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글이 참 예쁜 책 한권

[리뷰]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을 읽고

by lee나무

책은 한 소년이 '아주 작은' 두더지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이 책은 그림책이다. 책은 소년이 '아주 작은' 두더지와 친구가 되면서 시작된다. 어느 날 두더지는 덫에 걸린 여우를 구해준다. 이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는 친구가 된다. 물에 빠진 두더지를 여우가 구하고, 그런 여우를 소년은 꼭 안아준다. 셋은 그렇게 길을 떠난다. 이런 말을 나누면서.

"자신에게 친절한 게 최고의 친절이야", "우린 늘 남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기만을 기다려... 그런데 자기 자신에게 지금 바로 친절할 수가 있어."


셋은 길을 가던 중 말을 만난다. 소년과 두더지는 말 등에 올라타 놀기도 하고 말을 쓰다듬기도 한다. 여우도 그들 주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친해진 넷은 말을 타고 신나게 달린다. 그러다 그만 소년은 강물에 풍덩 빠지고, 말이 소년을 구한다. 서로 다른 넷은 서로를 도우며 더욱 끈끈한 우정을 쌓는다. '집'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에서 소년과 친구들은 여러 경험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소중한 해답을 찾는다.


글과 그림이 참으로 예쁜 책이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서로 다른 생명들이 툭 뱉어내는 말의 울림이 어떤 복잡한 문장들보다 큰 책이다. 그림은 거친 듯 성근 듯 실루엣과 움직임만을 굵고 가는 선으로 표현했는데, 등장인물의 감정과 그들 간의 교감이 한층 깊게 느껴진다. 그들이 주고 받는 말, 접촉, 교감에서 나를 비롯한 우리 인간의 삶에 대한 심층적 고민, 마음이 고스란히 읽힌다. 그래서 더욱 순수한 감동이 밀려왔던 책이다.


한줄기 햇살 같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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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 상상의힘관련사진보기



"이다음에 크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친절한 사람." 소년이 대답했어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물으면 나는 선뜻 친절한 사람이라고 대답할 수 있었을까. 소년의 대답이 마치 오랜 수행으로 깨달은 어느 현자의 말처럼 '아, 맞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친절은 외부를 향한다. '나' 아닌 '타자'를 염두에 둔 행동이다. 비록 그것이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향한다고 해도 말이다.


친절은 타자에 대한 '존중'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래서 친절한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기분이 좋아진다. 타인을 향해 미소를 짓고,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고, 따뜻한 말을 건네고, 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 눈 앞의 문제가 너무 커서 나를 삼켜버릴 것 같은 지친 날에, 친절하기란 무척 어렵다. '휴식과 잠만을 갈망하게 되는' 그런 날에 누군가가 내민 친절은 '한 줄기 햇살'이 된다.


"넌 성공이 뭐라고 생각하니?" 소년이 물었습니다.
"사랑하는 것." 두더지가 대답했어요.


요즘 너무 흔하게, 당연한 듯 가볍게 말하기도 해서 그 소중함을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은 것이 '사랑' 아닐까. 두더지는 '성공=사랑하는 것' 하고 툭 던지듯 말한다. 이 짧은 대화에 내 마음이 머문 이유는 나는 여태껏 '성공'과 '사랑'을 연관시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권력과 명예를 가졌어도 '인색한 스크루지' 같다면 삶은 외롭다. 성공한 삶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성공의 바탕에 사랑이 깔리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결국 우리는 평생의 삶을 통해 사랑을 알아가고 사랑을 축적하며 완성해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시간을 낭비하는 가장 쓸데없는 일이 뭐라고 생각하니?"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일." 두더지가 대답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결국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는 고유한 생명체이다. 그런데도, 참 많이 비교하며 '가장 쓸데없는 일'을 하며 시간을 낭비했다. 나이가 들면서는, 정호승 시인의 고백처럼 "내 분수를 알게 되어 쓸데없이 내 몫이 아닌 남의 것을 탐내는 일도 줄어들어" 젊은 날보다 편해졌다.


"눈앞의 사랑에 집중"하는 일


"우리가 어떤 일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자유야."


소년과 두더지는 덫에 걸린 여우를 만난다. 여우는 "덫에 걸리지 않았다면 널 죽여 버렸을 거야" 하며 두더지를 위협하지만, 두더지는 작은 이빨로 쇠 덫을 갉아 여우를 구해준다. 두더지의 용기는 셋이 친구가 되게 했다. 괴테 석학이신 전영애 교수님은 '무엇을' 보다 '어떻게'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차이는 결국 '어떻게'에 의해 만들어진다.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자유'는 어떤 상황에서든 '태도'(행동)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먹구름이 몰려오면..."
"... 그래도 계속 가는 거야."
"감당할 수 없는 큰 문제가 닥쳐오면..."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랑하는 것에 집중해."


살다보면 유난히 깜깜한 날들이 있다. 이럴 땐 그냥 버티는 수밖에 없다. 버티고 견디다 보면 시간이 흐르고 어느 곳에 닿아 있었다. 그냥 눈 앞에 있는, 사랑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지금 당장 해야할 일, 지금 바로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만을 생각하며 "그래도 계속 가는" 거다. 그러다 보면 폭풍우는 지나가 있을 테니까. 비 온 뒤 땅이 굳듯이, 이전 보다 단단해진 자신을 만나게 될 테니까.


"살면서 얻은 가장 멋진 깨달음은 뭐니?" 두더지가 물었어요.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는 것."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나의 소중함을 타인의 태도로 평가할 필요는 없다. 비교 사회에서 쉽게 작아지기 쉬운 '나'라는 영혼에게 자주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고 토닥여 줘야 한다. 하고 싶은 일에 기꺼이 도전하며 자기만의 삶을 꾸려가면 된다. 가끔 책 속의 소년처럼 "내가 얼마나 평범한지 네가 속속들이 알게 될까 봐 때로는 걱정이 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나는 타인의 평범 속에서 오히려 숨통이 트이고, 수많은 평범한 삶이 세상을 지탱한다고 생각하니까.


이 밖에도 생각할 지혜의 문장이 많은 책이다.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재미있게 의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천천히 글과 그림을 가만 가만 들여다보고 머물며 읽기를 권한다. 단순한 듯 보이지만 본질적인 삶의 지혜가 당신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고, 마음에도 잔잔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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