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일기 정리 프로젝트, 열둘

자나 깨나 손주 생각, 자나 깨나 손주 사랑

by hummingham
엄마의 일기 정리 프로젝트, 열둘


4월도 어느덧 마지막날을 향해가고 있네요.

5월의 황금연휴가 다가오면 제주도나 해외로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저는 마음은 굴뚝같지만 5월에는 가족의 달로 굵직한 지출이 많아 조금만 참아보려고 합니다.


엄마의 일기장 속 이번 페이지에는 처음으로 대만으로 여행을 가셨던 엄마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교회에서 부부동반으로 가시게 된 대만여행.

그동안 항암치료로 장거리 여행이나 해외여행은 마음먹지 못하고 미루셨는데,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컨디션으로 기분 좋게 여행을 다녀오신 엄마의 일기에 저도 마음이 좋습니다.

이렇게라도 좋은 경험을 하셨다는 게... 지나고 나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 2월 16일~19일 엄마의 일기


2월 16~19일 일기.JPG

친정아빠랑 함께 대만여행을 즐겁게 다녀오신 엄마는 다녀오신 이야기를 즐겁게 풀어내셨습니다.

저는 대만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엄마의 이야기 덕분에 높은 타워가 있다는 것도 알고, 주스가 맛있었다는 것도 알고, 사 오신 파인애플맛 과자와 밀크티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엄마가 건강에 좋다고 사 오신 옥팔찌도 있지만...... 서랍에 잘 보관 중입니다.


여행 중에도 내내 손주 생각에 휴대폰을 꺼내보셨던 엄마.

손주 자랑하면 만원씩 내는 거라고 하셨다는데 같이 간 권사님들께 자랑을 하고 만 엄마.

손주가 외할머니 떨어져 잘 지낼까 걱정 아닌 걱정을 하셨던 엄마.

그 작은 아이에게 줄 선물을 찾느라 평소에 잘 쓰지 않으셨던 영어를 용기 있게 꺼내어 대화를 시도하신 엄마.

숨이 턱에 차도록 뛰어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안도하셨을 엄마.


"영거 베이비(younger baby) 딸랑딸랑(몸짓) 토이(Toy)"


이 딸이 생각해도 참 웃기네요ㅎㅎㅎ

"어린 아기용 장난감 어딨 나요? 손에 쥐고 흔들만한 그런 어린 아기용이요"

이 말씀을 하고 싶으셨겠지요?


엄마!

고마워......




2. 2월 23일 월요일 엄마의 일기


2월 23일 일기.JPG


아이가 이유식을 먹게 될 날을 기다리며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시기에 맞게 잘 먹으면서 맞지 않는 음식들을 가려내기도 하고, 골고루 접하게 해주어야 했기에 열심히 아이를 위한 이유식 식단표를 짰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엄마는 기특해하셨습니다.

일하랴 아이 보랴 이유식까지 해먹이랴 동분서주하는 딸을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엄마가 바로 친정엄마가 저에게 그렇게 해주셨던 거였습니다.

매일 지니처럼 먹고 싶다고 말만 하면 고구마맛탕, 피자, 김치찌개, 두부조림, 수제 햄버거 등등 맛있는 음식들을 해주셨던 엄마.

잘 먹는 우리 남매 때문에 요리하는 게 즐거우셨다는 엄마지만, 저희는 엄마가 해주신 맛있는 음식들 덕분에 자라는 동안 크게 아프지도 않고,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고 자라난 듯합니다.


그런 엄마의 사랑이 있었기에 저도 가능했습니다.


이유식 노트.JPG

퇴근하고 집에 오면 한 번에 이틀 치 이유식을 만들어 바로 먹이기도 하고, 얼렸다 데워 먹일 수 있게 준비했습니다.


이유식 준비.JPG

하나하나 계량하고, 재료도 유기농에 무항생제 소고기만 사용해서 말이죠.

육수도 종류별로 만들어 아이 이유식에 감칠맛을 더했습니다.


이유식 기록.JPG

그렇게 준비된 재료를 일일이 손으로 다져서 작은 이유식 용기에 담았습니다.


오쿠 이유식.JPG

저는 엄마가 사두신 오쿠를 이용해 이유식을 만들었습니다.

유리그릇에 준비하고 이층으로 쌓아 밤새 오쿠를 이용해 죽 모드로 만들어 놓으면 아침이면 재료들이 잘 익어서 맛있는 이유식이 준비되었습니다.


이유식 선우.JPG

그렇게 만들어둔 이유식을 외할머니와 야무지게 먹었던 아이.

그 모습을 보며 친정엄마는 어릴 적 저를 키우시던 기억을 떠올리셨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아이가 잘 먹는 모습은 어른들을 미소 짓게 합니다.

내 살이 붙는 것도 아닌데 마음과 몸이 건강해지면서 행복한 에너지를 전해줍니다.


이 작은 아이가 세상을 접해가는 그 모든 순간이 기특하고, 감사하고!

살고자 애쓰는 저 작은 아이를 보며 어른들도 '그래 살자! 열심히 살아보자' 힘을 내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스크림 선우.JPG


가끔은 아직 허락되지 않은 가공식품을 향해 손을 뻗치기도 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셨던 친정엄마.

사위가 퇴근길에 아이스크림을 사가고자 전화드리면 "아니야 나는 괜찮아"가 아닌

"응~ 난 비비빅, 누가바, 메로나! 없으면 아무거나 좋아!" 하고 확실하게 이야기하셨던 친정엄마.


그렇게 외할머니 덕분에 아이스크림이라는 인생의 단맛을 알게 된 아이는 지금도 아이스크림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어느덧 찾아온 봄.

따듯하다 쌀쌀하다를 반복해서 이만큼 와있는 줄 모르고 조금 더 오래 웅크리고 있었는데

이제는 선명한 봄이 되어 여름을 준비하고 있네요.


오늘은 퇴근길에 아이들과 아이스크림을 한번 먹어야겠어요.

황금연휴에 여행을 갈 수 없다면 맛있는 음식들로 달콤한 추억을 만들어 주어야겠네요.


엄마!

거기도 따듯하고 화창하지?

보고 싶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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