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소비와 아이묭
최근 요아소비라는 일본 밴드를 알게 됐다. 여자 보컬 '이쿠라'와 그 외 1명. 일본 노래라고는 옛날 엔까만 있는 줄 알았더니, 요즘 일본 노래도 K-POP 못지않게 맛이 참 좋다.
요아소비를 필두로 유튜브 알고리즘은 나를 일본 가요의 세계로 초대했다. 두 번째로 알게 된 가수는 아이묭. 그녀는 마치 옛날 포크 가수처럼 홀로 통기타를 멘 채 무대를 장악한다. 일본 가수의 가창력은 덧니에서 나온다는 데 그녀는 덧니 없이도 좌중을 압도할 가창력을 지녔다. 어디서 그런 노래 주머니가 샘솟는지 오금이 저려올 정도로 강인하고 섬세하다. 마치 자우림의 김윤아가 일본에서 다시 태어난 것 같다.
금월 들어 나는 거의 매일 요아소비와 아이묭의 노래를 하루 한 번씩 마치 한 잔의 커피를 마시듯 주르륵주르륵 내리 즐긴다. 들으면 들을수록 새로운 트랙이 눈에 보이고, 독해가 안되던 가사도 자막과 함께 보니 마치 모국어인 듯 씹고 뜯고 맛보게 된다.
특히 차가 막히거나 신호를 기다릴 때 종종 엠카운트다운에 출연한 요아소비의 직캠을 관람하곤 하는데, 그녀의 퍼포먼스가 정말 앙증 맞고 깜찍하여 정말이지 반복 재생을 무한히 누르지 아니하지 않게 만든다."아이시떼루"하며 볼하트를 하는 대목이라든지, "이야이야"하며 손날을 거수경례 모양으로 까딱까딱하는 율동, 마지막에 "감사하무니다"라며 어눌한 한국어 인사를 하는 대목은 정말이지 그녀를 사랑하지 아니하지 않게 만든다.
그런 날이 지속되던 어느 날 나는 문득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일본 여자와 결혼을 해야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거즘 6년의 시간을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수학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히라가나조차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역시 반복 숙달 작업을 거치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는 건지, 성인이 된 이후로 일본어를 갈고닦지 않음으로써 생긴 비애다.
그래, 망상은 망상으로 끝내야지. 외국어를 처음부터 다시 익힌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 여자와는 결혼하지 말아야 겠다.
이렇게 일본 가요에 심취해 있다 보니 어느새 내 주변 취미의 영역 전반이 왜색에 잠식돼있음을 느낀다. 내 평소 취미는 닌텐도 게임,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 가장 좋아하는 만화도 드래곤볼, 슬램덩크, 원피스. 하루도 일제의 문화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애국자였던 내가 어찌 이리 변절한 것인지. 일제강점기 때 태어났으면 을사오적에 내 이름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는 말을 남긴 백범 김구 선생의 말씀이 참으로 와닿는 순간이다. 문화는 서서히 우리 생활에 침투해 그 전반을 물들인다.
노재팬, 노재팬 하면서도 닌텐도 동물의 숲은 품귀 현상을 빚고,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한국 흥행 순위 2위에 오르는 등 그 이율배반과 모순성에 씁쓸한 뒷맛이 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화의 단절이나 수용을 강요하거나 타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국문과 출신인 나조차도 왜색에 젖어 일제 문화를 향유하고 있으니 그 문화의 힘이 실로 두려우면서도 경탄을 금할 길이 없다.
어서 우리에게도 강력한 K의 힘으로 전 세계를 호령할 K-문화가 생기길 염원할 뿐. 우리에겐 기생충과 봉준호가 있고, 손흥민과 이강인이 있으며, BTS와 블랙핑크, 뉴진스가 있다. 벌써 대한민국은 전 세계인을 K의 깊은 김치향에 푹 절여 놓을 수 있는 K만의 뽕을 점점 뿌리내리고 있다. K-POP과 K-MOVIE, K-SPORTS의 힘으로 KKK 삼위일체 하여 앞으로 정진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