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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Aug 30. 2020

나이듦을 느낀다

미리 사과드립니다 : 고작 스물 다섯 살 먹은 사람의 글입니다. 



언제부터냐고? 글쎄, 지난 사진들를 들추어 보다가 스무 살의 나는 매일매일 막차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갔다가, 다음날 9시 수업 등교를 뚝딱 해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경기도 통학러였기 때문에, 편도 2시간의 지하철 환승과 버스 루트를 타고 다녔다. 


스물 한 살의 나는 전공 공부에 엄청난 열정을 불태웠고, 뜨거운 마음에 어쩔 줄 몰라 동기들 중에서 가장 먼저 전공 관련 자격증을 따고 4학년 수업에 낑겨 들었으며 어학연수를 떠나며 도전할 수 있는 모든것에 도전했다. 공항발작과 우울증이 찾아오자 동네 심리상담센터로 척척척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상담 내놓아라 요청했다. 그 모든 것이 아주 수월했으며, 동시에 아주 두려웠다. 스물 한 살의 내 심장은 매일매일 고통과 즐거움과 기대 속에 빠르게 뛰었다. 아마 인생에서 심장이 가장 빠르게 달릴 때였을 것이다. 


스물 두 살의 나는 번아웃을 정통으로 맞았다. 휴학을 하고 대기업 드럭스토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그 아무 인연의 시작으로 나는 그곳에서 3년간 더 일하게 되었다) 6개월 풀타임으로 일을 하며 돈을 모아, 어딘가 떠날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어디론가로 떠나기만 하면 되었다. 나는 캐리어를 싸고 비행기를 예약하고 제주도로 떠났다. 대평리라는 작은 제주도 시골마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하며 몇 달을 지냈다. 


그곳에서 아주 멋진 연애도 했다. 제주도 바닷가의 어린 낭만은 부질없는 것들에 대한 아름다움을 불태웠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 아주 작은 것에 서운해했고 아주 작은 것에 우주만큼 행복해지고, 작은 행복을 전하기 위해 엄청난 수고를 하는 미친 연애를 해보았다. 심지어 군인이었던 그는 나를 보려 부산에서 제주도를 여러 번 왕복하고, 나는 캐리어는 집으로 부쳐버리고 배낭 하나를 맨 채 제주를 떠나 부산에 몇 주 머물렀다. 그리고는 또 서울과 부산을 매주 오가는 만남이 이어졌다. 그와 오래 만나지는 못했지만, 어렸던 우리가 서로에게 보였던 그 열정이 지금까지도 감동스럽다. 


스물 셋, 넷. 그것과 비슷하고 다른 연애를 몇 번 더 했고, 공부에 대한 열정도 비슷하게 몇 번 더 불태웠다.

한동안 운동에 빠졌었고, 다시는 떠나지 않고 싶은 집으로 이사도 했다. 욕심을 내다 내다 못해 삼전공에 도전 중이며, 우울증이 다시 찾아와 신경안정제와 항우울제를 지금까지 복용하고 있지만, 세련된 요즘 젊은이들의 상징이려니 한다. 


스물 다섯.

이십대가 너무 길게 느껴진다. 아직 반밖에 안 지났다니? 얼마나 더 신나 날뛰고 기뻐하고 고통에 신음하며 도전해야 사회가 가져다주는 안정감을 느끼는 나이가 되는 걸까? 그러려니 하는 일들이 늘어났다. 

열정을 불태우게 하는 사랑은 아니라지만 서로를 편안하게 해주는 느슨한 연애가 고마워졌다. 섹스는 더이상 생각만 해도 짜릿하지 않아졌다. 왁자지껄한 술자리보다 잠옷 차림에 혼자 넷플릭스를 보며 마시는 맥주가 재미있어졌다. 다른 사람들의 무례와 실수가 이해되는 만큼 남들에게 나의 무례와 실수를 보이는 것도 어느정도 두렵지 않아졌다. 사는 게 덜 고통스럽고, 덜 재미있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걸까? 남들처럼 사는 것은 중요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모르겠다. 나처럼 남들도 특별하지만 별 거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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