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고양이 밥 좀 주고 싶었을 뿐인데요…

해녀들과의 설득, 그리고 방파제에 생긴 작은 기적

by 할망

그날 아침, 방파제 끝자락에 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등대 아래, 낚싯꾼 뒤에 조용히 앉은 고양이 한 마리. 반년 넘게 애타게 찾아 헤맸던 바로 그 어미였다.

반년 만의 재회, 어미는 여전히 바다 곁에 있었다.


그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묵묵히 앉아 있었고, 나는 그녀의 부풀어오른 젖을 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아이들은… 어디에 있냐옹?”

그 짧은 재회 이후, 나는 다시 육지로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그 순간이, 방파제에 작은 ‘식당’을 만들게 된 시작이었다.




책다방과 언니옷장 언니들에게 어미 소식을 전했지만, 두 분은 아직 어미를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다른 고양이랑 헷갈린 건 아닐까?”

라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확신했다. 지난가을, 어미와 일곱 아기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내 기억 속엔 한 장의 사진처럼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언니들은 6개월 넘게 매일 방파제를 들렀는데도 어미를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다며, 내가 우연히 만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그 시기, 방파제에 고정된 밥자리가 없었다. 언니들이 들르는 시간대에 나와 있던 고양이들에게만 밥을 줄 수 있었다. 맑음이, 삼순이, 삼색이가 늘 보이던 얼굴이었고, 한 두 아이들이 가끔 더 보일 뿐이었다. 날씨가 궂으면 그마저도 볼 수 없는 날이 있었다.

언제든 와서 먹을 수 있는 ‘정식 식당’ 같은 급식소가 필요했다. 하지만 한때 마을에 뿌려진 약으로 인해 고양이들이 집단으로 희생된 사건 이후, 괜한 미움을 사서 또다시 비극이 벌어질까 봐 쉽게 설치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고민만 깊어가던 어느 날, 유기동물을 위한 후원 활동을 이어가는 '프랜들리핸즈'에서 고양이 급식소를 무료로 나눔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와 눈을 막을 수 있는 나무 구조, 자원봉사자들의 손으로 정성껏 만든 따뜻한 급식소였다.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되겠다 싶어, 나는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


그리고 곧장 책다방 선영씨에게 연락했다.
“마을에서 급식소 설치 허락을 받을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더니, 선영씨는 망설임 없이 곧장 리사무소로 향했다. 방파제 앞 건물이 어촌계 소유라는 설명을 들은 뒤엔 어촌계장님을 찾아갔다. 마침 그날은 해녀분들이 물질 나가는 날이었다. 계장님은 선영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해녀분들 허락부터 받으민 좋을 거여. 나 혼자 결정허는 건 좀 어려우쿠다.”


계장님을 따라간 자리엔 삼십여 명의 해녀 어르신들이 모여 있었다. 선영씨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곳 방파제 고양이들이 사료를 먹을 수 있는, 작은 급식소를 하나 설치하고 싶어요.”


예상했던 것처럼, 처음엔 반대의 목소리가 컸다.
“고냥 밥 줘보코 나면, 고냥이 천지 돼불잖아.”
“요새 새끼 고냥이들이 무신 많은지 몰라. 어멍 고냥이 또 새끼 낳을 거 아니가.”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면 자꾸 개체 수가 늘고, 새끼가 계속 생긴다는 우려였다. 몇몇 해녀분들은 별다른 관심 없이 물질 준비에 여념이었고, 대체로 표정은 어두웠다.

그러나 선영씨는 흔들리지 않고 조곤조곤 설명을 이어갔다.
“마을에 고양이들이 있어서 쥐가 안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얼마 전엔 고양이들 중성화 수술도 진행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중성화를 하려면, 정해진 밥자리가 있어야 포획이 가능해요.”

그 말을 듣고, 몇몇 고양이를 좋아하는 어르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맞는 말이주.”
반대하던 분들도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래도 밥 주는 데는 깨끗이 해야 헌디. 지저분허면 안 돼.”

KakaoTalk_20250705_182256944.jpg 고양이 밥자리를 허락받기 위해, 선영씨가 해녀 어르신들 앞에 선 날


그날 선영씨는 서른 명이 되는 해녀 어르신들 앞에서 하나하나 설명하고, 설득하고, 약속을 했다.
“밥자리 주변은 늘 깨끗하게 정리하겠습니다. 고양이들도 더는 늘어나지 않게, 중성화도 꾸준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방파제에 고양이들의 ‘식당’이 생겼다.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과 무심한 표정 사이에서 담대하게 입을 연 선영씨를 보며, 문득 생각했다.

나였다면, 그 많은 어르신들 앞에서 떨지 않고 내 마음을 또렷하게 전할 수 있었을까.

방파제에 고양이 급식소를 들이는 일은 오래전부터 내 마음속에 자리한 바람이었다. 그 뜻에 공감하며, 육지에 있는 나보다 먼저 어르신들을 찾아가 정성껏 설득해준 선영씨의 용기와 마음이 참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이제는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배가 고픈 고양이들은 더 이상 기다릴 필요 없이 급식소를 찾아올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다가오던 아이들도, 어느새 자연스레 들렀다 가는 이곳. 방파제는 한결 더 평온한 공간이 되었다.

설득과 기다림 끝에, 드디어 방파제에 고양이 식당이 열렸다.


이건 단순히 고양이 밥자리를 하나 만든 일이 아니었다. 약물 사건으로 많은 생명이 스러진 이 마을에서, 작은 급식소 하나는 ‘혁명’이었다. 수많은 손길과 마음들이 포개진 결실이었고, 고양이들을 향한 연민과 책임의 총합이었다.


8개월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가 떠올랐다. 방파제 위에서 시위라도 하듯 모여 낮잠을 즐기던 고양이들. 그땐 그저, 많은 고양이를 만나 반가웠고 한 끼를 푸짐하게 대접한 일로 마음이 뿌듯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점차 궁금해졌다. 이 아이들이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디서 잠을 자고 무엇을 기다리는지.

바위틈을 은신처 삼아 낚싯꾼을 기다리는 모습은 처연했고, 고양이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정작 밥 한 끼 맘 편히 먹을 곳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무렵 들려온 약 살포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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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방파제 고양이들, 그 평온함 뒤에 숨겨진 생존의 질문


기상이 악화된 어느 날, 바닷물이 넘실대는 바위 위에서 아기 고양이들을 구조한 기억도 떠오른다. 그 뒤로 제주 동물단체에 연락해 방파제 고양이들의 삶을 알렸고, 급식소 설치와 마을 인식 개선을 부탁드렸다. 하지만 기다림이 길어지던 어느 날, 고마운 손길이 먼저 다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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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에 젖은 바위 틈, 생과 사의 경계에서 마주한 아기 고양이들


서울에 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엔 분명한 한계가 있었지만, 책다방 선영씨와 언니옷장 사장님은 매일 이곳 고양이들의 밥을 챙기고, TNR을 하고, 이제는 마침내 정식 밥자리까지 허락받아냈다. 그들의 용기와 수고가 이어준 연대는 감동을 넘어, 생명을 위한 조용한 혁명이었다.

어미와 아이들, 사라진 생명들, 그리고 남아 있는 이들의 삶이 더는 고요히 스러지지 않기를.
그 바람을 담아 우리는 작은 식당 하나를 세웠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날에도 그 밥자리에 놓인 사료 한 줌이 이 섬의 생명들을 지켜줄 거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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