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다시 또 읽으
10월 말 강진에 다녀온 후로 여운이 가시지 않아 문득 책꽂이에 얌전하게 꽂힌 선생님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다시 꺼내들었다. 책 커버를 여니 '2012.8.3. 고매한 다산의 정신세계를 탐하다' 고 써 두었다. 그러고 보니 13년 만에 이 책을 다시 편다(사이 사이 뒤적이기도 했을 터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1979년에 제1판이 나온 이래 1991년, 2001년, 2009년 제 4판이 나오기 까지 고치고 가필되었다. 역자인 김석무 선생님의 말을 빌리면, "30년 동안 광고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이 책은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내가 읽은 책은 2012년 출간된 제4판이다(지난 2019년 개정판이 나왔다).
책은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2부 두 아들에게 주는 가훈,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4부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말이 그것이다. 나의 식견이 매우 좁아 학문과 인생의 깊이를 잘 헤아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두 아이의 엄마로서, 공직을 맡고 있는 사회인으로서, 교사로서, 그저 현재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도, 시대를 초월하여 꺼내보고 기록하고 새겨할 배움들이 많다(언제나 안타까운 것은 시대와 인재가 어긋나는 일이다. 늦게라도 알아주는 이(知己)가 있으니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책표지<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 박석무 편역 ⓒ 창비관련사진보기
'편지'란 보내는 이가 받는 이를 생각하며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글이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그랬듯이 편지에는 보내는 이의 삶과 사고, 받는 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다. 다산 선생님의 편지 글에도 자식에 대한 절절한 사랑, 걱정, 부탁, 훈계, 희망이, 형제 간의 진정어린 학문적 고민이, 스승으로서 아끼는 제자에 대한 사랑과 가르침이 행간을 수놓고 있다.
다시 읽으니 전에 눈여겨 보지 못했던 문장들에 머물게 된다. 자식에 대한 선생님의 '구구절절 인간적인 면모'에 웃음이 나기도 하고, '대학자도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 마음은 똑같구나' 하는 위로도 받게 된다.
밤낮으로 너희들에게 희망을 걸고 마음속에 담긴 뜨거운 마음을 쏟아 편지를 보내고 있는데, 너희들은 이것을 한번 얼핏 읽어보고 고리짝 속에 처넣고는 다시는 마음에 두지 않아서야 되겠느냐? - 96쪽
어찌 글공부에는 이 아비의 버릇을 이을 줄 모르고 주량만 아비를 훨씬 넘어서는 거냐? <중략> 너희들은 지난날 내가 술을 마실 때 반잔 이상 마시는 걸 본 적 있느냐? - 100쪽
폐족으로서 글까지 못하면 어찌되겠느냐? 글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배우지 않고 예절을 모른다면 새나 짐승과 하등 다를 바 있겠느냐? ... 글 읽는 사람의 종자까지 따라서 끓기게 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 - 118쪽
폐족으로서 오직 살아나갈 길은 독서임을 아들들에게 누누이 권했건만, 공부가 성에 차지 않자 아버지 뜻을 저버리고 보잘 것없는 생활로 빠져버리고 말 것만 같은 초조감에 병까지 얻었다고 고백한다. "나 죽은 후에 아무리 청결한 희생과 풍성한 음식으로 제사를 지내준다 하여도 내가 흠향하고 기뻐하기는 내 책 한편 읽어주고 내 책 한구절이라도 베껴두는 일보다 못하게 여길 것이니" 저술한 책을 후대에 전할 것을 새겨두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책 만들기를 권하면서 목차, 내용, 참고 서적, 유의점 등을 자상하게 일러주고는, "이 책을 2월 보름께 보내온다면 내 마음은 너무 기뻐 벌떡 일어나 춤이라도 출 것 같다" 며 서둘러 책 만들기에 착수하라고 은근히 재촉하기도 한다.
글에 머물며 아버지로서의 다산 선생님 모습을 상상하면, 그 절절하고 애타는 마음이 오죽 했을까 헤아리다가도 아버지 없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팍팍한 현실을 견뎌야 하는 아들들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면 그 막막함이 또 얼마나 컸을까 싶기도 하다.
편지 한 통 한 통 아껴 읽으며 어느 한 편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인용하여 공유하고 싶은 문장들이 넘친다. 그저 많은 분들이 이 서평이 계기가 되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다시 읽게 되기를 바라게 된다.
오십 고개 중턱을 넘고 있고, 자녀 교육이 그럭저럭 마무리 되고, 감사하게도 사회적으로도 은혜를 입은 축에 속하기에, 요즘 유념하고 있는 일은 '나누는 삶'이다. 나의 지향과 일치하는 선생님의 글 일부를 옮겨 적어 본다.
여러 날 밥을 끓이지 못하는 집이 있을 텐데 너희는 쌀되라도 퍼다가 굶주림을 면하게 해주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눈이 쌓여 추위에 쓰러져 있는 집에는 장작개비라도 나눠주어 따뜻하게 해주고, 병들어 약을 먹어야 할 사람들에게 한푼이라도 쪼개서 약을 지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 - 60쪽
재물 또한 자손에게 전해준다 해도 끝내는 탕진되고 만다. 다만 몰락한 친척이나 가난한 벗에게 나누어준다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 166쪽
얼마 전 문형배의 <호의에 대하여> 책이 출간되었다. 세상을 살만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나눔, 친절, 호의가 아닐까. 나눔은 나눔을 낳고, 친절은 친절로 이어지며, 호의는 호의로 되돌아온다고 믿는다.
한번은 아들에게서 편지가 온 모양이다. 유배에서 풀려나게 지인들에게 편지를 넣으면 어떻겠냐는 아들의 권유가 있었는데, 다산은 "나는 꼭두각시가 아닌데 너는 무엇 때문에 나를 그들의 장단에 춤추게 하려느냐" 하며 야단친다.
내가 귀양이 풀려 돌아가느냐 못 돌아가느냐 하는 일은 참으로 큰일은 큰일이나, 죽고 사는 일에 비하면 극히 잗다란 일이다. <중략> 잗다란 일에 잽싸게 다른 사람에게 꼬리를 흔들며 애걸하고 산다면, 만약 나라에 외침이 있어 난리가 터질 때 임금을 배반하고 적군에 투항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느냐? - 131쪽
"조그만 이익 때문에 앞뒤 가리지 않고 마구 행동하란 말이냐" 꾸짖으며 "마음을 크게 먹고 걱정 말고 세월을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일침을 가한다.
책 곳곳에서 실학자다운 면모가 돋보인다. 양계하는 법, 책 짓는 법, 시 쓰는 법, 물감들이는 법, 지도 제작법, 가난한 선비가 생업을 꾸릴 방법, 선비다운 농업 경영법 등 실학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사상이 지금 시대에 연결해도 진취적이고 실용적이다.
목민관인 제자에게 제물과 직위에 청렴할 것을, 봉록과 지위를 다 떨어진 신발처럼 여기며 오로지 백성을 위해 고을을 다스릴 것을 당부한다. 수령으로 고을에 가서 아전을 거느림에 있어 "그들을 불러다놓고 자세하게 묻고 상세하게 배워 그 농간을 살펴야 한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태연히 평소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오로지 서명만 근엄하게 하면" 안 된다고, 아전들을 지성으로 거느려야 함을 당부한다. 생의 어느 단계를 지나든 청렴, 겸손, 배움의 자세를 새긴다면 과오는 적을 것 같다.
이익에 밝은 시대에 살고 있다. 열린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편 가르기는 만연하다. 변화가 빠르고 바쁘다 보니 쫒아가도 늦을까 불안하고 두렵다. 이럴 때 다산 선생님의 편지글은 '근본'을 지키는 일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200년이 훌쩍 지나도 울림이 큰 선생님의 글이 귀하고 귀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