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안녕하세요. 7급 공무원 OOO 입니다.

by 자향자

2016년 1월. '공무원'이라는 직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 나이 서른 살. 조금 늦은 취업이었고, 3년 간의 수험 생활 끝에 얻어낸 값진 결과라서 그런지 매사에 최선의 자세로 업무에 임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는 행동으로 보이지만, 처음에는 제 직업이 너무 자랑스러워서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목에 공무원증을 한동안 걸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머릿속으로 정규직으로 생애 첫 월급을 받았던 순간도 스쳐 지나가고, 호기롭게 맨몸으로 커다란 나무에 올라 현수막을 달았던 순간의 용기도 떠오르네요.


입사 후 현재까지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제 인생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실례로 저의 첫 근무지에서 지금의 소중한 아내를 만났고, 구청과 동사무소에서 순환 근무를 하며 저의 직급 앞자리는 두 번이나 바뀌었으며, 작년 9월에는 저희부부에게 소중한 아이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여담으로 집도 마련하고 자동차도 교체하고 물리적 환경에서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네요.


다른 한편으로, 제 머릿속에서도 가히 혁명 수준의 변화가 찾아왔었답니다. 두 가지의 사건이 저의 관점을 변화시켰는데 하나는 쌍팔년도 식의 고리타분한 생각으로 살아왔던 저의 변화였습니다. 입사 후 사회초년생으로서 저는 회사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지난 4-5년 간은 야근은 밥 먹듯이 해댔고 물론 약간의 수당은 주긴 하지만 주말 출근 또한 일상이었으니까요. 심지어 결혼 후에도 그래왔어요. 그 당시에는 '내 인생의 주인이 회사였다'라고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꽤나 오랜 시간 진득하니 업무에 매달리는 편입니다. 사소한 일 처리 할 때도 꼼꼼하게 살펴보고 처리하는 스타일이어서 더욱더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냈던 것 같네요. 이로 인해 저 자신도 모르게 업무 스트레스는 가랑비 옷 젖듯이 쌓여갔고 이는 차츰 자연스레 아내에게 전가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한동안 조용히 지켜봤던 아내는 어느 날 저에게 한마디 합니다. "어차피 돈 번다는 게 다 우리 가족 행복하려고 하는 건데 왜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가정에서 푸는 거야? 그러면 가정이 행복하지 않잖아." 맞는 말이었죠. 사실 몽둥이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답니다.


회사에서 저는 항상 좋은 사람으로 비추어지길 원했습니다. 반대로 집에서는 오히려 주간에 받았던 업무 스트레스를 아내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전가하기 일쑤였죠. 그날 이후 차츰 저는 회사와 저 스스로를 분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업무가 끝나면 집까지 질질 끌고 왔던 일 생각을 최대한 하지 않으려했고, 일처리는 최대한 빠르게 보고하고 상사에게 역으로 수정사항을 전달받아 다시 하는 결정짓는 형태로 말입니다. 이러한 작은 시도로 인해 지금은 아내와의 시간이 더욱 풍족해졌고가정 중심인 저의 모습으로 변모되었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 사건은 한 부서에서 있었던 '말도 안 되는 과도한 업무량'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공무원 8급 3년 차 시절 저는 구청 내 새로운 부서로 발령 나게 되었습니다. 회사 내에서 속칭 좋은 부서라고 불리는 그곳. 저 또한 첫 입사 시 선망의 대상으로 여겼던 그곳. 바로 그곳의 소속원이 되었죠. 처음에는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이라고 들었던 터에 저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한 번쯤 들어봤겠지만 전 복싱선수 마이클 타이슨이 이런 명언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쳐 맞기 전까지는." 해당 부서에 발령 나기 전까지만 해도 뭐든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있었던 저는 그곳에서 저의 한계를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전임자는 타 지역으로 발령나버리고, 그가 있었던 자리에는 당장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산 같이 쌓여있었기 때문에요. '공무원은 어디에 데려다 놓아도 일을 해야한다'라는 웃픈 이야기가 있지만, 제게는 그런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고요. 그냥 엄청난 업무량에 처맞기 일쑤였습니다.


매일의 시간이 제게 굉장한 부담감으로 다가왔고, 업무 관련 전화를 받는 것조차 너무 버거웠습니다. 새로운 부서로 배치받은 지 한 달 정도만에 저는 백기를 들었습니다. 못 하겠다고요. 그렇게 저는 다시 동사무소로 재배치 받게 됩니다. 멀리 봤을 때 제 경력에 굉장한 도움이 될 법한 부서였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기간 저는 정신적으로 굉장히 피폐되었고, 저희 아내에게도 차가운 사람으로 변해갔으니까요.


이 두가지 일련의 사건으로 저는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살아가자. 이기적인 말로 들리시나요? 세상을 살아가는 주인은 바로 제 자신이고 제 가치를 판단하는 것 또한 오로지 자신 뿐입니다. 30년 넘게 살아왔지만 그걸 깨닫는 시간. 생각보다 정말 많이 걸렸네요.


8년 차 공무원이자 한 가정의 남편 그리고 딸아이의 아빠로써 현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멀티플레이어 역할을 자처하며 살아가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에게 혹은 결혼이라는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우리 남녀 누구에게나 이 글이 어떤 면으로든 작은 희망이나 용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습니다." 그게 장점이든 아니면 단점이든 간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