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119쪽
사실 제목에 이끌려 집어든 책이다. 책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사소한 것'에 끌리는 사람이고 사소한 것들에게서 자주 감동하는 사람이 '나'이기도 하여. 어떤 사소한 것들이 등장할까? 사소한 것들의 아름다움, 어떤 힘, 이러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일까 궁금해 하며 책을 펼쳤다. 책 앞 장의 헌사를 읽고는 '뭐지?' 싶었다. 이어지는 뒷장에는 '아일랜드 공화국 선언문'(1916)이 발췌 되어 있다. 사소한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설을 다 읽은 뒤에는 책의 제목이 '역설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표지 이미지 ⓒ 다산책방관련사진보기
소설은 121쪽 분량으로 짧다. 시간적 공간적 배경도 단출하고 집약적이다. 아일랜드이고, 겨울이며, 석탄·목재상을 하는 주인공 펄롱이 서사를 이끌어간다. 주인공 펄롱은 아픈 성장 배경을 가진 인물이다. 그의 엄마는 16세 때 '미시즈 윌슨'의 집 가사 일꾼으로 일하던 중 펄롱을 낳았다. 그가 12세 때 세상을 떠났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니고 성인이 되어 결혼을 했고 딸 다섯을 둔 성실하고 평범한 사람이다.
또한 펄롱은 "힘들게 사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부자는 아니지만", 빚 지지 않고 사는 '운 좋은 삶'에 감사하고, 장대비가 내린 날 땔감을 주우러 나온 이웃집 아이를 차에 태워주고 잔돈을 챙겨주는, 작은 친절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소설은 주인공 펄롱을 통해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진 아일랜드 '모자 보호소'와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벌어진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억압, 인권 유린, 착취를 다룬다. 그리고 힘없고 평범한 한 시민 '펄롱'이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수녀원을 직접 목격한 뒤 겪는 심리적 고뇌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펄롱이 사는 마을에서는 수녀원과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세탁소에 대한 흉흉한 소문들이 많았다. 하지만 펄롱은 "사람들은 별 이야기를 다 하고 그 중 절반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라며 믿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약속한 배달 시간 보다 일찍 수녀원에 도착한 펄롱은 "죽어라 바닥을 문지르고" 있는, 신발을 신지 않은,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깎여 있는, 밖으로 나가게 도와 달라고 애걸하는 젊은 여자와 여자 아이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집에 와서 아내 아일린에게 수녀원에서 본 것을 이야기한다.
"어쨌든 간에,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우리 딸들은 건강하게 잘 크고 있잖아?"
"우리 딸들? 이 얘기가 우리 딸들하고 무슨 상관이야?" 펄롱이 물었다.
"아무 상관 없지. 우리한테 무슨 책임이 있어?"
"그게,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했는데, 당신 말을 듣다 보니 잘 모르겠네."
"이런 생각 해봤자 무슨 소용이야?" 아일린이 말했다.
"생각할수록 울적해지기만 한다고." 아일린은 초조한 듯 잠옷의 자개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중략>
"그렇지만 우리가 가진 것을 잘 지키고 사람들하고 척지지 않고 부지런히 살면 우리 딸들이 그 애들이 겪는 일들을 겪을 일은 없어." -55쪽~57쪽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우리 딸들은 잘 크고 있잖아", "살아가려면 모른 척 해야 하는 일도 있다"는 소설 속 아내의 말은 우리 주변에서 빈번하게 목격되는 반응이어서, 말로 뱉어내지는 못하지만 어떠한 불행이 나를 직격 하지 않은 것에 안도하는 모습이 떠올라서 오래 머무르게 했다. "가진 것을 잘 지키고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부지런히 사는" 일이 일상을 꾸려가는 매우 중요하고 근본적인 태도임을 수긍하면서도, 이 대목에서 마음이 불편해지는 거다. '나'인들 아내 아일린과 뭐가 다를까 하는.
아내의 말을 듣고 있던 펄롱은 어린 시절 자신과 어머니를 거두어 준 미시즈 윌슨을 떠올린다. 미시즈 윌슨이 아내의 말처럼 '모른척했다면' 어머니와 자신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이브 새벽,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고, 밤새 석탄광 안에 갇혀 있던,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14주 된 아이를 빼앗긴 여자 아이를 발견한다. "넓고 근사한" 수녀원의 방, 수녀원장의 모습, 여자 아이를 대하는 수녀원장의 태도, 겁에 질린 여자 아이의 모습을 직접 본 후 더욱 심란해진다.
그리고 미사에 간 펄롱은 미사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고 영성체도 받지 않는다. 그리고 그날 오후 수녀원에서 본 아이를 생각한다. 자신이 수녀원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는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 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 펄룽은 직원 회식을 위해 식당을 찾았다.
"내 말이 틀렸으면 틀렸다고 해, 빌. 그런데 내가 듣기로 저기 수녀원 그 양반하고 충돌이 있었다며?"
"충돌이라고 할 건 아닌데, 네, 아침에 거기 잠깐 있었어요."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거기 일에 관해 말할 때는 조심하는 편이 좋다는 거 알지? 적을 가까이 두라고들 하지. 사나운 개를 곁에 두면 순한 개가 물지 않는다고. 잘 알겠지만." - 105쪽
식당 아주머니는 열심히 일해서 여기까지 왔고 딸들 잘 키우려면 수녀원과 충돌해서 좋을 것이 없다며 "적을 가까이 두라고" 펄롱을 타이른다. 그러나 결국 펄룽은 그날 밤 수녀원에 가서 그 아이를 집으로 데려 오고, 소설은 끝난다.
책을 덮고 '모자 보호소'와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다행도 2013년 아일랜드 정부는 막달레나 세탁소 생존자들에게 공식 사과와 보상을 발표했고, 2021년 모자 보호소 전반을 조사한 보고서가 공개, 정부는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고 한다. 추모관과 교육을 통해 기억하고 있고 피해자들의 이름과 삶을 되돌려주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니 불행 중 다행이다.
'금기의 영역(?)'이기도 한 종교의 어두운 부분을 다루어서 그런지 이야기는 "무수한 의미를 압축해 언어의 표면 안으로 감추고 말할 듯 말 듯 조심스럽게" 전개된다. 그래서 더욱 몰입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진실과 마주하는 일은 일요일이면 성당에 가는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불편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무수한 폭력이 존재했고, 여전히 권력과 결탁하여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고 인간의 존엄이 억압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 119쪽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120쪽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고 힘을 얻는 데는, '이처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었다.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는 '세상과 맞설 용기'. 무수한 '사소한' 용기들이 모여 세상은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