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만에 다시 이어 쓰기
일 년 만입니다.
엄마의 일기를 다시 이어 쓰려 오랜만에 들어왔어요.
마무리되지 못하고 길어지는 이 기록의 과정은
감히 엄마의 일기를 다 정리하면 엄마와의 추억이 사라질까 싶어 아껴보는 마음도 있고요.
엄마를 잊고 지낼 만큼 회사와 아이들 키우는 일에 바쁘고 말아 마무리 못하던 저의 게으름이기도 합니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일이었죠.
그러다 영원할 것 같았던 추위가 가시고 따듯한 봄이 찾아온 것처럼 오래간만에 휴식이 찾아왔습니다.
조금씩 엄마를 추억하며 다시 엄마랑 지나간 연애를 해보렵니다.
마침 엄마가 돌아가신 4월이 찾아왔네요.
따듯한 봄날, 꽃이 만발했던 그 풍경 때문인지 엄마가 가신 이 달은 신기하게도 아프기만 하지 않고
엄마처럼 예쁘게 남아있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봐주러 오시기 전부터 걱정했던 건
엄마가 아이를 봐주시며 체력적으로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거였어요.
하지만 엄마의 일기장에 쓰여 있는 글처럼 엄마는 오히려 아이를 보시고,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삶의 의미를 느끼고, 존재의 이유를 찾고, 아이에게서 오는 살아나는 에너지로 힘을 얻고 계셨던 것 같아요.
"딸, 혹시나 엄마가 나중에 더 안 좋아지게 되어도 그게 너희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말아 주렴.
엄마는 이 시간을 오랫동안 기다렸어. 너희랑 함께 지내고, 우리 손주 보는 시간이 오기를 말이야.
이 시간이 없었다면 엄마는 더 빨리 지쳐가고 힘들어졌을 거야.
그러니 이 고마운 시간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걱정하지 말고 엄마에게 맡겨줘. 알겠지?"
운이 좋게도 엄마는 그동안 표적항암제를 써오며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항암치료를 이어오고 계셨어요.
하지만 좋은 약도 몸에서 탐구가 끝나면 더 이상 지지 않으려고 내성을 일으키고 마네요.
그렇게 다시 독하디 독한 화학 항암제로 돌아와야 했던 엄마는 정신을 차리기 힘드실 만큼 고된 시간을 겪어내셔야 했습니다.
날짜도 없이 간신히 힘을 내어 일기장을 이어오신 것만 보아도 얼마나 단단하고 강한 엄마가 힘드셨을지 느껴집니다.
이 시기에 엄마는 하루가 다르게 빠지는 머리카락을 아침마다 베개에서 정리하셨고,
고춧가루 하나라도 들어가면 목구멍까지 아려오는 통증에 매운 것을 일체 드실 수 없었어요.
개운하게 김치라도 드시고 싶으셨을 텐데 밍밍하고 안 매운 음식들을 먹어야 겨우 삼킬 수 있었던 엄마는
엄마를 버티게 해 주던 식욕도 조금씩 잃어가셨죠.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감사하다는 말을 놓치지 않으셨던 엄마!
이날은 아이의 첫 세례식이 있던 날이었어요.
저의 조부모님부터 이어온 신앙의 유산을 엄마에게도 이어받아 아이에게로 전해지는 순간은
참으로 감동이었습니다.
이렇게 은혜가운데 신앙의 대물림이 되는 순간을 엄마와 함께 볼 수 있어서 저도 감사했지요.
아이의 세례식 이후 엄마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시며 축하해 주셨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갑자기 서로를 떠나야 하는 날이 오겠지만
이제 우리는 다시 만날 거라는 믿음으로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는 연결고리가 생겼으니
더없이 기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 작은 아이를 보기만 해도 입가에 웃음이 번지시던 엄마와 아빠.
이렇게 작았던 딸이 또 이렇게 작은 아이를 키우는 걸 보시며 지난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리시며
이야기를 읊어주시던 엄마.
가끔 엄마가 보고 싶은 날은 바로 내 아이를 키우며 "내가 요맘때는 어땠어?"하고 물을 수 없는 순간이에요.
나도 이렇게 사랑스러웠는지, 나는 이럴 때 이 아이처럼 까탈스럽게 굴었는지...
내가 지금 이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건지 묻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엄마가 해주던 그 기억을 떠올려 아이에게 전해 보기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