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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남이 Sep 09. 2024

그놈의 회의

2025 주요 업무계획 수립을 시작한 지도 어언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2025년 지자체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업무의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보니 구청 내 각 부서는 세우랴 본 업무도 하랴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맞아요. 제 이야기입니다.) 신경 쓸 것도 많고 공을 들여 문서를 작성해야 하는 업무라 그만큼 위에서 요구하는 사항도 많은 건 어쩌면 당연지사입니다.



요구사항이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수정사항을 반영을 해야 한다는 말이 되겠고, 이는 회의가 잦아진다는 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회의'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항에 대해 여럿이 모여 의견을 교환하여 의논함이라고 네이버에 정의되어 있습니다만 사내에서의 회의는 의견을 교환한다기보다는 윗사람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다라고 개인적으로 정의 내려봅니다. 특히나 보수적인 공무원 조직에서는 당연지사입니다.



보통 상위 계급자의 의견을 반영해 문서를 수정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몇 가지 이유로는 첫 번째, 의견 개진 시 일이 오히려 더 많아진다라는 이유가 있으며, 두 번째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진할 경우 독박으로 업무를 뒤집어쓸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공무원 조직 내에서는 상급자의 의견에 큰 이견이 없다면 웬만하면 받아들여 문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안 그래도 본인 일도 많은 데 굳이 발 벗고 나설 대담한 위인은 세상에 거의 없을 것이라 봅니다.



어쨌든 저희 부서 또한 조용하지만 치밀하게 업무계획 수립에 돌입하게 됐습니다. 부서의 총무를 담당하는 서무계장님의 호출로 각 팀 내에 있는 계주임을 불러 첫 회의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회의 내용인 즉 2주 간의 시간을 줄 테니 팀별로 기존 업무계획을 참고해 짜임새 있는 내년도 업무계획 수립을 당부함이라는 짧고 굵은 전달사항이 있었습니다.



저희 팀의 경우 현재 팀장의 부재로 업무계획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줄 사람도 없고 팀원 간에 '이거 맞아?' 하면서 지지부진하게 실무자 간의 회의를 끝마치고 마감 기한을 아슬아슬하게 맞춰 제출하게 됐습니다. 제출 이후 두 번째로 부서장에게 보고하는 회의 자리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본래 본회의는 팀장급이 참석해 부서장과 업무계획에 대한 의견을 논하는 자리였으나 저희 팀은 추석 전까지는 돌아오지 않은 팀장 덕분에 대직자인 제가 참석하게 됐습니다.



초안으로 작성한 업무계획은 당연히 수정사항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부서장의 의견이 아직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제 아무리 작년과 비슷하게 업무계획을 작성했다고 해도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다음 연도의 업무계획은 바뀌게 마련이니까요. 그렇게 초안은 내용은 변함없으나 틀을 변형하라는 주문을 받아 다시금 작성토록 요구를 받으며 두 번째 회의를 마치게 됐습니다.

 


큰 범주에서 두 번의 회의가 있었고 중간중간 팀별 회의까지 거치면서 일주일 동안 수차례 회의를 거쳤습니다. 대직자인 제가 팀장급 회의에도 참석해게되고 계주임급 회의에도 이래저래 내리 참석하다 보니 사실 똑바로 정신 차리는 게여간 쉬운 게 아니었습니다. 팀장급 회의에서 들었던 내용을 다시 한번 계주임급 회의에서도 듣기도 하다 보니 시간 낭비가 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회의가 몇 번이나 이루어지는지 저도 모르게 진이 빠진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업무계획을 세우라고 지시했을 때부터 첫 단추가 뭔가 잘 못 꿰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팀별로 업무계획을 작성할 시간을 충분히 부여한 것은 맞으나 정작 중요한 과장과 국장에게 보고하고 수정사항을 반영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타이트한 일정 덕분에 일은 굉장히 꼬이게 됐습니다. 가끔 가다가 재수가 없으면 두 번 일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데, 올해 업무계획이 그러했습니다.



주요 업무계획을 최종 보고 받는 당사자는 당연히 사장인 구청장이지만 가장 디테일하게 업무계획을 만지는 최종선은 국장급에서 끝이 납니다. 팀 계주임 간의 회의, 부서장과의 회의 그리고 큰 흐름에서의 마지막 주요 업무계획 보고의 끝판왕 국장과의 3번째 회의가 시작됐습니다. 국장이 주재하는 회의는 과장과 팀장이 모여 부서 내 각 팀장이 돌아가면서 내년도 추진해야 할 업무 사항들을 보고하게 됩니다. 7부 능선을 넘는 주요 업무계획 보고이니 만큼 설득력 있게 업무계획을 브리핑해야 하는 역할을 부서의 각 팀장이 맡게 됩니다.



저희 팀의 경우 당연히(?) 팀장을 대신해 제가 보고하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됐습니다. 점심을 먹고 소화가 채 되지도 않은 시기에 시작하게 된 회의는 오후 5시가 돼서 끝이 났습니다. 중간에 국장의 위원회 참석 함으로 인해 강제 브레이크 타임을 갖게 된 연유입니다. 타 팀장에 비해 실무자인 제가 하는 보고는 제가 봐도 허접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깔끔하지 못한 설명에 국장의 질문도 많았고, 서무계장의 도움을 받아 넘어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일이니 어렵게 느껴지지도 했고 타 팀장의 보고를 보고 들으며 안정감 있고 깔끔하게 브리핑하는 모습이 꽤나 멋져 보였습니다.



그렇게 그놈의 회의는 큰 줄기로 3번 작은 줄기로 다섯 차례 이상을 거치며 부서의 주요 업무계획이 정리 됐습니다. 이번 주요 업무계획을 세우면서 느낀 바가 꽤 있습니다. 원활한 업무계획 수립을 위한 팀 간의 의사소통의 중요성, 보고 자료 작성의 단일화 필요성 정도가 되겠는데요, 회의도 회의지만 작성해야 하는 자료의 종류가 너무 많았습니다.



분명히 그놈이 그놈인데, 따로 작성을 해서 제출하라는 게 이해가 안 됐습니다.  헷갈리기 십상이기도 했고 버려지는 시간이 꽤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주요 업무계획을 작성한다고 하면 작년도 추진 실적을 따로 작성하고 또 주요 업무계획에 대한 요약본도 따로 요구를 하며 3가지의 문서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 말입니다. 그렇게 세분화해서 작성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만 7급 나부랭이의 푸념이기도 하니 시키는 대로 해봅니다.



한편, 부서 내 팀이 6개나 있어서 수합을 하는 주무팀에서는 정말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주무팀 내 두 분이 나누어 수합을 하게 되면서 굉장히 헷갈리는 상황의 연속이었습니다. 한쪽에만 제출하면 되는지 알았는데 양쪽에 제출해야 하는 상황도 있고 반대로 한쪽에만 제출하면 되는데 양쪽에 제출하는 실수를 연이어 저지르면서 능력의 한계도 실감했습니다.



'그놈의 회의'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다시금 시작되는 월요일에는 또 어떤 회의가 기다리고 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부디 한 주간 벌어지는 일과에서 더 이상의 불필요한 회의는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만 모든 과정을 통해 한 단계씩은 성장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음에 또 한 번의 감사를 더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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