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일기 정리 프로젝트, 열 하나

가족이라는 우주, 그 우주의 중심이 되어주는 엄마와 아이

by hummingham
엄마의 일기 정리 프로젝트, 열 하나


몇 달을 글쓰기를 멈추고 2023년을 달려왔습니다.

스스로 형편없는 글쓰기 실력에 속상하기도 하고, 회사 일들로 정신이 없이 1분기를 달려오며

엄마의 일기 정리가 늘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습니다.

늘 집에서 기다려주시던 엄마처럼 브런치에 담고자 했던 엄마의 일기도 마냥 저를 기다려주었네요.


다시 엄마의 일기를 꺼내어 봅니다.

그 시절 엄마의 모습이, 엄마의 목소리가 떠오르는 순간을 추억하고

그 시절 아이의 모습이, 아이의 목소리가 가져다준 행복을 꺼내어 봅니다.


기록은 추억을 가져다주고, 추억은 행복으로 지금을 풍족하게 합니다.

그래서 기록은 엄청난 힘이 있나 봅니다.



1. 2015년 2월 3일 화요일 엄마의 일기.



손을 잡고 두 발을 세워주면 신이 나서 겅중겅중 뛰던 아이.

오동통한 허벅지의 힘으로 아빠와 외할머니 다리를 운동장마냥 점프했던 힘센 녀석.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작은 옹알이도 하나님, 엄마, 아빠로 해석되는 매직!

진짜로 나는 우리 선우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단 말이야....

하지만 친정엄마는 믿기 힘든 눈치셨네요.

아이 키우다 보면 종종 거짓말쟁이가 된다더니 그 말이 딱 맞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향해 외쳐대는 그 울림을 우리는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니 거짓말쟁이가 되어도 좋습니다.




2. 2015년 2월 8일 일요일 엄마의 일기



대근육 발달이 그리 빠른 편은 아니었던 우리 선우.

100일 무렵 뒤집는 아이들도 많은데 120일이 지나도, 140일이 지나도 뒤집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앞으로 기어가는 것보다 뒤로 기어가는 예상을 벗어나는 타입의 아이였습니다.


친정아빠의 생신날,

그날 나는 친정엄마와 이런 대화를 했었네요.

"엄마, 삐뽀삐뽀 하정훈 소아과 선생님 책을 보면 166일 넘었는데도 안 뒤집으면 병원에 한번 가보라는 말이 있더라고"

"그래? 오늘은 며칠이야?"

"오늘? 태어난 지 163일!"


그리고 잠시 후, 아이는 병원에 가기 싫었는지 나와 친정엄마가 보는 앞에서 홀라당 뒤집었고요!!

우리가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손뼉 치고 웃었는지... 아직도 또렷이 기억납니다.


첫 뒤집기로 몸아래 팔이 끼지 낑낑대던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우리는 팔을 살포시 빼주었습니다.

몇 번의 뒤집기를 더 시도해 보더니 이제는 팔을 빼는 것도 익혔는지 뒤집는 모습도 불안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토록 아이의 작은 움직임에도 우리 가족 모두는 올림픽을 보는 것처럼 흥분하고 박수를 쳤습니다.

이 아이가 가족이라는 우주의 중심이었고, 그 중심에는 행복이 있었습니다.

이런 소소한 기쁨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알려주었기에 친정엄마는 이미 나와 동생을 키우실 때 겪었던 일들임에도 남다른 기쁨과 환희를 느끼셨나 봅니다.




3. 2월 13일 금요일 엄마의 일기



항암치료를 위해 대학병원에 가시는 날.

전날 누나네로 온 남동생과 함께 새벽같이 진료를 위해 병원으로 출발하신 친정 엄마.

친정 엄마는 아빠랑 잘 지내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놓여 편안하게 병원으로 가실 수 있었습니다.

늘 살뜰히 돌봐주시던 외할머니가 없어도 아이는 아빠랑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두 부자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마음 편히 치료를 받고 다시 친정아빠가 계신 집으로 가서 쉬실 수 있었을 거예요.


항암치료라는 힘든 시간을 가만히 이겨내기도 힘드셨을 텐데...

외손주 육아까지 하시며 삶에 열의를 내셨던 친정 엄마 덕분에 그 시절 우리는 모두 열심히 살 수 있었습니다.

가족의 중심이자 우주였던 엄마가 저렇게 지치지 않고 잘 버티고 계시니 우리는 그런 엄마를 보며 더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중심이었던 엄마...

한 번도 엄마 없는 삶을 상상해 본 적이 없던 엄마와의 이별이 벌써 5년째가 되어갑니다.

다음 주면 딱 5주년 기일이 다가와 이번주는 유독 밀렸던 엄마의 일기 정리 프로젝트가 마음에 걸렸던 것 같습니다.


따듯한 봄처럼, 예쁜 꽃처럼 그렇게 가장 예쁜 날 이별했던 엄마와의 시간이 꿈처럼 느껴집니다.

이번 주말, 엄마를 보고 환하게 웃고 예쁜 꽃을 전해드리고 오려합니다.



엄마!

벌써 천국여행 가신지 6년이나 된거야?

엄마!

이번주에는 우리 꿈에 왔다가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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