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엄마가 되어온 그녀

두 생명과 함께, 다시 방파제를 선택한 어미

by 할망

세상이 조용히 멈춘 듯하던 어느 날, 나는 한 달의 숨을 쉬러 제주로 떠났다. 이번에는 방파제 고양이들의 ‘식당’을 함께 운영해 온 계정 언니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언니는 책다방 선영 씨와 함께 방파제에 설치한 급식소를 돌보며, 고양이들에게 사료와 물을 챙겨주고 있었다. 덕분에 이번 제주살이는 한결 따뜻하고 안정적이었다. 그 집에는 월정리 인근에서 구조한 고양이 ‘밀이’도 함께 살고 있었다. 젖소 무늬를 가진 밀이는, 언니가 길에서 마주친 또 하나의 인연이었다.


제주는 늘 나의 숨구멍 같은 곳이었다. 짧게는 나흘, 길게는 보름을 머물며 고양이들을 만나고 돌아섰지만, 마음은 늘 그 섬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번 한 달은 더욱 특별했다. 방파제에서 정이 든 고양이 ‘맑음이’와 친구들의 안부를 챙기고, 반년 전 만났던 어미 고양이 ‘카오스’를 다시 찾아 중성화 수술을 도와주고 싶었다. 틈틈이 동네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며 공존하는 장소도 다닐 계획이었다.

한 달이라지만, 또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 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더 간절히 하루하루를 아끼고 싶었다.


제주에 도착한 그날, 태풍주의보가 내려졌다. ‘마이삭’과 ‘하이선’, 이름부터 거센 그 바람이 이 섬을 향해 오고 있었다. 바람이 오기 전, 하늘은 잠시 눈을 감은 듯 조용했고, 나는 그 짧은 틈을 따라 방파제로 향했다.

태풍보다 먼저, 나를 반겨준 건 다행히 고양이들이었다.


그리고 그 고요 속에서, 지난가을의 슬픔이 다시 떠올랐다.

비바람 속에서 새끼들을 감싸 안고, 생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던 어미 고양이들.

그 모든 시간을 묵묵히 견뎌낸 고양이들은, 이번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말없이, 그러나 단단하게.




한 달 살이의 첫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역시 방파제였다. “맑음이가 뚱땅뚱땅 달려와서 반겨주겠지. 한 달 전 다시 만난 카오스 어미와, 그때 찾지 못했던 아기 넷도 볼 수 있을까?” 기대와 설렘을 안고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에 다다르자, 돌기둥 사이로 맑음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맑음아, 누나 왔다옹.”

그 모습에 웃음이 터졌지만, 평소 같으면 먼저 달려와 부비부비를 하던 맑음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중성화 이후 사람 손을 타며 애교 많던 아이였는데, 한 달 사이 다시 거리를 두고 있었다.


고양이를 보면, 그동안 어떤 사람을 만나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누군가는 무심히 스쳐가지만, 어떤 이들은 굳이 불편한 티를 내고 간다. 그 시간들이 쌓여 고양이의 마음에 경계심이 생긴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는, 사람의 다정함으로만 회복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는다. 다정한 말투로 인사를 건네고, 거리를 둔 채 먹이를 건넨다. 그렇게 쌓인 기다림이 언젠가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피워낼 거라 믿는다.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부드럽게 맑음이에게 말을 건넸다.

“차 조심하고, 사람도 조심해.”

얼마 후, 맑음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바닥에 뒹굴었다. 마음이 조금 풀린 모양이다. 예전처럼 해맑은 맑음이를 되찾아주겠다는 작은 목표가 생겼다.

방파제 기둥 틈 사이로, 조심스레 마음을 내미는 맑음이


등대 앞으로 걸어가니 낚시꾼이 보였고, 그 아래 갈색 털 고양이 형체가 어른거렸다. 다가가 보니, 사라진 카오스 어미였다. 언니들은 여전히 어미를 보지 못했다고 했지만, 또다시 어미는 내 눈앞에 먼저 나타났다. 반년 만에 마주했던 그 순간처럼, 이번에도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세상과 멀어진 채 잠시 사라졌다가 문득 돌아온 영혼처럼.


어미는 이번엔 멀찍이 떨어진 자리가 아니라, 낚시꾼 바로 옆까지 다가가 있었다. 낚시꾼을 올려다보던 어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해 보였다. 어미를 꼭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믿고 왔지만, 막상 눈앞에 마주하니 미안함과 그리움이 뒤엉켜 말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혼자였고, 남은 네 마리 아기고양이들의 안부는 알 수 없었다.

잔잔한 파도 소리 사이로, 어미의 마음이 낚싯대 끝을 붙든다


나는 그녀 곁에 앉아, 마음을 보탰다. 낚싯대를 향해 간절히 시선을 두고 있는 어미의 옆에서, 말없는 응원으로 함께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림이 길어졌다. 바다는 여전히 잠잠했고, 낚싯대 끝도 꿈쩍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가방에서 조심스레 특식 캔을 꺼냈다. 그녀의 지친 배를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다.


바로 그때였다. 캔을 따려는 순간, 왼편에서 느껴진 미묘한 기척. 고양이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깊어지다 보니, 이제는 ‘고양이 와이파이’라도 생긴 듯, 그 신호를 본능처럼 알아챘다. 고개를 돌리자, 방파제 난간 너머에서 조심스레 고개를 내민 꼬맹이. 이내 한 마리 더, 앞발을 난간에 가지런히 얹고 두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우리 몫도 챙겨 왔지?” 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방파제에서 처음으로 포착된 두 번째 출산 아기 고양이들


태어난 지 넉 달쯤 되어 보이는 아기들은 카오스 어미의 새끼들이었다. 지난달 어미를 스치듯 만났을 때 젖이 불어 있었는데, 사라졌던 시간 동안 이 아기들을 낳고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과 어미에게 습식캔과 사료를 건네고, 마따따비도 선물했다. 낚싯대를 바라보던 간절한 눈빛은, 단순한 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지난달 급식소가 마련된 덕분에, 이제는 낚시꾼에 기대어 살지 않아도 되었지만, 어미는 여전히 자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새끼들에게 먹이활동을 가르치고 있었다.

“잘 보고 배워야 해.” 어미의 먹이 구하기 실전 수업


오후가 되자 어미는 또 다른 낚시꾼 곁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은신처에서 낮잠을 잘 만도 한데, 마치 아저씨의 무료한 시간을 함께 견디기라도 하듯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대운이 찾아왔는지 아저씨는 큼직한 물고기를 낚았다. 그 순간, 눈이 반짝인 어미를 향해 아저씨는 미소를 지으며 물고기를 내밀었다. 어미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입에 물더니, 단숨에 아이들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작고 여윈 입으로도 그 커다란 생선을 야무지게 챙겼다. 그녀는 이번에도 자신의 허기보다, 아이들의 배를 먼저 채우고 있었다.

물고기를 입에 문 채, 아이들에게 달려가는 어미의 발걸음


어미와 아이들이 머무는 곳은 예전 일곱 마리 새끼들이 살던 바위틈이었다. 가슴 아픈 기억이 남아 있는 그 자리. 그 해, 어미의 품에 안겨 있던 일곱 아기 중 단 세 마리만이 구조될 수 있었다. 그중 두 아이는 무사히 입양되었고, 한 아이는 끝내 별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났다. 남은 넷의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또 다른 어미의 바위틈 아래에는 구조의 손길조차 닿지 못한 작은 생명 하나가, 조용히 바다로 떠나갔었다.


이번에 다시 엄마가 된 어미 곁에는 두 아기가 있었지만, 그 사이 떠난 아이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은 두 아이가 건강히 자라 성묘가 되기를, 방파제의 바람 속에서도 당당히 살아가길 바라게 된다. 그리고 한 달 전, 우리가 만든 고양이 식당이 이들에게 작은 힘이 되어주었기를.

“언니가 급식소에 영양밥 가져다줄 테니, 낚시꾼 기다리지 말고 와서 먹어. 어미야, 이번엔 꼭 중성화 수술받자.”

작은 바람처럼, 그 마음이 고요히 그녀에게 닿기를 바랐다.


작년에도 수술을 해주려 했지만, 어미는 어느 날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다시 임신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번이 꼭 필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강한 태풍이 예고되어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들에게는 생애 첫 태풍. 어미의 품이 절실했고, 수술 후 회복을 위해서도 날씨가 잠잠해지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태풍이 지나가면, 꼭 병원으로 데려가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은신처에서 다시 살아가는 모녀


태풍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엔 제발, 그 누구도 데려가지 않기를.

나는 그 바람을 조용히 하늘에 띄웠다.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이, 구름 사이로 번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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