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말조각

by 허건

말들을 조각내어 눈송이에 담았다

살결에 닿는 촉촉함으로 서로를 기억하겠지


시간은 밉게도 조금씩 흘러

함께 걷던 이 길을 혼자 걸을 때


여기에 하나, 저기에도 하나

발자국에 새까매져 아직까지 녹지 못한 눈

미련처럼 남아있는 단어들


얼어버린 길 위에서

눈에 박힌 말들이 떠나간다


봄이 오면 그 속을 파낼 거야

사라진 언어를 이해하려고


어느 게 좋다고 할 수 없이

바람에 남은 대화의 흔적들

휘휘 저어 말조각을 그러모은다


바람에 넘어져도 앞으로 나아가야지

도미노처럼 우리는

서로를 이불처럼 반쯤 덮은 채


귓속말로 느껴지던 체온처럼

봄이 오길 기다리지

다음 사람을 위해

봄이슬에 다시 말조각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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