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육남이 7시간전

과장이 국장으로 승진했다

  평소와 다름없던 일과 시간을 보내고 점심시간이 다가올 무렵, 서무계장이 나를 불렀다. '나한테 뭐 시킬 거 있나? 무슨 일 또 터진 거 아니야?' 계주임 단위의 회의는 종종 했었어도 개별적으로 나를 부르는 일은 많이 없었던 터에 조금은 긴장됐다. 찰나의 순간에 머리를 그렇게 굴려댔던 게 무색해질 정도로 서무계장의 말은 간단명료했다. 아니 놀라웠다.



  "오늘 승진 발표일인 거 알지? 오늘 과장님(부서의 장/5급 사무관) 국장님으로 승진하실 거 같으니까, 5시 이후에 자리 지키고 있으라고." 2022년의 7월, 얼떨결에 승진을 하게 된 이후 승진 계획이나 대상자는 일체 관심이 없던 나였다. 그도 그랬으려니 복직 후 내 일처리 하기 급급했던 내게 상기의 것들은 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언젠가부터 승진에 크게 관심이 없어지기도 했고.)



  승진.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회사의 한 구성원으로서 묵묵히 일해온 노고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본인의 자존감을 한층 더 드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이 우리네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승진이다.



  특히, 공무원에게 승진은 조금 더 남다르게 다가온다.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라도 그들의 자존심만은 여전히 남아있다. 공무원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승진이다. 연공서열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집단이기에 승진은 공무원 조직 내에서 굉장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말단인 9급 기준으로 단 3개의 계단만 오르면 6급 팀장이 될 수 있다지만 그 과정은 말도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험난하다.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지난한 과정을 겪어내야만 가까스로 팀장이라는 보직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말씀.  이러기에 퇴근을 하는 공무원의 대부분은 6급으로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는 편이다. (실제로 7급에서 6급으로 넘어가는 순간이 그렇게 어렵다고들한다.)



  그럼 6급에서 5급으로 올라가는 사무관이 되는 난도는 어느 정도일까? 이 구간부터는 진정 실력 외의 것들이 필요하다.(사기업으로 친다면 대기업 기준 부장 정도 되지 않을까?) 능력은 당연하고 이에 더해 사내 정치 문제가 얽혀있기에 모든 과정을 순조롭고 탄탄히 헤쳐나가야만 사무관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아무나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우리가 가끔 동사무소를 들르더라도 단 한 번도 본 적 없거나 만난 적 있다 해도 그저 동네 아저씨나 아줌마처럼 보이는 동장이라는 사람은 사실 공무원 조직 내에선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9급 공무원이 정년까지 일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갈 수 있는 최고의 위치가 어디까지라고 생각하는가? 내 기준에서 최선의 위치는 바로 5급 사무관이었다. 그 이상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우리 부서 과장이 국장으로 승진하게 됐다. 4급 서기관. 자치구 단위 기준, 서열 3위에 해당하며 4~5개의 부서를 통솔하는 리더.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사기업으로 치면 임원진에 해당할 테다.)



  국장이라는 자리는 절대 아무나 갈 수 없다. 말단 공무원이 업무에 열과 성을 다하고 미친 듯한 정치력을 까지 발휘해 5급 사무관까지 간다 하더라도 그 이후 4급 서기관으로 승진을 한다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운에 운을 맡겨야 하는 자리가 바로 4급 서기관, 국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승진 발표일, 부서 내 알 수 없는 긴장감과 고요함이 한데 섞인 미묘한 공기가 하루 종일 부서 내 흘렀다. 오후 5시를 기점으로 인사부서에서 공지를 올릴 것으로 예상했으나 지루한 1시간을 보낸 오후 6시. 그렇게 승진 내정자 명단이 사내 홈페이지에 게재되었다.



  서무 쪽에서 미리 준비해 둔 현수막을 펼치고, 분홍빛의 꽃다발을 과장에게 전달하며 전 부서원 모두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평사원 기준에서 바라본 과장의 모습은 가히 인정할만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피 부서에 3년이나 뚝심 있게 자리를 지키며 부서를 이끌어왔다는 점과 함께 보고를 할 때면 늘 새로운 인사이트를 알려준 과장의 승진이 내게는 어쩌면 당연해 보였다.



  이따금 과장과 식사하며 그분의 소싯적 얘기를 듣다 보면 '크으, 옛날에 진짜 힘들었겠다.'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간의 노고와 노력들이 빛을 발하는 승진 발표일의 순간을 과장은 아마 평생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이를 통해 다시 한번 배워간다. 무엇이든 순간에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빛나는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배울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목표하는 바는 제 각기 다를 테다. 사내 임원이 되기를 꿈꾸거나, 투자로 대박 나기를 꿈꾸는 사람 등 천차만별이겠지. 나의 꿈은 작은 부자이며, 원하는 것을 하며 사는 삶이다. (언제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성실히 그리고 묵묵히 전진하다 보면 빛을 발하는 순간이 다가올 것이라는 확신과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과장의 국장 승진을 통해 다시금 배워간다.



  승진 발표일, 과장의 여유 넘치는 웃음을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나 또한 그런 웃음을 내가 선언한 그 어느 날에 아내와 가족에게 꼭 선보이리라 다짐해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