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건조한 날씨에도 꽃을 피우는 아메리칸 블루를 보며
"어머나, 아메리칸 블루 꽃 폈어!"
구축 아파트인 우리집은 남향이다. 가장 큰 장점은 겨울이면 따뜻한 햇볕이 그야말로 가득 들어와 오후 4시 무렵까지 놀다 간다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 아침, 반려식물들의 얼굴을 보고 물도 줄 요량으로 베란다로 나갔다. 요즘 같은 한파에는 아무리 남향 아파트지만 식물들이 무탈한지 자주 살펴야한다. 무심코 거실창을 연 나를 깜짝 놀래키며 기쁜 탄성을 지르게 한 녀석은 '아메리칸 블루'였다. 한송이 파란 꽃을 몰래, 다소곳하게 피운 것이다.
'봄이 오긴 오나 보다!'
나는 혼잣말을 하며 요리 조리 이 아이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방으로 들어가 핸드폰을 가져와 녀석의 순하고 순수한 얼굴이 도드라지도록 사진을 찍었다. 가족톡과 형제톡에 사진을 보내며 호들갑을 떨었다.
올 겨울은 유독 한파가 지속된 탓일까. 꽃 소식이 이토록 반가울 수 없다. 꽃은 봄을 연상시키고 봄은 '요이 땅' 하고 시작하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지난 4일은 입춘이었다. 절기 상 봄에 진입했지만 뉴스에는 폭설, 한파 소식이 가득하다. 매일같이 영하권 강추위 예상, 한랭질환 주의, 야외 활동 자제, 수도관 동파 예방, 난방기 화재, 산불, 도로 결빙 주의 등 안내 문자가 날아든다.
날씨가 이렇다 보니,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건만 꽁꽁 얼어불은 기온 탓에 몸도 마음도 멈칫 멈칫 움츠러들었다. 이런 나였기에, 한파 속에 핀 한송이 꽃이 반갑기만 하다. 기특하고 놀랍기만 하다.
▲아메리칸 블루아메리칸 블루가 한파 속에서는 파란 첫 꽃을 피웠다.
이 아이에 얽힌 사연이 있다. 지난해 봄, 직장 내 화단에 심을 꽃나무를 고르기 위해 동료와 함께 화훼단지에 갔다. 우리는 둘 다 꽃과 나무를 좋아한다. 화훼단지에 도착하자 알록달록 온갖 꽃들에 홀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가게마다 들러서 꽃구경 삼매경에 빠졌다.
노랑, 빨강, 분홍, 채도와 명도가 높은, 선명하게 존재감을 발산하는 꽃들 속에서 나는 '아메리칸 블루'를 처음 만났다. 밋밋한 흰색 플라스틱 화분에 소복하게 키운 잎과 줄기를 늘어뜨린 녀석은 작고 파란 꽃을 종종 달고는 내 눈 높이 정도의 선반 위에 놓여 있었다. 이 아이에게서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나를 보고는 꽃집 주인이 다가와 가격을 흥정하며 사라고 권유했다.
"이거, 예쁘지 않아요?"
옆 동료에게 물었다. 집에 데려가고 싶은 욕구가 솟아나고 있었다. 동료는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에이, 별로예요. 사지 마세요. 촌스러워요" 하며 가게 주인이 들을까 봐 속삭이며 말렸다. 어떻게 보면 이 아이는 관상용으로 키우기에 너무 수수해 보일 수 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까.
하지만 내 눈에는 풀꽃같은 수수함이 고상하고 예뻐 보였다. 그렇게 이 아이의 이름도 모르고 느낌과 이미지만을 기억한 채 돌아섰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녀석이 눈에 아롱거리곤 했다.
그러던 지난 8월 어느 날, 선물용 꽃을 사기 위해 단골 꽃집을 찾았다. 꽃을 사고 문을 나서는 순간 나는 파란 꽃을 다소곳하게 달고 있는 녀석과 마주쳤다. 배웅 차 나를 따라 나선 안주인이 허리를 낮추어 꽃을 들여다보는 내 모습을 보더니 불쑥 말씀하셨다.
"마음에 드시면 가져가세요."
"어머나, 정말요? 감사합니다. 꽃 이름이 뭐지요?"
" 아메리칸 블루예요. 물을 좋아해요. 듬뿍 주세요. 좀 까다롭긴 한데, 잘 키워보세요."
녀석을 화분 채로 봉지에 담아 집으로 가져오며 나는 콧노래가 절로 났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발걸음도 춤추듯 했다. '인연이 이렇게 또 닿는구나!' 생각하며 감사했다.
가는 솜털이 송송 난, 맑은 초록 잎을 축 늘어뜨리며 자라는 식물이라 베란다 바닥에 놓을 수 없었다. 이 아이를 위한 전용 의자를 준비해 돋보이게 올려 두고는 아침 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했다. 그 기쁨이 참으로 컸다. 나팔꽃처럼 아침이면 꽃잎을 활짝 여는 특징이 있어서 한창 꽃을 피울 때는 아침마다 이 아이를 보기 위해 베란다로 나갔었다.
▲아메리칸 블루지난 해 꽃집에서 얻어 온 아메리칸 블루가 한창 예쁠 때 모습
그런데 늦가을로 접어들면서 잎이 힘을 잃어 갔다. 자세히 보니 눈에 잘 띄지 않는 벌레가 잎에 총총총 붙어 있었다. 손으로 벌레를 잡아주며 정성을 쏟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기력을 잃어가더니 잎이 떨어지고 모습이 보기 흉하게 변해갔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머리카락 자르듯 줄기를 깨끗하게 정리했다. 뿌리는 살아있으니 마르지 않게 꼬박꼬박 물을 주며 신경을 썼다. 그랬더니 어느 겨울 초입이었을까. 조그마한 새순이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그때의 기쁨은 또 얼마나 컸던지, 살아있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시간과 함께 녀석은 잎과 줄기를 점점 키웠다. 한파가 계속된 겨울에도 말이다. 사실 '블루 데이지'라고도 불리는 '아메리칸 블루'의 원산지는 남미의 열대 및 아열대 지역이다. 그러니 녀석은 '덥고 습한 환경'을 좋아한다. 그런데도 춥고 건조한 겨울에 적응하고, 가만히 견디고, 소리 없이 파란 꽃까지 피우니 얼마나 고맙고 기특한지 모르겠다.
푸른 꽃이 드물기도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녀석은 내 마음을 매료시킨다. 작고 은은한 파란 꽃은 은하수, 별, 이런 낱말을 연상시킨다. 수수한데 신비롭고 고상하다. 연하고 부드러운데 강인하다. 덥고 습한 곳이 고향인데 춥고 건조한 곳에서도 용케 적응하는 생명력이 강한 꽃이다. 낮동안 햇볕을 온몸으로 저장해 기온이 하강하는 밤을 견딜 줄 아는 지혜로운 아이다.
▲호접란행복이 나비처럼 날아든다는 꽃말을 가진 호접란이 꽃대를 올리고 꽃봉오리를 한껏 부풀렸다.
꽃에게서 배운다. 어떤 환경에서든 묵묵히 제 할 일을 할 뿐이라는 것. 그것이 누군가에게 기쁨이 된다는 것. 아메리칸 블루 덕분에 한파가 무색하게 봄 생각에 기분 좋은 날을 보냈다. 아마도 한파도 슬슬 끝물이 아닐까 싶다. 방안에 옮겨둔 호접란도 꽃대를 쏙쏙 올리고 있다.
4년 전에 우리집에 온 한 아이는 꽃봉오리를 한껏 부풀려 터뜨리기 일보직전이다. 호접란이 꽃대를 올린다는 건 봄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호접란의 꽃말처럼 '행복이 나비처럼 날아들기를' 희망하게 된다. 모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