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봄이라는 계절이 다시 찾아왔다. 성수는 그날 이른 점심을 먹고 청사 뒤편 벤치에 앉아있었다. 햇살이 따뜻했고 살랑살랑 부는 바람은 적당하기 그지없었다. 왠지 이런 날엔 사무실이 좀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늘 그렇듯 성수는 틈날 때마다 핸드폰을 꺼내 부동산 카페앱을 들여다본다. 근래 들어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었다. 유독 작년 하반기엔 하락 이야기가 많았다. '급매. 역전세. 버텨야 하나.' 그런 류의 글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른 분위기다.
'슬슬 바닥 온 것 같아요.'
'지금 안 사면 또 후회합니다.'
'이번 기회 놓치면 10년 기다려야.'
성수는 이를 하나하나 빠르게 훑어내려 갔다. 작년에 이맘 즈음 이런 류의 글들을 읽었을 땐 흘려보내기 일쑤였다만 이젠 좀 다르다. 시야가 조금 더 넓어진 것 같다. 잘 버텼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복도에서 이복순을 마쳤다.
"박주임 님, 표정이 좋네요."
"그래요?"
"별건 없어요. 부동산 때문인가."
"요즘 또 들썩이나요?"
"슬슬 그런 것 같아요."
"또 뭐 하려고요?"
"글쎄요."
"그 말이 한다는 거지."
성수는 웃으며 상황을 넘겼지만 이 사람은 이상하게 눈치가 빨랐다.
"아직 생각 중이에요."
"잘 생각해요. 욕심이 제일 무서운 거니까."
하며 복순은 카트를 밀고 유유히 사라졌다. 성수는 그 뒷모습 보며 잠시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녀의 말은 백번 지당한 말이었다. 하지만 성수의 머릿속엔 이미 숫자들이 쉼 없이 맴돌고 있었다.
그날 밤. 성수는 부동산 매물을 검색하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다. 이번엔 아파트, 상가 그리고 꼬마빌딩도 아니다. 성수가 보는 건 근린생활시설로 불리는 상업용 건물 그 자체다. 1층부터 4층까지. 각 층마다 다른 세입자가 있고 다양한 업종이 있다. 임대료 또한 다층으로 들어오는 부동산의 끝판왕.
성수가 이제껏 접근했던 그 어떤 부동산 매물보다 사이즈가 크다. 매매가는 최소 7억에서 10억 사이. 성수는 매물 검색을 위해 필터를 걸었다. 경기도 외곽. 신도시 인근. 역세권 하나씩 걸어가며 조건들을 따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찰나 지영이 나왔다.
"또 뭐 봐?"
"근린생활시설."
"얼마짜린데."
"7억에서 10억."
"대출 또 얼마나 필요한 건데."
"실투자금 3억 정도면 될 것 같아."
"우리 수중에 지금 3억이 어디 있어."
"기존 아파트 담보대출 추가로 끌어당기면 되지."
지영이 화면에서 눈을 떼고 성수를 빤히 들여다봤다.
"그럼 대출이 또 늘어나는 거잖아."
"응. 그렇지"
"지금도 이렇게나 많은데?"
"금리가 내리고 있잖아. 이자 부담이 줄고 있어."
"나 솔직하게 말해도 돼?"
지영이 이제껏 이런 말을 내 앞에서 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 마."
"왜."
"대출이 너무 많아. 지금 이자 감당하는 것도 빠듯해. 그나마 월세 수익이 있으니까 버티는 거지, 만약 공실 하나라도 나면 우리 진짜 힘들어져."
"공실이야 채우면 되지. 해봤잖아 우리."
"우리 뜻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
성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지금이 기회야. 바닥 온 것 같고, 금리 내리고 있고."
"그걸 누가 확신해."
"카페에서 그런 이야기 많이 하더라."
"카페에서 그랬다고?"
"아니. 거기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도 그러고."
"카페 사람들 말이 다 맞아? 작년에 지금 사면 안 된다고 한 것도 카페 사람들이었잖아. 진짜 미안한데,
이번만큼은 반대야."
지난 14년 간 생애 첫 아파트, 두 번째 아파트에 이어 상가, 꼬마빌딩까지 매입하며 지영이 반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신중하게 보자고 걱정했지만 언제나 결국엔 성수를 믿는다고 말하던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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