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물고, 그녀는 다시 바위틈으로 갔다.

태풍 속 그녀의 세 번째 출산, 고양이는 나를 믿고 있었다.

by 할망

제주를 연이어 덮칠 두 개의 태풍 예보에, 섬은 긴장으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첫 번째 태풍은 전날 저녁부터 바람을 몰고 와, 밤새 창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잠들지 못한 밤, 불 꺼진 방 안에서 나는 자꾸만 방파제의 고양이들을 떠올렸다. 그 작고 여린 생명들은 과연 이 사나운 바람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하지만 아침이 되자, 거짓말처럼 바람은 잦아들고 섬은 잠시 고요를 되찾았다. 나는 서둘러 고양이들 먹일 식량 가방을 챙겨 들고 방파제로 향했다.

가장 먼저 고양이 식당, 급식소부터 확인했다. 전날 강풍에 대비해 사료통 위에 커다란 돌을 올려두었는데, 다행히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릇엔 빗물이 가득했고, 젖은 사료가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밤은 무사히 넘겼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세 군데 숨겨놓았던, 영양제를 섞은 습식 경단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 누군가는 그 밤을 견디며, 그것을 찾아 먹었다는 뜻이었다.

나는 급식소에 마른 사료와 물을 다시 채운 뒤, 카오스 어미와 아기 고양이들이 머무는 방파제 끝자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등대 아래, 검은 현무암 바위 위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어미의 입엔 큼직한 은빛 물고기가 매달려 있었다. 방금 낚인 듯한 그것은 아마 낚시꾼이 건넨 선물일 것이다.

낚시꾼의 통큰 선물을 물고 어미는 달린다.


그녀는 생선을 야무지게 문 채, 어제 아이들과 함께 숨어 있던 바위틈을 향해 걸어갔다. 작년 일곱 아기들을 품었던 바로 그 자리였다.

‘아이들은 무사할까?’ 조심스레 미끄러운 바위 위로 내려가며 속삭였다. “아가들, 언니 내려간다옹. 놀라지 말고, 가만히 있어 보라냥.”

낚시꾼이 건넨 커다란 선물을 입에 문 채, 어미는 바위를 넘는다.


바위틈을 들여다보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손바닥만 한 아기 고양이 둘이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숨어 있었다. 어제 어미 곁에서 본 아이들은 넉 달쯤 되어 보였는데, 이 작고 어린 생명들은 누구란 말인가. 곧 어미가 모습을 드러냈고, 이어 어제 보았던 삼색 아기까지 모습을 비췄다.

그제야 모든 게 맞춰졌다. 어미가 사라졌던 시간 동안 두 번의 출산을 했던 것이었다. 네 달 된 아이들과, 이제 막 한 달 남짓 된 새끼들을 함께, 이 좁고 어두운 바위틈 안에 품고 있었다.

바위틈은 바람과 비가 들이치면 수면이 바짝 차오를 만큼 아슬아슬했다. 안쪽엔 몸을 숨길 공간이 있었지만, 습기와 곰팡이가 스며들고, 바닷바람에 쉽게 병이 옮는 위험한 장소였다. 그런데도 어미는 또다시 그곳을 은신처로 삼았다. 두 번의 출산으로 낳은 아기들을 키워낸 그 자리에, 새로운 생명을 감싸 안고 있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곳이 얼마나 열악한지, 얼마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그렇지만 더 나은 곳이 없었다. 작년에도, 그리고 다시 또. 그녀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새 생명을 품고 있었다.

바위틈은 그녀에게 남겨진 단 하나의 선택지이자, 버티기 위한 마지막 공간이었다.

태풍 속 바위틈에서, 두 번의 생명을 품어낸 그녀


그 사실은, 아기들의 상태를 보고서야 온전히 이해됐다. 태풍의 한복판에서, 바람에도 흔들릴 듯한 작은 생명들은 그저 서로에게 몸을 기댄 채,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버티고 있었다. 새로 모습을 드러낸 아기들은 눈이 충혈되고 눈곱이 엉켜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했다. 바닷바람에 젖은 털이 떨렸고, 서로에게 꼭 붙어 미약한 온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어미가 왜 새벽부터 낚시꾼 곁을 맴돌며 물고기를 얻어 달려왔는지.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생존만이 남았고, 그녀는 또 한 번,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열 달 전, 나는 이 어미의 아이 셋을 구조해 갈라놓은 적이 있었다. 그중 한 아이는 별이 되었고, 두 아이는 입양을 갔다. 그때도 가슴이 아렸지만, 아이들은 두 달 된 아기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새끼들은 겨우 한 달 남짓, 어미의 품이 절실한 시기였다. 게다가 더 강한 태풍이 다가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지금보다 더 심한 비바람을, 이토록 연약한 아기들이 또 한 번 견딜 수 있을까. 바위틈을 내려다보며 나는 오랫동안 망설였다.

그때였다. 바위틈 밖으로 갈색 솜뭉치 같은 아기 고양이가 불쑥 튀어 올랐다. 아직 제 몸 하나 간신히 지탱할 정도인 아이가, 현무암 경사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어미는 놀란 듯 따라 올라왔다. 그녀는 아기를 지켜보며, 작은 몸으로 바위턱을 붙잡고 선 아이의 모습을 애틋하고도 대견하게 바라봤다.

바위틈 사이, 조심스레 올라온 아기 고양이


“눈만 치료하면,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작년에 구조한 어미의 아이들을 진료해 준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아기 고양이들이 너무 어려, 병원에 데려갔다가 어미가 돌보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래서 직접 데려가지 않고도 안약을 처방받을 수 있는지 조심스레 여쭈었다. 원칙상 어려운 요청이었지만, 원장님은 상황을 깊이 이해해 주시고 예외적으로 허락해 주셨다.

곧 책다방의 선영 씨와 ‘언니옷장’ 언니에게 연락했다. 두 분은 흔쾌히 안약을 병원에서 받아다 주시기로 했다. 사람 냄새가 배지 않도록 일회용 장갑도 함께 부탁했다.

그 사이 나는 준비한 맛있는 간식으로 어미의 마음을 달래려 애썼지만, 어미는 다시 낚시꾼이 있는 쪽으로 사라졌다. 마치, 아기를 나에게 맡긴 듯한 발걸음이었다.

남겨진 아기는 조심스럽게 바위를 딛고 나왔다. 부은 눈꺼풀 사이로 눈빛이 반짝였다. 천천히 깜빡이는 그 눈은 말 없이도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언니들이 곧 올 거야. 조금만 기다려줘, 아가.”

작은 몸으로 바위를 넘은 아기, 말 없는 인사를 건넨다


나는 아기의 시선을 흩뜨리지 않으려 숨소리조차 낮추며 자리에 머물렀다. 그러자 믿기 어렵게도 아기가 한 발짝, 또 한 발짝, 조심스레 내게 다가왔다. 눈 상태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바닷바람에 귀 끝이 떨리고, 삐죽 마른 몸엔 제대로 자라지 못한 솜털이 드문드문 서 있었다. 그럼에도 아기의 몸에는 살아 있으려는 의지가 분명히 깃들어 있었다. 45도로 꼿꼿이 들어 올린 꼬리만큼은 기특할 만큼 당찼다.

눈곱으로 가려진 세상 속에서도, 아기는 한 걸음씩 세상에 다가오려 했다


마침 언니들이 도착했다. 신기하게도 아기는 도망치지 않았다. 자신을 도우러 온 사람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챈 듯했다. 나는 원피스를 펼쳐 아기를 감쌌고, 아이는 아무런 힘도 주지 않은 채, 그대로 내 품에 안겼다.

준비해 둔 주식캔을 열어 코앞에 가져다 댔지만, 아기는 미동조차 없었다. 어미젖만 먹어왔던 데다, 허피스로 코가 막혀 냄새를 맡지 못하는 듯했다. 그때 언니들이 다가와, 아기의 입을 조심스럽게 벌려 주었다.

“먹어야 살아. 아— 해봐.”

한 점이 입속으로 들어갔고, 한 입, 또 한 입. 맛을 본 아기는 스스로 입을 벌려 받아먹기 시작했다.

바람결 위로 사람의 온기를 알아가는 아기


바위틈에 남은 또 한 마리 아기 고양이도 용기를 냈다. 살금살금 올라온 아이에게도 조심스레 안약을 넣고 먹을 것을 건넸다.

그렇게 우리는 바닷가의 한복판에서, 작은 생명이 조심스레 세상에 발을 내딛는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형제를 따라 용기를 낸 아기, 조심스레 세상의 빛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언니들은 생업 때문에 가게로 돌아갔고, 방파제 위엔 나와 아기들만 남았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기를 지켜보았다. 두 시간마다 넣어야 하는 안약이 마음에 걸렸다. 아이가 다시 바위틈으로 숨어버리면, 꺼내는 것조차 어려울 터였다. 그렇다고 어미 품에서 보호받아야 할 이 작은 생명을 억지로 품에 붙잡아 둘 수도 없었다.


먼저 올라온 아기는 내 치마 속을 드나들다, 어느새 치마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그 사이, 두 번째 아기는 조심스레 바위틈으로 돌아가 버렸다. 어미는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바람도, 햇살도, 품도 따뜻했던 낮잠 한때. 아기는 그 순간을 믿고 있었다.


따스한 햇살 아래, 고요한 파도 소리 속에서 아기는 내 품을 믿고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휴대폰만 한 몸집에, 아직 털옷조차 제대로 입지 못한 작고 쭉 뻗은 발. 잔잔한 숨결이 내 치마 위로 퍼져 나왔다. 이토록 연약한 존재가 나를 믿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 깊숙한 곳을 조용히 건드렸다.

그날, 작은 생명은 내 치마 위에서 세상을 믿고 잠들었다.


잠에서 깬 아기는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유모차에 탄 아기를 보더니, 그 곁을 따라 달렸다. 그 모습은 어쩐지 애틋했다. 어미는 먼저 태어난 아이들을 챙기느라 분주했고, 이 작은 아기에게는 엄마 품이 절실한 시기였다. 가느다란 다리로 달리는 그 모습이 작고 간절해서, 나는 좀처럼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유모차 그림자를 따라, 아기는 조심스레 온기를 좇았다.


어미는 낚시꾼 곁에서 먼저 태어난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 막내 아기가 방파제를 돌아다녀도 다가오지 않았다. 대신 멀리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이 무겁게 전해졌다.

그렇게 아기를 맡긴 채, 어미는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또 다른 먹이를 찾아 바다로 향했을 것이다. 그 뒷모습을 떠올리며, 마음 한편이 저려왔다.

낚싯대 너머, 어미는 묵묵히 아이들을 품고 있었다.


두 번째 안약을 넣어주고 나서야 어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다가, 아기 곁에 다가가 냄새를 맡고는 목덜미를 살며시 물었다. 그리고는 익숙한 걸음으로, 바위틈 속으로 아기를 데려갔다. 말은 없었지만, 그 눈빛이 말해주었다.

“잘 돌봐줬다옹. 이제 내가 맡겠다냥.”

마음 한켠의 조심스러운 걱정이 스르르 풀렸다. 어미는, 나를 믿고 있었던 것이다.


급식소로 돌아오니 맑음이가 사료를 먹고 있었다.

“맑음이 왔어?”

부르는 소리에 잠시 고개를 들더니, 다시 코를 박고 먹기 시작했다. 태풍 속에서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허겁지겁 그릇을 비웠다. 습식 위에 좋아하는 닭고기를 고명으로 얹어 주니, 더욱 기세 좋게 먹었다. 한참을 먹은 뒤, 맑음이는 내 곁을 한 바퀴 빙 돌며 엉덩이를 비볐다.

“우리 맑음이, 참 기특하다. 누나가 영양밥을 여기저기 숨겨 놓을 테니, 태풍 와도 꼭 잘 찾아 먹어야 해.”

낚싯대로 살짝 놀아준 뒤, 나는 조용히 인사했다.


“무사해야 해, 맑음아.”

첫 번째 태풍을 견딘 맑음이가 허기를 달랜다.


맑음이는 잠시 내 곁을 맴돌다, 다시 방파제 위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잔잔한 파도 소리 속에서, 다시 찾아온 평온을 그 작은 등 뒤로 흘려보내듯이.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바람은 잠들고, 햇살은 낮게 깔렸고, 마음은 어딘가 조용히 젖어들었다. 어미는 아기를 데려갔고, 나는 그들의 하루를 지켜보았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날은.


그리고 며칠 뒤, 더 거센 바람이 또 다른 생명을 우리 앞으로 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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