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린 나지만

노래 잘 부르는 아이

by 하마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는 '나는 노래를 잘 불러!'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다. 항상 음악시간이 기대되었고 즐거웠다. 교내 독창 대회는 모조리 대상을 받았었고 주위 어른들은 칭찬뿐이었으니깐 항상 자신감에 차있었다. 그 당시 나는 엄마의 교회지인께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고 그분께서 노래를 한번 해보는 게 어떻냐는 말에 노래를 시작했다. 그렇게 가볍게 시작했던 것이 하나 둘 상을 타 오기 시작하니깐 자신감과 기대가 점점 커졌던 것 같다.


당시에 교내 예능대회라는 행사가 있었다. 그곳에서 대상을 타면 시에서 하는 예능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고학년이 되자 나는 교내에서 대상을 수상해 시에서 진행하는 예능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날은 학교를 안 가고 아침부터 대회장으로 갔다.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들이 많았던 것과 그날 날씨가 몹시 추웠던 기억이 있다. 건물 계단에 앉아서 대기하는 그 시간이 엄청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 매우 긴장했던 탓인지 노래를 어떻게 부르고 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만큼 순식간에 내 차례는 끝나버렸다. 처음으로 나간 큰 대회였고 너무 긴장했었기에 수상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그날 오후 건물 앞에 수상 결과가 게시됐다. 많은 사람들을 비집고 종이에서 계속 내 이름을 찾았다. 결과는 최우수상이었다. 대상은 아니었지만 기대가 없었던 만큼 매우 기뻤던 기억이 난다.


이후 나 자신에 대한 기대는 점점 커져만 갔다. 처음으로 가곡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가곡은 물론 이태리 가곡을 많이 배웠다. 초등학생인 내가 대단한 것을 배운다고 생각해 뿌듯함과 새로운 노래를 배운다는 설렘으로 의욕 넘치게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가곡에 대한 내 흥미는 완전히 사라졌다. 가사의 뜻도 모르는 이태리 가곡보다 모두가 아는 대중가요를 부르고 싶었다. 그렇다고 가곡을 그만 배우고 싶다고 말하기에는 어린애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초등학생이면 당연한 것인데 말이다.


그렇게 노래를 배우던 중 나는 처음으로 외부 콩쿠르에 나가게 되었다. 참가자도 적은 작은 콩쿠르였다. 콩쿠르에서는 내가 가장 나이가 어렸고 내 앞 순서에 노래한 오빠가 정말 잘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때까지 내가 받은 가장 낮은 상은 예능대회에서 받은 최우수 상이었기에 나는 나 자신에 기대가 커져있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당연히 내가 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준비한 이태리 가곡을 부르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실수는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잘하지도 않은 평범한 무대였다. 초등학생인 나도 무대가 끝나고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기대했다. 당연히 내가 상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오후에 나온 수상자 명단에는 내 이름이 있었다. 장려상이었다. 장려상 옆에 쓰여있는 내 이름 세 글자를 본 순간 나는 배신감이 들었다. 억울함과 배신감이 섞인 감정이었다. 눈물이 났고 결과를 인정할 수 없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괜찮다고 위로해 주었지만 우는 걸 들키기 싫어서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 내 실망감이 드러나서인지 어른들도 나와 같은 기대를 해서 인지 모르겠지만 입상을 하고도 축하한다는 말을 못 들은 날이었다.


콩쿠르 이후로 나는 노래 부르는 것이 싫어졌다. 지루했던 가곡은 정말 하기 싫어졌고 나는 노래를 못 부른다는 생각에 갇혀있었다. 그즈음 중학교를 입학할 시기가 되어서 노래는 취미로 하고 싶다는 말을 핑계로 노래를 그만두었다. 그 이후로 만난 사람들에게는 내가 잠시라도 노래를 했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좋아했던 기대와 관심이 이젠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에 입학해 음악시간이었다.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라면 무조건 부르게 되는 가곡 'Caro mio ben(까로미오벤)'을 배우게 되었다. 내가 콩쿠르에서 부른 곡이었으며 가곡중에 기본이 되는 곡이었다. 음악 선생님께서는 이태리어 가사를 읽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으셨는지 '이 가곡의 이름을 한번 읽어보세요'라고 말했다. 반 친구들은 영어 발음 그대로 '카로미오벤'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습관적으로 '까로미오벤'이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구석진 앞자리였지만 선생님께는 들렸는지 어떻게 발음을 아냐는 질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선생님의 질문으로 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향했기에 '예전에 조금 배웠어요.' 라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음악시간이 끝나고 반 친구 몇 명이 와서 질문했다. '노래를 배운 거야?', '이태리어를 배웠던 거야?'라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내 책상 앞에서 이야기했다. 내가 당황해하면 그냥 옛날에 조금 배운 것이라며 얼버무리자 그 친구들도 멋쪅여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한때 내가 좋아했던 노래는 나에게 있어서 불편함이 돼버린 것이다.


지금도 그 이야기를 굳이 꺼내진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아지는 것 같다.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면 손뼉 치면서 따라 부르기만 했던 중학교 때완 달리 고등학교 때부터는 노래방 가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래에는 부담과 기대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다. 목적이 없는 노래를 부르는 것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렸을 적에 부른 노래에는 전부 '상'이라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목적 없는 노래의 재미를 알고 난 후 나에게 취미가 하나 생겼다. '혼자서 코인 노래방 가기'이다. 처음에는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혼자 큰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게 어색하지만 어느 순간 누구보다도 크게 노래 부르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내 노래를 듣고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생각에 오히려 친구와 갔을 때 보다 편하게 노래를 부르게 된다. 아무도 나에게 상을 주지도 않을 것이고 기대도 하지 않고 실망도 하지 않는 그런 목적 없는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내 편안함이 되었다.


지금은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나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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