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II]#4.She is my dream
혼자는 편하다.
주어진 시간을 내 의지대로 온전히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의 기상시간부터, 식사의 메뉴, 오늘 입을 옷, 주말 일정을 미리 준비할 필요도 없고, 가방에 드립 커피를 담은 보온병과 귤 몇 개, 사과 반개 정도 챙겨서 아무 때고 산에 올라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모바일로 기차나 버스를 예매해 춘천이나 강릉으로 언제라도 편하게 다녀올 수 있다.
이마저도 귀찮으면 잘 빨아놓아 피존 향기가 남아있는 편한 셔츠와 반바지로 거실 소파에 몸을 잘 맞추어 눕고
TV 다시 보기나 영화를 본다. 물론 맥주까지 마시면 더욱 좋다. 그러다가 또 갑갑하면 청바지와 바람막이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시내로 나가본다. 가방에는 혹시모를 자전거 고장에 대비한 멀티 툴과 읽다만 소설책 한 권, 물병을 메신저백에 넣고, 오후 햇볕을 받고, 계절의 향기를 품은 바람을 가른다.
서울은 온통 빌딩 숲 속이지만 해가 얼마 남지 않은 늦은 오후까지 볕이 잘 드는 노원역 근처 할리스 카페나, 파라솔이 있는 편의점, 아니면 구청에서 관리하는 작은 공원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어린 시절부터 익숙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혼자인 내가 전혀 불편하지 않다. 중학 시절 농구를 꽤 즐겨했지만 그때도 여럿이 게임을 하는 것보다 혼자 슈팅 연습이나 드리블 연습하면서 땀을 흘리는 것이 더 편안했다. 학교에서도 좁은 교실에 40~50명이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난리통인 쉬는 시간보다 차분한 수업시간이 더 안정되었다. 그저 선생님이 칠판에 적는 내용을 노트에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강의 내용을 이해하며 듣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쉬는 시간에 체육복을 빌려달라는 놈, 노트나 책을 빌려 달라는 놈, 매점 가자는 놈, 워크맨이나 만화책을 찾는 놈, 지들끼리 놀다가 나한테 넘어지는 놈, 도시락 싸왔으면 지금 같이 먹자는 놈들까지...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귀찮고 성가셨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중고등학교 친구가 거의 없다.
더 어린 시절에도 동네 친구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다방구나, 딱지치기, 피구 등등 집 앞 골목에서 놀기에 바빴다. 한두 살 많은 형들이 룰을 그들 편의대로 정했고, 별 목적이나 의미 없는 놀이들에 큰 흥미가 없어 나는 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집에서 책을 보고 음악을 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시절 친구들과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 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다소 이기적이며 당시 그들 표현으로 꽤 재수없는 녀석이었다.
그래도 이성에 눈을 뜬 것은 느리 편은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때도 마음에 두고 좋아하는 여학생도 몇몇이 있었다. 하지만 자기중심적인 성향에, 누가 봐도 평범한 외모에 키도 작은 나는 얼굴에 여드름까지 꽃피우더니 소심해졌고, 서투르기까지 했다. 답이 나오지 않았다. 대학교에 가서도 적응을 못해 외부인처럼 학교생활을 했고, 복학하고 몇 번의 썸도 있었지만 연애로 발전된 경우는 없었다. 연애까지 가는 단계가 나에게는 어렵고, 때론 아프고 마지막엔 참 귀찮은 일이었다. 결론적으로 연애다운 연애는 해보지 못했다. 이런 것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혼자 보내는 나만의 시간과 여가를 만끽했다. 마시고 싶은 와인을 하나둘씩 마셔보고, 혼자서도 어색하지 않은 Bar에 가서 술을 마시고, 또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또 힘들면 공원이고 카페에 들려 책을 읽었다.
"오빠, 이번 주말에 뭐할 거예요?"
칙칙한 남양주 출퇴근 버스 안, 상쾌한 영선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온다.
"글쎄... 영선이는 뭐하고 싶어요?" 내가 되물었다.
"... 음... 오빠는 지금, 주말 계획도 없이 나를~ 나를 만나려고 그러는 건 아니죠?
지금 계획이 다 있는데 안 알려주는 건가? 나는 그런 서프라이즈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도?!
지금 당장, 어서, 빨리, 계획을 내놓으라 함태!"
갑자기 버스가 커브를 도는지 울렁울렁 현기증이 난다.
"당연히 올해 4/4분기까지 계획은 끝나 있지요. 이번 주는 명동에서 그때 보기로 한 영화 보고, 다음 주부터는 우리 주말에 자전거 탑시다."
"엥, 자전거? 나 자전거 없는데요?"
영선이 대답했다.
"나한테 계획이 있어."
이렇게 말해놓고 계획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오스 크로몰리 로드바이크가 있었는데, 그걸 평화로운 중고나라에 팔고, 접이식 미니벨로 2대를 마련하면 같이 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영선이 회사 동료인 임 과장님이 안타는 자전거를 거의 공짜에 가까운 가격에 지원해주어서 우리는 결국 다혼의 뮤 우노와 보드워크 D7 자전거를 확보했다.
며칠 후, 주말에 첫 라이딩을 나가기로 했고, 차 트렁크에 폴딩 된 자전거 2대가 수납되는지 확인하고, 브레이크 간극과 안장 체결 점검, 라이트 장착, 공기압 체크 등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 주 화요일쯤 영선이가 전화로 나에게 말했다.
"오빠, 나 자전거 탈 줄 몰라요. 호호"
이처럼 늘 예상할 수 없는 그녀가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 뭐 그럼 배우면 되지, 안장 낮춰서 타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 이었다. 나는 산에 오르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등산을 가는 것은 힘들 테니 북한산 둘레길부터 시작 했지만, 그녀는 둘레길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사진을 같이 찍어볼까도 했지만, 카메라만 샀지, 영선이는 본인이 사진에 예쁘게 나오는 것만큼 촬영하는 행위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했다. 수영을 같이 해볼 것도 제안해 봤었지만, 영선에게 수영이란 몸매가 드러나고, 화장이 지워져 불편한 운동인데다, 물장구 수준에서 더 배운 적이 없는 그녀였기에 그것도 실패.
자전거에는 적지 않은 희망을 갖고 있었던 나에게 방금 그녀의 탈 줄 모르는다는 말은 일주일 동안 작업한 제안서가 바이러스로 실행이 안 되는 것과 비슷한 충격이었다.
다음날 밤, 나는 그녀와 함께 뮤 우노를 트렁크에 접어서 싣고 청운공원으로 가서 차를 세웠다.
"일단 안장을 가장 낮게 해서 발을 디딜 수 있게 할 테니까 타봐요."
"오빠, 나 하이힐 신고 왔는데요?"
그녀의 목소리는 언제나 비타민처럼 상큼하다.
"아, 그럼 신발 벗고 타면 돼, 잠깐만 탈 거니까"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고 내가 대답했다.
"호호 그럼 나 맨발의 윤인가요? 쎄리 윤~~~ 호호호호호"
나의 불안감이 절정에 이르고, 영선이는 자전거에서 첫 페달을 돌렸다.
오, 잘 탄다.
살짝 불안하지만 좁은 공원의 흙바닥을 꽤 부드럽게 주행한다.
나는 감격스러워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밤공기는 청량했고, 저 멀리 보이는 서울 시내의 야경도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는 데도, 마치 내가 달 표면을 자전거로 내달리는 기분이다.
사실 이날 이전까지 마음속 어딘가에 불안감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30년 넘게 늘 혼자로 살아온 내가 다른 누군가와 만난다는 게 어색하지 않을까?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내가 하는 연애가 문제없을까?라는 의구심이 있었다.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자전거로 청운공원을 빙빙 도는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은 이내 사라져버렸다.
그것뿐이 아니다. 나는 IT회사의 박봉 대리, 모아둔 돈도 없고, 집안도 모든 가족에 있다는 문제가 3개쯤 있는 상황......어쩌면 모든 것이 어둡고 불투명한 나는 가슴속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감추고 있었다. 그걸 내비치면 별처럼 다가온 이 친구가 사르륵 사라질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늘 웃으며, 이렇게 내 안의 어두운 그림자를 빛으로 지워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미소에 내 남루한 모습을 하나씩 털어냈다.
내가 보는 나도, 남들이 보는 나도 역시, 참 소심하고, 예민하다. 이런 성향은 장점보다, 나와 주변을 피곤하게 하는 일이 더 많아 늘 신경을 써야 할 정도다.
처음 그녀를 만날 때, 지금 시작하는 이 연애가 꿈처럼 사라질까 두려웠다. 누구에게도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알알이 바스라져 한 여름밤의 꿈이 되면 어쩔까 발을 동동 굴렀다.
그 해 여름은 자전거를 참 많이 탔다. 뚝섬에서 서울숲에 도착해, 낮동안 달구어져 따듯한 푸른 잔디위에 누워 밤늦게까지 와인을 마시고, 경복궁에서 대학로까지 달려 얼음처럼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이기도 하고, 영덕 해안가에서 파도를 보며, 아무도 없는 자전거도로의 바람을 가르며 추억을 만들었다.
그 해에도 가을이 왔고 우리는 춘천의 중도 유원지에 휴가를 갔다.
아무도 없는 춘천의 중도 유원지를 달린다
멈추어 서서 사진을 찍는다.
요즘의 카메라는 뷰파인더를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
하늘과 나무가 일렁이고 있었다.
보드라운 잔디밭에 세월처럼 단단한 나무들이 뿌리를 박고 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여린 바람이 분다.
나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마음의 넓이에 대하여, 마음이 있어야 할 곳에 대하여, 항상 마음에 비추어지는 눈물나게 아름다운 순간들에 대하여...
그녀를 만나기 전의 모든 일들이 지난 꿈처럼 사라졌다.
Now I'm dreaming, and she is my dream.
To be continued...