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해맑아서 마음이 아픈 고양이

사라진 어미를 기다리며, 그 자리에 남은 고양이들과 다시 걷는다

by 할망

제주에 올 때마다 여러 마을의 고양이들을 찾아다녔지만, 언젠가부터 마음은 늘 방파제에 머물렀다. 그곳엔 ‘맑음이’가 있었다. 작고 순한 눈매, 해맑은 성격. 부르면 짧은 다리로 통통 뛰듯 걸어와 내 앞에 멈춰서는 그 아이는 마치 세상의 슬픔쯤은 모른다는 듯, 맑고 순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사라진 일곱 아기의 가족은 아니지만, 같은 방파제에서 태어나 그 삶을 함께 견뎌낸 맑음이. 그는 여전히, 이곳을 지키며 남겨진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장난감을 쫓아 노는 모습이, 너무 해맑아서 마음이 아팠다. 그 웃음을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다시 나는 방파제를 돌기 시작했다.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고, 파도에 젖은 바위틈 사이에서 일곱 마리의 아기 고양이를 품고 살아가던 어미,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등대 아래에서 또 다른 새끼들을 돌보던 두 어미 고양이 가족. 그 고군분투의 풍경을 처음 마주한 날 이후, 방파제는 더 이상 스쳐 지나는 여행지가 아니었다. 아침저녁으로 안부가 궁금해지는, 마음 깊은 곳에 자리를 잡은 존재가 되었다.

해풍을 견디며 이곳을 살아낸 고양이들, 그들이 있어 방파제는 더 이상 여행지가 아니다.


제주에 머무는 동안에는 하루에 한 번씩 꼭 방파제를 들러, 그날의 바람과 함께 고양이들의 안부를 살폈다. 그러다 구조한 아기들의 어미가, 남은 새끼들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아픈 아기들을 그 자리에 더 둘 수 없어 선택한 일이었지만, 자식이 하나둘 사라진 자리에서 남은 생명들을 품고 떠났을 그 마음을 감히 다 헤아릴 수 없었다. 매일같이 어미에게 마음이 쓰였고, 그들의 소식이 들려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부디 어딘가에서 무사히, 아기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기를. 언젠가 다시 마주할 수 있기를.


고통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 무렵부터 고양이들이 짝을 이루어 다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또다시 바위틈 어딘가에서 출산이 이루어지고, 어린 생명들이 위험 속에 놓이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되었다. 방파제는 언뜻 평화로워 보이지만, 어린 고양이들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한 환경이었다. 바위 사이로 밀려드는 파도, 급격한 온도 변화, 그리고 사람 손이 쉽게 닿지 않는 은신처들. 실제로 구조했던 아기들 대부분은 허피스를 앓았고, 젖은 몸으로 발견되거나 눈이 붓고, 곰팡이와 벼룩 등 전염성 질환으로 고통받으며 긴 치료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런 아이들을 다시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움직여야 했다. 도움을 주겠다는 단체의 연락을 기다리기엔 상황이 아슬아슬하게 흘러갔다. 나는 고양이들의 끼니를 챙겨주던 책다방과 언니옷장 사장님들과 상의했고, 마침내 강추위가 물러난 2월, 직접 중성화를 추진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처음에는 내가 제주로 다시 내려가 함께할 계획이었지만, 두 분은 “이번엔 우리끼리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며 의지를 보였고, 나는 신뢰와 응원의 마음으로 발걸음을 미뤘다.


그렇게 시작된 중성화 작업은 제주의 TNR(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을 통해 진행되었다. 방파제는 급식소가 없어서 고양이들이 일정 시간대에 모이지 않는 데다, 낚시꾼이나 관광객이 주는 먹이로는 포획틀 유인이 어려웠다. 사람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하고, 고양이들의 생활 루틴에 맞춰 포획 시점을 조정하는 섬세한 수고가 이어졌다. 3일의 시도 끝에, 맑음이와 암컷 자매 두 마리, 그리고 등대 아래에서 새끼를 돌보던 삼색 어미와 수컷 한 마리까지 총 다섯 마리를 병원에 보낼 수 있었다.

파도 소리 너머, 작은 생명을 지키기 위한 첫걸음.


예상과 달리 맑음이는 마지막까지 포획틀에 들어가지 않아, 유튜브 영상으로 포획 방법을 찾아 연구하며 시도한 끝에 겨우 병원에 갈 수 있었다. 순한 아이일수록 경계심이 깊을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맑음이는 눈 진료도 함께 받았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고양이들 대부분이 바닷가 생활의 영향인지 눈곱이 자주 끼고 충혈이 심한 경우가 많은데, 맑음이는 어릴 때부터 유독 증상이 심했다. 사비를 들이더라도 치료 방향을 알고 싶어 병원에 부탁드렸고, 진단 결과는 안타까웠다. 선천적으로 눈이 약한 데다, 바닷바람과 큰 일교차까지 겹쳐 상태가 쉽게 호전되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다만 증상이 심해질 때마다 안약을 넣어주고, 면역력을 잘 관리해 주는 것 외에는 뚜렷한 치료 방법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끝내 포획틀에 들어간 맑음이, 수술 뒤엔 다시 맑고 해맑은 눈빛으로


결국 일곱 아기의 어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아 중성화 수술을 할 수 없었지만, 삼색 어미 삼순이와 암컷 둘이 수술을 받아준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시급했던 암컷들을 먼저 수술시키고 싶었던 바람이 조금은 전해진 듯해, 마음 한켠이 놓였다. 아직 수술받지 못한 고양이들을 위해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해맑은 친구와의 수색


중성화 신청은 두 분 모두 처음 경험이었지만, 경험 많은 오묘한 집사님이 직접 포획틀을 챙겨 함께해 주신 덕분에 모든 과정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이후 방파제는 고양이들의 영역 싸움도 줄고 한동안 조용해졌다. 날이 풀리며 기온이 오르고, 고양이들의 성격도 한결 느긋해졌다. 수술을 마친 고양이들은 살이 오르고,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서서히 옅어졌다.


한 달 전에도 다녀왔지만, 여전히 사라진 어미와 아기들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아, 여름이 오기 전 아이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날의 하늘은 유난히 청명했고, 바람은 살짝 따뜻해져 있었다. 해안 곳곳엔 낚싯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방파제 위엔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맑음이는 여느 때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맑음아— 누나 왔다옹!"

내가 부르자, 강아지처럼 뚱땅뚱땅 발을 굴리며 해맑게 달려왔다. 여전히 눈은 시원하게 뜨기 어려웠지만, 반가움만큼은 누구보다도 선명했다. 그 뒤로 백야와 삼순이도 나타나 “언니, 우리도 왔다옹!” 하듯 인사를 건넸다. 함께 수술을 받은, 이른바 ‘TNR 동기들’이었다.

아이들은 더욱 건강해 보였다. 귀 끝이 잘린 모습은 속상하기도 했지만 국가가 시행한 TNR 수술의 표시였고, 그 모습이 오히려 늠름해 보였다. 마치 한 번의 커다란 삶의 전환을 겪고 다시 자신만의 리듬을 찾은 생명들처럼, 봄날의 햇살 속에서 아이들은 차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실루엣, 방파제의 수호자 맑음이


나는 다시 방파제의 망부석이 되었다. 사라진 카오스 어미와 아기들의 흔적을 좇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 방파제를 돌고 또 돌았다. 그 곁을 맑음이가 함께 해주었다. 청소년기 즈음의 맑음이는 이름처럼 순하고 해맑은 아이였다. 부르지 않아도 곁을 졸졸 따랐고, 낚싯대 장난감이라도 손에 들면 당장 서울까지 따라올 기세였다. 덕분에 지루할 틈 없는 수색이었다.


영화 『고양이와 할아버지』 속에서 타마가 할아버지를 따라 산책하던 장면처럼, 바닷바람 부는 방파제 위를 나란히 걷는 지금 이 순간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언젠가 조용한 마을에서 고양이들과 살아가는 것이 꿈이지만, 지금 이렇게 함께 걷는 시간이 그 꿈을 미리 살아보는 기분이었다.

꿈속을 걷듯, 방파제 위 맑음이와의 한 장면


방파제의 두 무리


방파제에는 두 개의 주요 낚시 포인트가 있다. 하나는 입구 바다 앞, 다른 하나는 끝자락 등대 아래. 입구 쪽은 차량을 세우고 캠핑 의자와 테이블을 펼쳐 놓은 이들이 회를 즐기며 여유를 만끽하는 자리이고, 등대 아래는 고요하게 집중하는 베테랑 낚시꾼들의 공간이다.

입구 쪽에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적은 맑음이와 백야가 머문다. 이들은 의자 사이를 오가며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회나 간식거리를 얻어먹으며 낭만적인 저녁을 함께한다.

회를 좋아하는 맑음이와 백야, 관광객 테이블을 지키는 방파제의 애교왕들


반면 등대 아래는 ‘날생선파’ 고양이들의 영역이다. 낚싯대에서 갓 올라온 물고기만을 기다리는 삼순이와 삼색이는 고기 한 점을 얻기 위해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아기들과 함께 사라진 카오스 어미와 달리, 삼순이는 줄곧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아기 하나는 바닷물에 젖은 채 발견돼 별이 되었고, 또 다른 아기는 끝내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두 아이를 떠나보내고, 중성화 수술까지 마친 삼순이는 이제 엄마가 아닌, 두 살 청춘의 시절을 살아가고 있다.

예전보다 한결 다정해진 그녀는 다가와 박치기를 하고, 내 치마 위에 올라타 “나랑 놀자옹.” 하듯 몸을 부비며 친근함을 표현했다. 사람 곁에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듯한 얼굴이었다.

등대 아래 산실을 마련했던 바다는 자유로운 삶을 누린다.


맑음이와 형제로 보이는 삼색이는 성묘가 되기 전, 아직 어린 시절에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 어미가 되는 일은 겪지 못했지만, 그래서인지 고단한 모성 대신 매일을 먹고 자고 놀며 살아가는 그 모습은 더없이 해맑고 천진해 보였다.

낚시꾼의 선물 앞에서 가장 먼저 눈빛이 반짝이는 고양이, 삼색이


물빛이 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저녁, 노을 아래서 맑음이와 장난감을 사이에 두고 한참을 웃었다. 망부석처럼 무겁던 마음도, 파도처럼 밀려들던 걱정도 잠시 잊은 채였다. 어느새 발밑에 비친 해 그림자 속으로 맑음이의 그림자가 살랑이고, 그날의 노을은 맑음이의 장난기 덕분에 더 오래도록 내 마음에 머물렀다.

노을을 따라 놀고, 바닷가를 뒹굴며, 하루를 해맑게 살아가는 고양이


육지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방파제.

그곳에, 오래도록 그리워하던 그림자가 있었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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