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를 기다리다, 사람을 택한 생명의 이야기
두 개의 태풍이 잇따라 제주 동쪽을 강타했다. 쓰러진 가로수와 끊긴 전선, 멈춰선 신호등 사이로, 자꾸만 방파제 바위틈이 떠올랐다. 그 어둡고 차가운 공간에서 만났던, 생후 한 달 남짓의 아기 고양이 둘. 유난히 작고 약했던 한 아이는 어미 곁을 자주 놓쳤고, 나는 그 아이에게 안약을 넣어주고, 내 치마 위에서 잠든 채 다시 어미에게 돌려보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돌아간 곳은 또다시 바위틈이었다.
전기가 끊긴 도로를 따라 흔들리는 전선, 흩어진 나뭇가지들. 나는 그런 풍경을 지나 다시 방파제로 향했다. 고양이들이 마지막으로 사라진 자리. 아직은,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방파제는 전면 폐쇄된 상태였다. 불어난 바닷물이 바위를 넘실거리며 삼켜 들고 있었고, 그 깊은 틈 어딘가에 아기들이 있을 거라는 사실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 입구엔 노란 폴리스라인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 아래 삼순이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등대로 향해 길게 뻗은 방파제를 앞에 두고, 그녀는 마치 고요를 품은 배의 수문장처럼 묵묵히 그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서서, 어미와 새끼가 그 바위틈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미야— 어미야—”
다급히 외쳐보았지만, 되돌아온 것은 파도 소리뿐이었다.
삼순이는 작년 여름, 이 방파제에서 새끼를 잃은 어미였다. 속수무책으로 아이를 떠나보낸 자리였지만, 중성화 수술 이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폴리스라인 아래,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던 삼순이를 조용히 급식소로 유인했다. 맑음이의 형제 삼색이도 모습을 드러냈다.
젖은 사료를 치우고 급식소를 정비하며,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고양이들의 무사함을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 하루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적막과 염려, 그리고 기다림뿐이었다.
이튿날에도 방파제는 여전히 폐쇄 상태였다.
태풍 ‘하이선’이 지나간 뒤, 바다가 잠시 숨을 고른 아침. 나는 책다방 선영 씨와 함께 다시 방파제로 향했다.
아기 고양이들을 위한 고영양 사료와 분유, 영양제, 아이스팩에 넣은 안약까지—모든 준비는 단 하나의 바람, 바위틈 어딘가에서 무사히 견디고 있을 아기들을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방파제를 수색하며 고양이들을 찾아다녔다. 바위틈은 침묵했고, 고양이들의 흔적도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적막감이 낮게 깔린 그 아침, 두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선영 씨는 가게 문을 열기 위해 자리를 떴고, 나는 홀로 그곳에 남았다.
그리고, 마침내—
바위틈에서 작은 생명 하나가 살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틀 전, 내 치마 위에서 잠들었던 바로 그 아기였다.
살아 있었다. 그 작고 여린 몸으로 태풍을 견디고 다시 내 앞에 나직이 다가온 아기를 보는 순간,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왔다.
“아가, 언니 알지? 맘마 먹자! 어서 올라오라옹.”
바위에 웅크리고 있던 아기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한층 더 짓무른 눈, 흐릿한 초점, 그 안엔 무언가를 꼭 붙잡고 싶은 마음이 희미하게 맺혀 있었다. 아기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침내 방파제 위로 천천히 올라왔다. 숟가락에 섞은 영양제 습식을 건네자, 주저 없이 받아먹었고, 안약을 넣을 때도 도망치지 않았다. 어미는 오지 않았고, 아기 역시 어미를 찾아 나아가려는 기색은 없었다. 내 곁에 기대듯 머물며, 작고 조용한 체념 같은 시간이 흘렀다.
아기가 치마 위에 누워 잠든 사진을 본 언니옷장 언니는, 꽃무늬 천 매트를 전해주었다. 하루 여덟 번, 일정한 간격으로 넣어야 하는 안약 투약을 위해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아기는 꽃매트 위에서 잠들었다가도 내가 움직이면 졸졸 따라오고, 멈추면 다리 옆에 몸을 기댄 채 웅크렸다. 메마른 작은 몸으로 필사적으로 나를 좇는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아릿했다.
아기가 모습을 드러낸 후, 고개를 돌려 방파제 끝을 바라보았다. 등대 옆, 낚시꾼 뒤편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어미 고양이였다. 그 곁엔 먼저 태어난 두 아기 형제가 나란히 몸을 기대고 있었다. 하지만 막내 아기는 보이지 않았다. 바위 안 어딘가에, 혹은 이 방파제 어딘가에 아직 숨은 채 남아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아기는 작은 목소리로 삐약삐약 울기 시작했다. 어미를 부르는 듯한 울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듯, 방파제 위를 헤매던 울음이 천천히 번져나갔다. 혹시 내가 자리를 비우면 어미가 다가오지 않을까. 아기만 남겨둔 채 멀리서 지켜보았다. 하지만 어미는 나타나지 않았고, 아기 또한 엄마를 향해 움직이지 않았다. 뜨거운 햇볕 아래, 아기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졸고 있었다.
아기가 걱정되어 우산을 펼쳐주자, 망설임 없이 그 아래로 쏙 들어왔다. 다시 다가가자, 이번엔 치맛자락 아래로 달려와 몸을 눕혔다. 잠시 깼다가, 또 달려오고, 다시 치마 아래로 파고드는 작은 몸. 아기는 그렇게 나를 따라다니며 움직였다.
꽃무늬 천 위를 종종걸음으로 달리는 아기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문득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정말로 꽃길만 걷게 해주고 싶다.’
한참 뒤, 어미 고양이가 나타났다. 그 곁엔 먼저 태어난 두 아기 형제가 함께 있었다. 건강한 아이들을 돌보는 어미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가장 약한 이 아기를 홀로 두고 다니는 모습엔 어쩐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어미는 아기를 물고 바위틈으로 데려갔다.
해 질 녘, 다시 방파제를 찾았다. 태풍이 지나고 맑게 갠 하늘, 일몰을 보려는 사람들로 방파제에 인파가 몰릴 것이 염려되었다. 막내 아기도 찾아야 했고, 어두워진 뒤 아기 고양이를 유인해 습식을 먹이고 안약을 넣기엔 두 손만으론 감당하기 어려웠다. 나는 지난 방파제 고양이들 중성화 수술 때 함께해 준 희재 씨에게 조심스레 도움을 청했고, 그녀는 흔쾌히 함께해 주었다.
방파제에 도착하니 맑음이가 나와 있었다. 비 오는 날에도 급식소 앞을 지키던 아이였지만, 태풍이 몰아치던 날들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매일같이 출석 도장을 찍던 아이였기에, 바람이 잦아들었을 때 잠깐 다녀간 거라 믿으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었다.
그런데 이렇게 눈앞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마주하니, 그제야 가슴이 놓였다.
“우리 맑음이, 태풍 잘 피했네! 멋지다옹.”
맑음이는 우리가 아기 고양이를 기다리는 동안 곁을 지켜주었다.
그때, 또다시 혼자 아기가 올라왔다. 자꾸만 홀로 남겨지는 이 아이를 보며,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어미가 다른 아이들만 돌보는 모습은 이해하면서도, 이 작고 약한 아기를 향한 관심은 왜 더디기만 할까.
막내 아기는 여전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태풍에 휩쓸린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아기야—”
내가 부르자, 아기는 단숨에 달려왔다. 낮에 누웠던 꽃무늬 매트 위로 올라온 아기는, 준비해 둔 습식과 안약 박스를 마치 쇼핑하듯 둘러보며 하나하나 냄새를 맡았다. 나의 냄새를 기억하고, 익숙한 체온에 안도했는지 내 옆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아기의 결막은 더 심하게 부어 있었다. 나는 아가 손님에게 맛있는 습식을 대접하고, 안약을 넣어주었다.
하늘은 분홍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아기가 사람만 보면 따라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은 희재 씨가 장난스레 달리는 시늉을 하자, 아기는 곧장 뒤따라 달렸다. 내가 달리자 다시 나를 따라왔다. 그렇게 사람 발걸음을 좇아 바삐 움직이는 작은 몸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저릿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기 눈의 상태는 점점 심각해졌다. 콧물도 흐르기 시작했고, 결막염도 심해졌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이 아이까지, 잃게 될까.’
‘이제는, 구조해야 할까.’
늘 그랬듯,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아기를 구조하더라도 마땅한 임시 보호처가 없다면, 어미에게 다시 돌려보낼 수도 없고, 치료가 끝난 뒤 갈 곳을 찾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병원에 다녀온 이후 어미가 아기를 외면할까 봐, 늘 망설이게 된다.
그래서 구조는 언제나, 다음 단계가 마련되었을 때만 감행하곤 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아기는 너무 어렸고, 어미도 잘 돌보지 않았다. 무언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정말 잘못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 소식까지 있었던 그날, 나는 뒷일은 잠시 미루기로 했다.
지금은, 살리는 게 먼저였다. 일단 병원 진료부터 보자고 마음을 굳혔다.
“아기는 선천적으로 약하게 태어난 데다 젖도 제대로 못 먹은 것 같아요. 알약은 위험할 수 있어서 주사를 놓을게요.”
5 주령, 몸무게는 고작 320g. 이렇게 작은 아기는 진료실에서 조용히 의사 선생님 옆에 앉아 있었다. 울지도, 몸부림치지도 않았다. 그 모습이 기특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기는 두 주 분량의 항생제 주사를 맞았고, 야외에서의 자연 회복은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다.
진료를 마치자마자 SNS에 도움을 요청했다. 놀랍게도 곧 응답이 왔다. 작년 구조 때 함께했던 민영 씨가 연락을 주었고, 아기의 사정을 들은 지인이 임시 보호를 맡아줄 수 있다고 했다. 기적처럼, 연결이 이루어졌다.
우리는 사료와 습식을 챙겨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갔다. 희재 씨가 운전하고, 나는 아기를 품에 안고 있었다. 이동 내내 아기는 울지 않고, 조용히 내 품에 안긴 채 잠들어 있었다.
도착한 집에는 민영 씨가 먼저 와 있었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화장실과 모래를 챙겨 와 주었다.
갈 곳 없던 아기를 급히 맞아준 은서님은 마음만큼이나 예쁜 분이었다. 처음 만나는 언니의 품에 아기는 주저 없이 안겼다. 낯설지 않은 듯,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품처럼 온몸을 맡겼다.
마치—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자신은 언젠가, 엄마 품을 떠날 운명이었다는 걸.
그날, 제주에서 한 달 살이 중이던 나는 그 작은 생의 곁에 마음을 얹었다. 육지에서 온 사람이 섬에서 구조를 하고, 고양이가 가족을 만나기 전까지 머물 임시 보호처를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가족을 찾아주는 일은 그보다 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이 닿고 마음이 모이면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길이 천천히 열린다.
아침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하루 만에 이어진 이 연결은, 기적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따뜻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어미에게서 멀어진 작은 생명, 사람을 따라 꽃무늬 천 위로 걸어온 그 아이.
그 아기의 걸음과, 사람들의 마음이 맞닿은 순간 또 한 생명의 앞길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