면 안 먹어요.”
정말 그랬다. 벵에돔이 잡히자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 생선을 내밀었고, 어미는 커다란 생선을 입에 물고 성큼성큼 방파제를 걸었다. 그러다 힐끗 나를 보며 말하는 듯했다.
“봤지, 언니? 나 벵에돔도 받아온다구.”
그러곤 아기들이 있는 바위틈으로 재빨리 달려갔다. 그날 어미는 네 마리나 선물 받았다. 아저씨는 어미가 아기들에게 배달하는 모습을 보고는 몇 번이고 챙겨주셨다. 그 마음이 참 따뜻했다.
입에 문 건 고작 한 마리 생선이었지만, 어미는 그날도 가족의 하루를 건져 올리고 있었다. 위풍당당한 걸음, 살아 있는 눈빛. 신이 난 어미의 발걸음을 따라, 나도 모르게 마음이 들떴다.
그날 이후, 아침저녁으로 방파제를 찾았다. 어미는 변함없이 두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생선을 배달하느라 분주했다. 네 달 전 태어난 이 아이들은 사료보다 엄마 품에서 얻는 따스한 영양과 생선을 더 좋아했다.
하지만 이 습하고 위험한 바위틈에서 아기들을 출산하는 일이 반복되어선 안 됐다. 어미의 중성화 수술을 준비하며, 하루 두 번 영양식을 챙기고,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장난감 낚싯대로 천천히 다가갔다. 언젠가 어미가 수술을 받게 되면, 아이들이 내 손에서 밥을 받아먹을 수 있도록.
아기가 사라진 뒤 긴장했던 어미의 마음을 풀어주고자, 마따따비를 내밀었다. 향긋한 냄새에 온 가족이 정신이 쏙 빠져들었다. 엄마도 아기들도 몸을 비비고, 데굴데굴 구르며 한바탕 난리법석을 치렀다. 그제야 이 작은 가족도, 잠시 마음의 경계를 풀고 웃는 듯했다.
드디어 TNR의 날이 밝았다. 포획틀 세 개를 챙겨 이른 아침, 책다방의 선영 씨와 함께 방파제로 향했다. 어미와 아이들은 이제 우리를 익숙한 얼굴로 알아보고, 먼저 마중 나올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포획 당일을 대비해 전날부터 급식소 사료는 모두 치워두었지만, 어미는 주로 낚시꾼에게 생선을 얻어먹었기에 작전은 쉽지 않았다. 낚시하러 온 분들께 어미의 수술을 설명드리며, 오늘만큼은 물고기를 주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렸다. 낚시꾼들은 “잘 됐네요. 이제 그만 낳아야지.”라며 흔쾌히 응답해 주었다.
어미는 방파제 끝자락 등대 아래를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결국 포획틀은 그곳 한복판에 설치됐다.
사람들이 지나며 “뭐 하는 거예요?” 하고 물었고, 나는 그때마다 먼저 중성화 수술에 대해 설명을 건넸다.
어느새 TNR 제도까지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어쩌다 보니 방파제의 TNR 홍보대사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마쳐야 했다. 하지만 어미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포획틀 근처에 오면 아이들이 먼저 달려들었고, 어미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돌아서곤 했다. 낚싯대로 아이들을 유인하고 츄르로 어미를 꾀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였다.
“이제 포획틀에 벵에돔이라도 넣어야 하나?”
내 농담에 선영 씨가 곧장 아저씨를 찾아갔고, 아저씨는 아무렇지 않게 벵에돔 한 마리를 건네주셨다. 포획틀 안에 벵에돔을 넣자마자 ‘파드닥’ 소리가 났다. 어미는 단 한 치 망설임도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우리는 눈을 마주치고 동시에 웃었다. 벵에돔을 보고 포획틀로 뛰어드는 어미의 모습은 어찌나 사랑스럽고 기특하던지, 숨이 멎을 듯 놀라웠다.
그 장면은, 두고두고 떠오를 만큼 눈부신 한순간이었다.
아저씨가 달려와 묻는다. “잡혔어요?”
“네, 덕분이에요. 정말 고맙습니다.”
“놀라지 말고 잘 다녀오렴. 수고했어요.”
그렇게 어미와 벵에돔, 그리고 아저씨와 우리의 마음까지 더해진, 완벽한 합동작전이 성공했다.
“이 장면은 곧 그림으로도 만날 수 있어요 :)”
뒷좌석에 탄 포획틀 안, 벵에돔과 함께 병원으로 향하는 어미를 떠올리며 피식 웃음이 났다.
“어미야, 수술 잘 받고 오자. 이제 아기 잃는 일은 없을 거야.”
병원에 도착해 포획틀을 내려놓으며 직원에게 말했다.
“안에 물고기도 같이 있어요. 놀라지 마세요.”
박스로 감싸 포획틀이 보이지 않자, 직원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방파제에 사는 고양이인데, 통조림으론 안 돼서요. 좋아하는 물고기를 넣었더니 들어갔어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선생님과 나 사이에, 짧지만 깊은 공감이 스쳤다. 포획틀을 열었을 때의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벵에돔과 함께 병원에 온 고양이는, 아마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어미야, 아이들은 언니가 잘 돌보고 있을 테니 걱정마라옹.”
어미를 병원에 맡긴 뒤, 다시 방파제로 향했다. 잡혀가는 어미를 지켜본 아이들을 안심시켜야 했다.
급식소 옆 포획틀을 확인하러 가던 길, 또 한 마리 고양이가 조용히 그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몇 달 전, 젖이 불어 있었던 또 다른 어미였다.
말없이, 천천히. 또 한 생명이 스스로 포획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래, 이제 너도… 조금은 편히 살아도 돼.’
낯익은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바위틈은 다시 조용해졌다. 어미는 병원으로 향했고, 아이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모든 생이 무사하길 바라며, 나는 다시 방파제를 살폈다.
그때는 몰랐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