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정세희, <길 위의 뇌>
뇌질환을 치료하는 의사라고 해서 병을 얻지 말라는 법도 당연히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 출근 전에도, 또 어제도 달렸다. 오늘의 달리기는 나이든 내가 병에 걸렸을 때 쓸 약이 되어줄 것이다. 운동은 미래에 당신을 치료해 줄 약이다. - 265쪽
달리기 열풍이 대단하다. 저녁 운동을 위해 가까운 학교나 공공 운동장에 나가면 달리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가수 션이 '달리기 운동'을 전개하며 독립운동가 후손 가정을 위한 '희망의 집짓기' 활동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운동하며 건강도 지키고, 젊은이들을 뜻깊은 활동으로 이끄는, 사회에 훈훈한 감동을 안겨주는 그를 보며 참 감사하고 흐뭇했다. 그렇게 달리기에 대한 관심이 내 안에 조금씩 싹트고 있었다.
<길 위의 뇌>의 저자 정세희 교수는 유튜브로 먼저 알게 되었다. 뇌를 치료하는 재활의학과 의사, 달리기 경력 20년, 풀코스 마라톤 30회. 뇌와 달리기에서 '전문가'의 면모가 돋보이는 활력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길 위의 뇌, 리커버 ⓒ 한스미디어관련사진보기
지난해 폐렴을 앓은 후 폐 기능이 많이 약해졌는지, 올 3월에도 폐렴이 재발하여 고생했다. 건강이 나빠지니 소심해지고 우울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정세희 교수님의 강의는 귀에 쏙쏙 들어왔다. 나는 어릴 적부터 유별나게 쌕쌕거리는, 약한 심장과 폐를 갖고 있다.
"왜 그렇게 쌕쌕거려?"
소풍이라도 가는 날이면 옆에서 걷는 친구는 쌕쌕거리는 내 모습을 보며 걱정하곤 했다. 그런 나이기에 숨이 차는 신체활동은 본능적으로 피하며 살아왔다. 운동이라고 해봤자 정적인 요가, 걷기가 전부였다.
걷기도 처음은 '살기 위한 방편'이었다. 첫 아이를 낳고 육아로 힘든 날을 보내던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나의 첫 아이는 100미리 젖병을 빠는데도 한 시간 남짓 걸렸고, 한 번에 먹는 양이 적어서 자주 젖을 물려야 했다. 병치레도 잦았다. 첫 아이였기에 육아에 서툴렀고, 예민하고 병치레가 잦은 아이를 돌보느라 내 몸을 돌보지 못했다. 그렇게 허리가 많이 약해졌고 급기야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허리 근육이 하나도 없어요. 운동하셔야 합니다. 걸으세요!"
그때부터 아프지 않기 위해 시작된 걷기는 '내 삶의 동반'이 되어 25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걷기 덕분에 지금까지 큰 탈 없이 살아온 것 같다. 정세희 교수님의 '달리기 예찬'은 아마도 그대로 나의 '걷기 예찬'으로 치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걸었다. 아침, 점심, 저녁 시간 하루 중 어느 때라도 상관없었다. 아침 걷기는 하루를 시작하는 워밍업이었고 활력이었다. 점심 식사 후 걷기는 컴퓨터, 일, 전화, 각종 회의와 요구 자료에서 벗어나 자연과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숨통 같은 시간이었다(교육청 근무 시절이다).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 시간 걷기는 나에게 '기도'나 '명상'같은 것이었다. 걷다 보면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도 조금씩 맑아져서 그날의 사건이든 감정이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하루의 희로애락을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나름의 의미와 이유 있음'으로 받아들이고, 내일을 긍정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걷기의 힘은 단순하면서도 결정적이다. 시간을 맞출 필요도 없고, 동행이 없어도 좋으며, 원하는 곳으로 어디든 갈 수 있고, 공짜다.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 자연은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시간에 따라, 두 번은 없는 그날의 고유한 공기에 따라 걷기의 배경이 되어 준다.
걸으며 하늘을 올려다 보고, 바람을 느끼며,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사람들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카페, 꽃과 나무들, 주택가 개 짖는 소리, 이 모든 것들이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음에, 그리고 내가, 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에 안도하고 감사한다. 이토록 걷기를 애정하는 내가 요즘 조금씩 달리기 시작했다.
3개월에서 6개월 간의 걷기 후 전신 근육량을 측정한 결과는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몇 달을 걸었지만 근육이 늘기는커녕, 평균 300그램이나 감소했기 때문이다. ... 걷기로는 근육은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걸어서는 근감소증을 치료할 수도, 몸짱이 될 수도 없다. - 249쪽
오십 이후는 '연금'보다 '근육'이라는데. 그리고 선천적으로 심폐기능이 약한 나는, 달려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처음에는 1분 달리기도 힘들었다. 지금은 20분은 천천히 달릴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아주 뿌듯하고 체력이 좋아짐을 느낀다.
교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달려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인 달리기는 "심장과 폐는 물론 동맥과 정맥, 말초혈관, 근육, 근육 내 대사 시스템까지도 건강하게 만든다." 그러니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도 개선된다. 신경과 혈관 덩어리인 뇌에 산소를 공급하여 뇌세포의 건강을 유지시키고 뇌세포가 잘 일하게끔 만든다. 그러니 뇌졸중, 뇌경색의 위험이 줄어든다. 치매 위험도 낮춘다.
책 속에는 오랜 기간 환자를 치료해온 임상 경험, 달리기의 건강 효과, 달리기에 대한 오해, 무릎 통증, 착지법, 부상, 러닝화 선택 등에 이르기까지 교수님의 생생한 체험과 실질적 연구 데이터에 기반한 신뢰성 있는 정보가 가득 실렸다. 여기 저기 쏟아지는 건강 정보들 속에서 자칫 잘못된 선택으로 오히려 몸을 망치는 경우도 많은데, 알짜 도움이 되었다.
지구를 받은 모습 그대로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하듯, 내 것만이 아닌 내 인생을 성실히 관리하며 사는 것 또한 다음 세대를 위한 소명인 것이다. - 321쪽
교수님은 강조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철저히 타인과(가족은 물론이거니와) 연결되어 있으며, 내 인생도 온전히 내 것이 아니기에 건강하게 나이들기 위한 노력을 늦출 수 없다고. "부모가 방치하여 생긴 질병의 무게를 대신 짊어져야 하는 자녀는 무슨 잘못인가" 하신다.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이다.
남편에게 종종 말하곤 했다. "자기 몸 잘 돌보는 것이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 "노력했는데도 아픈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노력도 안 하고 힘들게 하면 아무리 가족이지만 얼마나 밉겠냐"고.
건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바쁜 현대인에게, 특히 경쟁이 치열한 우리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건강을 위해 꾸준히 운동하기도 쉽지 않다. 책 속에서 강조하듯이 그럴수록 운동은 필수며, 하루 30분 달리기와 같은 중강도 운동으로 충분하다니, 미루지 말고 바로 실천하면 좋겠다. 운동은 저축되어 나중에 질병에 걸렸을 때 '약'으로 쓰인다니 하루라도 빨리 시작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